"농農익는 대화"을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첫번째 농農익는 대화에서는 김기흥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 원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올 3월에 연구소 문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소 이름을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으로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생 시절에 아시아 농업, 농촌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소농에 대한 고민, 전통적인 농사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 주로 일본에 있었지만, 지도교수님이 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 대해 연구하셨고 덕분에 함께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여러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에 들어와서는 지역 연구원에 있다 보니 지자체 정책을 주로 연구해서 해외 사례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독립해서 연구를 하게 되면 아시아의 사례들을 많이 조사하고 아시아 농업, 농촌의 평화라든지 이런 쪽으로 다시 연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을 아시아의 농업뿐만 아니라 농촌까지 포괄할 수 있는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으로 짓게 됐어요.
연구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게 올해 3월인데 현재는 2개의 과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하나는 홍성통의 역사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이고요. 또 하나는 작년에 연구하며 연을 맺었던 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의 의뢰로 지역 가공 생산자의 역사를 정리하는 백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연구원을 시작하면서 다시 지역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맞는 제안이 들어와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신 걸로 알고 있고, 유기농을 오랫동안 연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기농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원래 경북대학교 조경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국제식량학부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동경농업대학이라는 곳이었는데, 학생 모집을 위해 외국의 여러 자매학교 학생들을 한두 명씩 받고 있었어요. 국제식량학부여서 내가 가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세계 식량 문제를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유학을 결정한 거죠.
그래서 199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처음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식량 문제를 공부하다가, 학부 2학년 때 필수 과목이었던 농장 실습의 일환으로 2주 정도 필리핀을 갈 기회가 생겼어요. 그때 필리핀의 여러 가지 농업들을 봤어요.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는 끝도 안 보이는 오일팜 농장, 커피 농장, 화훼 농장 등 다양한 농장에서 실습을 했죠. 그러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유기농업을 하는 농장이었어요. 그 농장은 산 2개를 사이에 두고 산의 형태에 맞게 그늘진 곳에는 채소를 심고 계단식 논을 물소로 농사 지었어요. 그 농장에 있으면서 식량 문제의 해법이 선진국의 원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할 필요 없이 지역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농사를 짓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유기농업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지 않을까,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유기농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때 이후로 동남아시아의 유기농업을 연구하게 됐어요.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처음 연구주제는 동남아시아와 유기농업이었는데, 일본에 있으니까 일본의 유기농업도 공부했고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동남아시아 현장을 많이 다녔는데 저의 직접적인 연구 주제는 아니지만 각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자립적인 활동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보며 농촌과 관련된 문제들은 계속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4년에 귀국해서는 충남연구원에 오게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홍동을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틈틈이 국내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지역을 다니기도 했지만 홍동에는 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유기농을 하시는 농민들이 굉장히 고령화가 되어 있어서 이러다가는 홍동에서조차 유기농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역에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나아가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관심사가 점점 확장됐어요. 그래서 첫해에는 홍동의 유기농업을 연구하고 그다음 해에는 마을에 새롭게 오신 분들과 지역에 원래 계셨던 농민들이 어떻게 좀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농업이 지속 가능해질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식으로 관심사가 확장되어 갔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농업공약이 제시되고 최근 들어서는 나름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제안되고 또 시행되었는데요. 예를 들어 공익형 직불제가 시행된다거나 농민수당이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든가 이런 사례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농촌 현실은 여전히 악화일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무력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망이랄까 나아가야 할 방향이 우리 사회 안에 공유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농촌과 농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지향해야할 대안의 방향을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기흥 원장님께서는 일본,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농촌 현실을 많이 보고 연구도 하셨을 텐데요.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이야기들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큰 그림을 생각할 때 어떤 것들이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까요?
저는 유기농업, 농업의 지속가능성, 귀농·귀촌, 청년 농업인으로 점차 관심사가 확장되어 왔는데, 지나고 보니 이들이 단순히 농민이 아니라 농촌 주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분들이 귀농을 했든 토박이든, 청년이든, 유기농을 하는 농민이든 농촌에서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청년들이 농업을 하려면 정주 기반이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교육이라든지 아니면 복지라든지 의료라든지 이런 기본적인 지역의 서비스들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그때부터 관심사가 확장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유기농업밖에 몰랐었고 농업에만 집중했었는데 그러다가 농촌 전체의 문제, 농촌 주민으로서 삶의 질을 어떻게 좋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된 거죠.
참고가 될 만한 다른 나라의 사례라고 하면 농업, 농촌 상황이 닮아 있어서 그런지 일본을 생각하게 되요. 일본의 농촌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고령화를 겪었고 소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소화가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일본의 사례를 자주 소개하고 있어요. 특히 일본은 여전히 지역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들이 남아있어요. 우리나라는 예를 들면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사업에 개인이 신청하는 방식이라면, 일본은 지역 안에서 지역 단위로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아직 지역이 역량이 되나? 이런 의문 제기가 많고 공무원들이 지역을 믿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지역을 주체로, 일본 농업위원회의 경험
앞서서 귀농·귀촌 연구도 진행하셨다고 했고, 현재 농촌의 가장 큰 문제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농민, 농촌 주민의 감소잖아요. 이런 문제에서도 지역 차원의 접근법이라는 게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만큼 귀농이 쉬운 곳도 없어요. 일본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먼저 확인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마다 농업위원회가 있거든요. 그리고 농업위원회가 모여서 광역 단위의 농업회의 그 위에 농업회의소로 연결되죠.
그래서 예를 들면 일본의 어느 지역에 농사를 짓겠다고 누가 들어오잖아요. 그럼 농업위원회에서 이 사람이 들어와서 우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니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지역마다 다르지만 사전에 마을의 선도 농가에 가서 1, 2년 농업을 연수하고 거기서 마을과 귀농한 사람이 서로 잘 맞겠다 싶으면 그 사람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그에게 맞는 땅을 찾아주죠.
일본 농업위원회의 주요 업무가 농지 업무에요. 농지법상에서 농지와 관련된 임대라든지 농지 이용과 관련된, 그다음에 농지를 둘러싼 분쟁까지 다 농업위원회에서 해결하도록 농지법이 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권한이 있죠. 그래서 농지를 빌려줄지 아니면 지역에서 내줄지 하는 것들이 지역 안에서 해결 가능하죠. 그리고 일본은 ‘사람농지플랜’이라고 해서 지역의 고령화된 분들의 농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마을 단위에서 논의하도록 하고 있어요. 반면 우리는 농지 임대에 대한 업무를 농지은행으로 몰고 있으니까 지역하고의 연계성은 전혀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확실히 우리나라의 농지은행은 농지를 소개해주긴 하는데 굉장히 기계적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행정구역상 같은 지역이기만 하면 어디 사는지와는 무관하게 농지를 소개해 주잖아요. 농본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도 지역 농지은행에 가서 농지를 구한다고 했더니 10킬로미터 떨어진 농지를 소개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큰 차이가 있죠. 농업위원회에서 농지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면 마을 차원에서 농사를 짓도록 도움을 주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제도―후견인 제도 같은 것들―로 농촌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연계가 되요. 그리고 정착 이후에도 농업 기술을 가르쳐주고요. 그러니까 지역 차원에서 고민을 해주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려면 살 곳이 있어야 하니까 집도 찾아봐 주고. 나아가서는 귀농인이 생산 이후에 판매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니까 판매까지 함께 고민을 같이 해주는 식인 거죠. 지역 안에서 귀농인에 대한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방식으로요.
반면 우리나라는 귀농인을 유치하죠. 귀농·귀촌하러 오세요, 막 얘기는 하는데 정작 농촌에 가서는 농사지을 땅도 구하기 어렵고 그다음에 농사를 짓고, 판매하는 부분은 같이 고민해 줄 단위가 없는 거예요. 주거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죠. 오라고는 하는데 그다음 과정이 없는 거죠. 일본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게 좀 까다롭긴 하지만, 농업 기술에서부터 농촌 생활에 대한 것, 사는 집부터 농산물 판매까지 다 연결이 되니까 주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지역 안에서 같이 해주는 게 인상적이죠.
그리고 청년농에 대한 지원도 비슷한 듯 차이가 있죠.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청년농에게 생활금을 주는 사업이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 3년간 매년 110만원, 100만원, 90만원을 지급하고 일본은 예비 2년, 창농 후 3년을 주거든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청년농에 대한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느냐인 것 같아요. 일본은 앞에서 말한 ‘사람농지플랜’ 논의를 하고 있는 마을의 청년에게 생활금 지원이 이루어지죠. 마을과 연결되어 있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농지를 임대하는 문제라든지 청년후계농영농정착지원사업 지원이 지역(마을)과는 무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거주하고, 농사짓는 마을에서는 도움을 받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청년농 사업에 선정된 청년들이 얘기하는 게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마을에서도 연고가 없는 친구가 마을과의 소통 없이 들어오게 되니 도와주기 어려운 거죠. 지역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지역에 청년이 왔으니까 ‘마을에서 돌봐라’, 이거는 지역에서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이렇게 되는 거고요.
저는 귀농 정책, 청년 정책도 지역과 같이 고민하도록 정책이 구상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지역의 문제를 지역이 해결하도록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농지 문제는 농어촌공사에 맡기고, 청년농은 지자체에 맡기고, 농업기술 교육은 농업기술센터에 맡겨서 하니 서로 시너지가 생기지 않는 거죠. 하지만 농어촌공사나 농지은행이나 농업기술센터는 각 지역(읍면)에서의 일을 잘 알지 못하잖아요. 공익직불도 마찬가지인 거죠. 이 사람이 예를 들면 그런 활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이런 것들을 농산물품질관리원에 있는 사람이 하루 만에 나와서 절대 확인 못 하거든요. 일본이 딴 건 모르겠지만 지역에 자율성을 부여해서 지역 내에서 그런 훈련을 계속 계속하면서 역량이 커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우리가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를 넘어 농촌의 삶을 보듬는 직불제
농업・농촌 문제 해결의 핵심은 지역이 중심이 되는 데에 있다는 이야기가 저로서는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좀 전에 직불금 이야기도 하셨는데, 혹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직불금과 같은 제도에도 지역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방안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공익직불제라는 이름으로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죠. 2020년 5월부터 시행이 됐는데, 공익직불제에는 기본형과 선택형 2개가 있어요. 그래서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직불금을 주는 게 기본형이고, 선택형은 다른 걸 녹여보자고 해서 그림은 2개를 짜기는 했는데, 선택형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어요. 그때 빠르게 새로운 제안들이 나왔어야 하는데, 당시 그 논의가 나왔을 때 공익 기능이 뭐냐는 논의를 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죠.
그런데 선택형 직불제의 세부 방안에 대해서 참고하기 위해 일본 사례를 봤더니 일본에서는 다면적 기능 직불이라고 아예 이름을 다면적 기능을 하면 직불금을 준다고 설정하고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었더군요.
유럽에서 멀티 펑셔널 농업(Multifunctional agriculture: 우리나라에서는 다기능농업으로 알려짐)이 등장하면서 일본에서는 2000년에 이걸 농업의 다면적 기능으로 도입했어요. 그러니까 농업에는 생산 역할만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측면의 역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 거죠. 일본은 농업 활동하면서 농업・농촌의 다면적 기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경작하는 농지가 관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농지 주변 관리라든지 수로라든지 저수지라든지 하는 공간들도 함께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 모든 걸 관리해야 한다면 일이 많을 텐데 농촌 인구도 줄고, 현재 추세대로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이러한 활동이 굉장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동체 활동이 중심이 된 다면적 기능 직불을 설계했어요.
다면적 기능 직불은 지역에 있는 농민뿐 아니라 공익 활동이나 다면적 기능에 관심 있는 도시민들도 참여하게 해서 그 기능을 증진하는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그냥 통으로 주는 거예요. 직불금이 어떻게 산정되냐면 기본적으로는 지역 안에 농지와 관련된 공동 활동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농지 면적에 따라서 계산했어요. 예를 들면 논은 10아르당 총 9만 원. 그러니까 1헥타르면 90만 원 정도 되는 거고. 밭은 50만 원 정도 이렇게 되는 건데요. 공동체 활동에 30명이 참여했다고 가정하면, 활동이 이뤄지는 농경지 면적을 기준으로 직불금을 통으로 지불하고, 해당 직불금을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사람이 나눠가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황새를 보존한다든지 아니면 습지를 보존한다든지 하는 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농민은 물론 활동에 참여하는 지역학교의 학생과 선생님도 참여할 수 있고 활동가, 농촌 주민들에게도 직불금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획한 거예요.
그리고 공동체 활동이 농업 활동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농지 유지를 하는 활동도 괜찮고, 농지, 농촌과 관련된 조건들을 향상하는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다면적 직불에 포함될 수 있는 거죠. 우리 지역에 어떤 활동들을 할 것인지 자원 조사도 해야 하고, 예를 들면 관련된 분들이 검토회의도 해야 하고 그런 것들도 이 비용 안에 다 넣어서 그러니까 다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전 과정에 비용으로 다 주는 거죠. 예를 들면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부재지주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지역에서 해결하기 위한 작업도 직불제 활동이 되더라고요. 부재지주에 연락하는 활동도 다면적 기능을 위한 공익 활동으로 보고 프로그램에 포함을 시켜서 전 과정을 이렇게 지원을 해줘요.
일본 사례의 핵심은 지역에 필요한 공익 증진 활동들이 뭔지는 지역에서 결정한다는 거죠. 그리고 지역에서 정한 바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한 거고요. 실제로 지역의 농업・농촌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한다면, 개인, 마을, 면 단위에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거죠. 이러한 형태의 직불금을 저는 ‘공익 증진 직불’과 ‘중점 지역 직불’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도입해 보자 제안했고요.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론적인 틀이 아니라 실제로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거죠. 거기에 집중해서 그럼 뭘 할 수 있을지를 찾아서 지금 빠르게 실천을 해야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제안들이 힘을 받으려면 농사나 농촌의 가치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공감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농사와 농촌에 대해 무관심한 도시민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는 측면에서도 지역의 공익 기능을 증진하는 활동에 관심 있는 도시민이나 활동가들이나 농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참여를 더 많이 늘릴 기회를 주는 일본의 사례가 좋아 보여요. 이게 좋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한다면 이보다 좋은 홍보는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모내기라도 한번 해보게 되면, 논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게 되면 그 안에 이런 작은 생명들이 있구나, 이렇게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애정이 생기잖아요, 쌀이 이렇게 귀하게 자라는 거구나,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거구나 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잖아요.
지역에서도 직불제에 참여할 방법이 다양한 게 낫죠. 예를 들어 은퇴한 농민일 경우 마을에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역할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직불금으로 받을 수 있는 거죠. 내가 농사는 안 짓지만 농촌 주민으로서 살고 있으면서 함께 공익 기능을 하니까 직불금을 주더라. 그리고 도시민도 같이 참여하면 직불금을 주더라. 이렇게 되면 뭔가 공익 기능을 증진하는 활동 자체에 집중할 수가 있어서 참여자도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고 농업, 농촌에 대한 이해도 더 늘지 않을까 생각해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농지만 보전해서는 안 되잖아요. 농지 옆의 하천이라든지, 저수지 주변이라든지 농촌의 다른 것도 보전이 돼야지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농업과 농촌 보전의 책임을 농민에게만 지우는 것도 맞지 않고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라도 더더욱 농업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농업, 농촌의 공익 증진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 직불금을 주고,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직불금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아 보여요. 그리고 무슨 활동에 직불금을 줄 것인가, 누구에게 줄 것인가 그것도 지역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공익 기능 증진이 필요한 시기에 조금이라도 농업 환경이 개선된다고 하면 개인이든 공동체든 더 큰 지역이든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할 때라고 봐요. 특히 이제 농업・농촌의 문제는 나 혼자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안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물도 다 연결이 되어 있고 환경도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유기농, 잔류농약검사를 넘어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최근 기후위기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로 인해서 농업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논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여야 하고, 소 방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요. 하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작년까지는 논에 볏짚을 환원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가, 다음 해에는 볏짚을 빼는 게 기후위기의 해결책이라고 하는 식으로 해마다 정부의 지침이 달라지다 보니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일본에 미쓰비시연구소라는 곳이 있어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곳입니다. 미쓰비시연구소에서 2000년대 초반에 농업의 다면적 기능이 경제적으로 얼마인지 수치화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러나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것을 수치화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자칫하면 사안의 경중을 따질 때도 경제적 수치를 기준으로 결정될 위험도 생기죠.
그래서 예를 들면 ‘논에서 배출되는 메탄’과 같이 특정한 수치에 너무 집중하면 방향이 굉장히 이상하게 나갈 수가 있죠. 예를 들어 지금 무경운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죠. 그런데 그 근거가 뭐냐면 무경운은 농기계를 쓰지 않아서 기름(화석연료)을 안 쓴다는 거예요. 경운을 안 하게 되면 표토가 보존되고 그로 인해 안에 있던 탄소가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하자는 게 아닌 거죠. 그게 작물이든 잡초든 식물이 상시로 있기 때문에 뿌리가 많아지고 그로 인해 토질이 좋아지고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이 향상되는 걸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농기계를 안 쓰니까 무경운 해야 한다는 수준이에요. 논이라는 습지가 생물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는 무시하고 하루 아침에 메탄에만 집중하는 이런 논의방향은 문제인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거론되는 스마트팜 역시 단순한 근거에 의존하고 있죠. 스마트팜에 사용하는 자재들이나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공정 과정은 안 보는 거죠. 수치화하기 쉬운 단순한 방안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 파괴돼서 균형이 무너졌고,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식의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통합적인 관점의 합리성은 현장에 있는 농민들에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외국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으로 유기농이 대두되는 게 부럽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기농은 인증제, 즉 농약 검출과 인증 취소 등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유기농과 다른 나라의 유기농이 처한 상황이 매우 대조적인데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기농과 관련해서 부정적인 논의들이 주로 나오는 것일까요?
기후위기가 대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유기농이라는 전략이 전면에 등장했어요. 그래서 유럽연합 같은 경우에는 2019년에 팜투포크(farm to fork) 전략, 즉 유기농업 면적을 2030년까지 전체 농경지의 25%로 늘리겠다, 그다음에 화학 살충제 사용량을 50% 줄이겠다는 계획들이 나오고 있고 우리보다 유기농업 정책이 더 떨어져 있는 일본도 유기농업 면적을 2050년까지 25%로 늘리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친환경면적을 2050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고 하고 있어요. 2030년까지는 12%인데 지난 1년 사이에 친환경농사를 하는 농민이 5천 명 줄었어요. 면적은 5%에서 4.6%까지 떨어졌고요. 그동안 우리는 친환경농업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농약에 대해 320가지 검사를 하다가 지금 463가지로 늘리고 있는 걸 보면 친환경농업이 너무 검사 위주로 가고 있다고 여겨져요.
지난번에 인증 문제 때문에 일본의 인증기관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나온 이야기가 무농약이라는 용어를 일본 정부가 쓰지 않도록 했대요. 왜냐면 정말 농약이 안 나온다는 거를 증명해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농약을 안 썼다는 거지 농약이 검출이 안 된다는 게 아닌데 무농약이라는 용어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무엇보다 유기농 인증과 관련해서 일본과 한국의 제도에는 몇 가지 큰 차이가 있죠. 잔류농약 검출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일본도 유기농업 인증에 해당 조항이 있긴 있어요. 잔류농약 검출 검사를 하긴 하죠.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십수 년간 혹은 수십 년간 유기농을 해왔던 농가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은 농민이 의도적으로 농약이 썼다는 게 밝혀지지 않으면 오히려 농민이 피해를 보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요. 그래서 해당 인증기관에서 농민이 고의로 농약을 뿌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인증을 취소하지 못하죠.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유기농업을 실천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인증 취소를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거죠.
그리고 일본은 사실 인증을 받는 농가들이 4천 명도 안 돼요. 왜냐면 일본은 70년대 초반 환경 오염이 심화하면서 먹거리는 안전할지 고민한 소비자들이 모여서 화학비료나 농약을 안 쓴 농산물을 먼저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제휴의 형식으로 유기농업이 시작돼서 생산자 그룹과 소비자 그룹이 서로서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마크 자체가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 후에 1990년대에 일본 정부가 인증 제도를 도입했지만 인증은 인증대로 비용이 들고 그렇다고 판매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어서 거추장스러운 건 하지 않겠다, 다시 제휴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일본은 지금도 인증받은 유기농민은 4천 명을 넘지 못하고 있어요. 반면에 2010년에 인증을 받지 않고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가 얼마만큼 되는지를 대략 조사했을 때도 8천 농가가 넘었거든요.
일본 정부에서도 인증받지 않은 농가들도 유기농업을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환경보전형농업직불이 있는데, 인증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대로 활동 내용을 기준으로 직불제가 지급되다 보니 인증이 없어도 직불금을 주는 거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하고 관련된 걸로 유기농업 면적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인증하는 4천 명도 안되는 농가로는 목표했던 면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인증 받지 않은 농가의 땅도 다 포함해서 유기농 농지로 계산하고 있죠.
결국은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업의 원리, 원칙이 무엇인지 다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형태로든 유기농을 활성화시키려면 농약이 검출되었느냐에 주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한국유기농업연구소에 있을 때 농민들하고 나눈 이야기가 있어요. 인증 초기에 아예 토양 오염이 얼마나 됐는지를 측정하고 그 후 토양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변화를 계속 조사하는 게 오히려 유기농의 본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거죠.
끝으로 앞으로 농본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까요? 농본의 활동 방향이나 활동에 대해서 제안하실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특정 관심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농촌과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고민을 함께 해주면 좋겠어요. 이전에는 저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이야기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농업과 농촌 문제가 복합적이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에는 안 되겠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다양한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축적해 나가면 종합적인 대안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농본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고민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기흥―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 원장.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농업대학, 동경대학대학원에서 유기농업 공부. 2014년 귀국하여 충남연구원을 거쳐 한국유기농업연구소 부소장 재직. 2023년 3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농업·농촌 연구를 위해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 설립.
"농農익는 대화"을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첫번째 농農익는 대화에서는 김기흥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 원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올 3월에 연구소 문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소 이름을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으로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생 시절에 아시아 농업, 농촌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소농에 대한 고민, 전통적인 농사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 주로 일본에 있었지만, 지도교수님이 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 대해 연구하셨고 덕분에 함께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여러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에 들어와서는 지역 연구원에 있다 보니 지자체 정책을 주로 연구해서 해외 사례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독립해서 연구를 하게 되면 아시아의 사례들을 많이 조사하고 아시아 농업, 농촌의 평화라든지 이런 쪽으로 다시 연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을 아시아의 농업뿐만 아니라 농촌까지 포괄할 수 있는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으로 짓게 됐어요.
연구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게 올해 3월인데 현재는 2개의 과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하나는 홍성통의 역사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이고요. 또 하나는 작년에 연구하며 연을 맺었던 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의 의뢰로 지역 가공 생산자의 역사를 정리하는 백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연구원을 시작하면서 다시 지역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맞는 제안이 들어와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신 걸로 알고 있고, 유기농을 오랫동안 연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기농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원래 경북대학교 조경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국제식량학부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동경농업대학이라는 곳이었는데, 학생 모집을 위해 외국의 여러 자매학교 학생들을 한두 명씩 받고 있었어요. 국제식량학부여서 내가 가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세계 식량 문제를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유학을 결정한 거죠.
그래서 199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처음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식량 문제를 공부하다가, 학부 2학년 때 필수 과목이었던 농장 실습의 일환으로 2주 정도 필리핀을 갈 기회가 생겼어요. 그때 필리핀의 여러 가지 농업들을 봤어요.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는 끝도 안 보이는 오일팜 농장, 커피 농장, 화훼 농장 등 다양한 농장에서 실습을 했죠. 그러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유기농업을 하는 농장이었어요. 그 농장은 산 2개를 사이에 두고 산의 형태에 맞게 그늘진 곳에는 채소를 심고 계단식 논을 물소로 농사 지었어요. 그 농장에 있으면서 식량 문제의 해법이 선진국의 원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할 필요 없이 지역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농사를 짓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유기농업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지 않을까,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유기농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때 이후로 동남아시아의 유기농업을 연구하게 됐어요.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처음 연구주제는 동남아시아와 유기농업이었는데, 일본에 있으니까 일본의 유기농업도 공부했고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동남아시아 현장을 많이 다녔는데 저의 직접적인 연구 주제는 아니지만 각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자립적인 활동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보며 농촌과 관련된 문제들은 계속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4년에 귀국해서는 충남연구원에 오게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홍동을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틈틈이 국내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지역을 다니기도 했지만 홍동에는 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유기농을 하시는 농민들이 굉장히 고령화가 되어 있어서 이러다가는 홍동에서조차 유기농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역에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나아가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관심사가 점점 확장됐어요. 그래서 첫해에는 홍동의 유기농업을 연구하고 그다음 해에는 마을에 새롭게 오신 분들과 지역에 원래 계셨던 농민들이 어떻게 좀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농업이 지속 가능해질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식으로 관심사가 확장되어 갔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농업공약이 제시되고 최근 들어서는 나름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제안되고 또 시행되었는데요. 예를 들어 공익형 직불제가 시행된다거나 농민수당이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든가 이런 사례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농촌 현실은 여전히 악화일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무력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망이랄까 나아가야 할 방향이 우리 사회 안에 공유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농촌과 농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지향해야할 대안의 방향을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기흥 원장님께서는 일본,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의 농촌 현실을 많이 보고 연구도 하셨을 텐데요.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이야기들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큰 그림을 생각할 때 어떤 것들이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까요?
저는 유기농업, 농업의 지속가능성, 귀농·귀촌, 청년 농업인으로 점차 관심사가 확장되어 왔는데, 지나고 보니 이들이 단순히 농민이 아니라 농촌 주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분들이 귀농을 했든 토박이든, 청년이든, 유기농을 하는 농민이든 농촌에서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청년들이 농업을 하려면 정주 기반이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교육이라든지 아니면 복지라든지 의료라든지 이런 기본적인 지역의 서비스들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그때부터 관심사가 확장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유기농업밖에 몰랐었고 농업에만 집중했었는데 그러다가 농촌 전체의 문제, 농촌 주민으로서 삶의 질을 어떻게 좋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된 거죠.
참고가 될 만한 다른 나라의 사례라고 하면 농업, 농촌 상황이 닮아 있어서 그런지 일본을 생각하게 되요. 일본의 농촌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고령화를 겪었고 소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소화가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일본의 사례를 자주 소개하고 있어요. 특히 일본은 여전히 지역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들이 남아있어요. 우리나라는 예를 들면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사업에 개인이 신청하는 방식이라면, 일본은 지역 안에서 지역 단위로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아직 지역이 역량이 되나? 이런 의문 제기가 많고 공무원들이 지역을 믿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지역을 주체로, 일본 농업위원회의 경험
앞서서 귀농·귀촌 연구도 진행하셨다고 했고, 현재 농촌의 가장 큰 문제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농민, 농촌 주민의 감소잖아요. 이런 문제에서도 지역 차원의 접근법이라는 게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만큼 귀농이 쉬운 곳도 없어요. 일본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먼저 확인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마다 농업위원회가 있거든요. 그리고 농업위원회가 모여서 광역 단위의 농업회의 그 위에 농업회의소로 연결되죠.
그래서 예를 들면 일본의 어느 지역에 농사를 짓겠다고 누가 들어오잖아요. 그럼 농업위원회에서 이 사람이 들어와서 우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니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지역마다 다르지만 사전에 마을의 선도 농가에 가서 1, 2년 농업을 연수하고 거기서 마을과 귀농한 사람이 서로 잘 맞겠다 싶으면 그 사람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그에게 맞는 땅을 찾아주죠.
일본 농업위원회의 주요 업무가 농지 업무에요. 농지법상에서 농지와 관련된 임대라든지 농지 이용과 관련된, 그다음에 농지를 둘러싼 분쟁까지 다 농업위원회에서 해결하도록 농지법이 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권한이 있죠. 그래서 농지를 빌려줄지 아니면 지역에서 내줄지 하는 것들이 지역 안에서 해결 가능하죠. 그리고 일본은 ‘사람농지플랜’이라고 해서 지역의 고령화된 분들의 농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마을 단위에서 논의하도록 하고 있어요. 반면 우리는 농지 임대에 대한 업무를 농지은행으로 몰고 있으니까 지역하고의 연계성은 전혀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확실히 우리나라의 농지은행은 농지를 소개해주긴 하는데 굉장히 기계적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행정구역상 같은 지역이기만 하면 어디 사는지와는 무관하게 농지를 소개해 주잖아요. 농본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도 지역 농지은행에 가서 농지를 구한다고 했더니 10킬로미터 떨어진 농지를 소개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큰 차이가 있죠. 농업위원회에서 농지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면 마을 차원에서 농사를 짓도록 도움을 주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제도―후견인 제도 같은 것들―로 농촌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연계가 되요. 그리고 정착 이후에도 농업 기술을 가르쳐주고요. 그러니까 지역 차원에서 고민을 해주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려면 살 곳이 있어야 하니까 집도 찾아봐 주고. 나아가서는 귀농인이 생산 이후에 판매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니까 판매까지 함께 고민을 같이 해주는 식인 거죠. 지역 안에서 귀농인에 대한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방식으로요.
반면 우리나라는 귀농인을 유치하죠. 귀농·귀촌하러 오세요, 막 얘기는 하는데 정작 농촌에 가서는 농사지을 땅도 구하기 어렵고 그다음에 농사를 짓고, 판매하는 부분은 같이 고민해 줄 단위가 없는 거예요. 주거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죠. 오라고는 하는데 그다음 과정이 없는 거죠. 일본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게 좀 까다롭긴 하지만, 농업 기술에서부터 농촌 생활에 대한 것, 사는 집부터 농산물 판매까지 다 연결이 되니까 주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지역 안에서 같이 해주는 게 인상적이죠.
그리고 청년농에 대한 지원도 비슷한 듯 차이가 있죠.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청년농에게 생활금을 주는 사업이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 3년간 매년 110만원, 100만원, 90만원을 지급하고 일본은 예비 2년, 창농 후 3년을 주거든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청년농에 대한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느냐인 것 같아요. 일본은 앞에서 말한 ‘사람농지플랜’ 논의를 하고 있는 마을의 청년에게 생활금 지원이 이루어지죠. 마을과 연결되어 있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농지를 임대하는 문제라든지 청년후계농영농정착지원사업 지원이 지역(마을)과는 무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정작 거주하고, 농사짓는 마을에서는 도움을 받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청년농 사업에 선정된 청년들이 얘기하는 게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마을에서도 연고가 없는 친구가 마을과의 소통 없이 들어오게 되니 도와주기 어려운 거죠. 지역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지역에 청년이 왔으니까 ‘마을에서 돌봐라’, 이거는 지역에서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이렇게 되는 거고요.
저는 귀농 정책, 청년 정책도 지역과 같이 고민하도록 정책이 구상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지역의 문제를 지역이 해결하도록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농지 문제는 농어촌공사에 맡기고, 청년농은 지자체에 맡기고, 농업기술 교육은 농업기술센터에 맡겨서 하니 서로 시너지가 생기지 않는 거죠. 하지만 농어촌공사나 농지은행이나 농업기술센터는 각 지역(읍면)에서의 일을 잘 알지 못하잖아요. 공익직불도 마찬가지인 거죠. 이 사람이 예를 들면 그런 활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이런 것들을 농산물품질관리원에 있는 사람이 하루 만에 나와서 절대 확인 못 하거든요. 일본이 딴 건 모르겠지만 지역에 자율성을 부여해서 지역 내에서 그런 훈련을 계속 계속하면서 역량이 커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우리가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를 넘어 농촌의 삶을 보듬는 직불제
농업・농촌 문제 해결의 핵심은 지역이 중심이 되는 데에 있다는 이야기가 저로서는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좀 전에 직불금 이야기도 하셨는데, 혹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직불금과 같은 제도에도 지역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방안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공익직불제라는 이름으로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죠. 2020년 5월부터 시행이 됐는데, 공익직불제에는 기본형과 선택형 2개가 있어요. 그래서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직불금을 주는 게 기본형이고, 선택형은 다른 걸 녹여보자고 해서 그림은 2개를 짜기는 했는데, 선택형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어요. 그때 빠르게 새로운 제안들이 나왔어야 하는데, 당시 그 논의가 나왔을 때 공익 기능이 뭐냐는 논의를 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죠.
그런데 선택형 직불제의 세부 방안에 대해서 참고하기 위해 일본 사례를 봤더니 일본에서는 다면적 기능 직불이라고 아예 이름을 다면적 기능을 하면 직불금을 준다고 설정하고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었더군요.
유럽에서 멀티 펑셔널 농업(Multifunctional agriculture: 우리나라에서는 다기능농업으로 알려짐)이 등장하면서 일본에서는 2000년에 이걸 농업의 다면적 기능으로 도입했어요. 그러니까 농업에는 생산 역할만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측면의 역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 거죠. 일본은 농업 활동하면서 농업・농촌의 다면적 기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경작하는 농지가 관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농지 주변 관리라든지 수로라든지 저수지라든지 하는 공간들도 함께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 모든 걸 관리해야 한다면 일이 많을 텐데 농촌 인구도 줄고, 현재 추세대로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이러한 활동이 굉장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동체 활동이 중심이 된 다면적 기능 직불을 설계했어요.
다면적 기능 직불은 지역에 있는 농민뿐 아니라 공익 활동이나 다면적 기능에 관심 있는 도시민들도 참여하게 해서 그 기능을 증진하는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그냥 통으로 주는 거예요. 직불금이 어떻게 산정되냐면 기본적으로는 지역 안에 농지와 관련된 공동 활동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농지 면적에 따라서 계산했어요. 예를 들면 논은 10아르당 총 9만 원. 그러니까 1헥타르면 90만 원 정도 되는 거고. 밭은 50만 원 정도 이렇게 되는 건데요. 공동체 활동에 30명이 참여했다고 가정하면, 활동이 이뤄지는 농경지 면적을 기준으로 직불금을 통으로 지불하고, 해당 직불금을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사람이 나눠가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황새를 보존한다든지 아니면 습지를 보존한다든지 하는 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농민은 물론 활동에 참여하는 지역학교의 학생과 선생님도 참여할 수 있고 활동가, 농촌 주민들에게도 직불금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획한 거예요.
그리고 공동체 활동이 농업 활동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농지 유지를 하는 활동도 괜찮고, 농지, 농촌과 관련된 조건들을 향상하는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다면적 직불에 포함될 수 있는 거죠. 우리 지역에 어떤 활동들을 할 것인지 자원 조사도 해야 하고, 예를 들면 관련된 분들이 검토회의도 해야 하고 그런 것들도 이 비용 안에 다 넣어서 그러니까 다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전 과정에 비용으로 다 주는 거죠. 예를 들면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부재지주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지역에서 해결하기 위한 작업도 직불제 활동이 되더라고요. 부재지주에 연락하는 활동도 다면적 기능을 위한 공익 활동으로 보고 프로그램에 포함을 시켜서 전 과정을 이렇게 지원을 해줘요.
일본 사례의 핵심은 지역에 필요한 공익 증진 활동들이 뭔지는 지역에서 결정한다는 거죠. 그리고 지역에서 정한 바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한 거고요. 실제로 지역의 농업・농촌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한다면, 개인, 마을, 면 단위에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거죠. 이러한 형태의 직불금을 저는 ‘공익 증진 직불’과 ‘중점 지역 직불’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도입해 보자 제안했고요.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론적인 틀이 아니라 실제로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거죠. 거기에 집중해서 그럼 뭘 할 수 있을지를 찾아서 지금 빠르게 실천을 해야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제안들이 힘을 받으려면 농사나 농촌의 가치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공감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농사와 농촌에 대해 무관심한 도시민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는 측면에서도 지역의 공익 기능을 증진하는 활동에 관심 있는 도시민이나 활동가들이나 농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참여를 더 많이 늘릴 기회를 주는 일본의 사례가 좋아 보여요. 이게 좋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한다면 이보다 좋은 홍보는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모내기라도 한번 해보게 되면, 논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게 되면 그 안에 이런 작은 생명들이 있구나, 이렇게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애정이 생기잖아요, 쌀이 이렇게 귀하게 자라는 거구나,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거구나 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잖아요.
지역에서도 직불제에 참여할 방법이 다양한 게 낫죠. 예를 들어 은퇴한 농민일 경우 마을에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역할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직불금으로 받을 수 있는 거죠. 내가 농사는 안 짓지만 농촌 주민으로서 살고 있으면서 함께 공익 기능을 하니까 직불금을 주더라. 그리고 도시민도 같이 참여하면 직불금을 주더라. 이렇게 되면 뭔가 공익 기능을 증진하는 활동 자체에 집중할 수가 있어서 참여자도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고 농업, 농촌에 대한 이해도 더 늘지 않을까 생각해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농지만 보전해서는 안 되잖아요. 농지 옆의 하천이라든지, 저수지 주변이라든지 농촌의 다른 것도 보전이 돼야지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농업과 농촌 보전의 책임을 농민에게만 지우는 것도 맞지 않고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라도 더더욱 농업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농업, 농촌의 공익 증진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 직불금을 주고,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직불금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아 보여요. 그리고 무슨 활동에 직불금을 줄 것인가, 누구에게 줄 것인가 그것도 지역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공익 기능 증진이 필요한 시기에 조금이라도 농업 환경이 개선된다고 하면 개인이든 공동체든 더 큰 지역이든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할 때라고 봐요. 특히 이제 농업・농촌의 문제는 나 혼자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안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물도 다 연결이 되어 있고 환경도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유기농, 잔류농약검사를 넘어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최근 기후위기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로 인해서 농업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논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여야 하고, 소 방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요. 하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작년까지는 논에 볏짚을 환원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가, 다음 해에는 볏짚을 빼는 게 기후위기의 해결책이라고 하는 식으로 해마다 정부의 지침이 달라지다 보니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일본에 미쓰비시연구소라는 곳이 있어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곳입니다. 미쓰비시연구소에서 2000년대 초반에 농업의 다면적 기능이 경제적으로 얼마인지 수치화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러나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것을 수치화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자칫하면 사안의 경중을 따질 때도 경제적 수치를 기준으로 결정될 위험도 생기죠.
그래서 예를 들면 ‘논에서 배출되는 메탄’과 같이 특정한 수치에 너무 집중하면 방향이 굉장히 이상하게 나갈 수가 있죠. 예를 들어 지금 무경운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죠. 그런데 그 근거가 뭐냐면 무경운은 농기계를 쓰지 않아서 기름(화석연료)을 안 쓴다는 거예요. 경운을 안 하게 되면 표토가 보존되고 그로 인해 안에 있던 탄소가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하자는 게 아닌 거죠. 그게 작물이든 잡초든 식물이 상시로 있기 때문에 뿌리가 많아지고 그로 인해 토질이 좋아지고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이 향상되는 걸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농기계를 안 쓰니까 무경운 해야 한다는 수준이에요. 논이라는 습지가 생물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는 무시하고 하루 아침에 메탄에만 집중하는 이런 논의방향은 문제인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거론되는 스마트팜 역시 단순한 근거에 의존하고 있죠. 스마트팜에 사용하는 자재들이나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공정 과정은 안 보는 거죠. 수치화하기 쉬운 단순한 방안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 파괴돼서 균형이 무너졌고,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식의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통합적인 관점의 합리성은 현장에 있는 농민들에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외국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으로 유기농이 대두되는 게 부럽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기농은 인증제, 즉 농약 검출과 인증 취소 등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유기농과 다른 나라의 유기농이 처한 상황이 매우 대조적인데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기농과 관련해서 부정적인 논의들이 주로 나오는 것일까요?
기후위기가 대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유기농이라는 전략이 전면에 등장했어요. 그래서 유럽연합 같은 경우에는 2019년에 팜투포크(farm to fork) 전략, 즉 유기농업 면적을 2030년까지 전체 농경지의 25%로 늘리겠다, 그다음에 화학 살충제 사용량을 50% 줄이겠다는 계획들이 나오고 있고 우리보다 유기농업 정책이 더 떨어져 있는 일본도 유기농업 면적을 2050년까지 25%로 늘리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친환경면적을 2050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고 하고 있어요. 2030년까지는 12%인데 지난 1년 사이에 친환경농사를 하는 농민이 5천 명 줄었어요. 면적은 5%에서 4.6%까지 떨어졌고요. 그동안 우리는 친환경농업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농약에 대해 320가지 검사를 하다가 지금 463가지로 늘리고 있는 걸 보면 친환경농업이 너무 검사 위주로 가고 있다고 여겨져요.
지난번에 인증 문제 때문에 일본의 인증기관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나온 이야기가 무농약이라는 용어를 일본 정부가 쓰지 않도록 했대요. 왜냐면 정말 농약이 안 나온다는 거를 증명해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농약을 안 썼다는 거지 농약이 검출이 안 된다는 게 아닌데 무농약이라는 용어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죠.
무엇보다 유기농 인증과 관련해서 일본과 한국의 제도에는 몇 가지 큰 차이가 있죠. 잔류농약 검출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일본도 유기농업 인증에 해당 조항이 있긴 있어요. 잔류농약 검출 검사를 하긴 하죠.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십수 년간 혹은 수십 년간 유기농을 해왔던 농가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은 농민이 의도적으로 농약이 썼다는 게 밝혀지지 않으면 오히려 농민이 피해를 보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요. 그래서 해당 인증기관에서 농민이 고의로 농약을 뿌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인증을 취소하지 못하죠.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유기농업을 실천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인증 취소를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거죠.
그리고 일본은 사실 인증을 받는 농가들이 4천 명도 안 돼요. 왜냐면 일본은 70년대 초반 환경 오염이 심화하면서 먹거리는 안전할지 고민한 소비자들이 모여서 화학비료나 농약을 안 쓴 농산물을 먼저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제휴의 형식으로 유기농업이 시작돼서 생산자 그룹과 소비자 그룹이 서로서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마크 자체가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 후에 1990년대에 일본 정부가 인증 제도를 도입했지만 인증은 인증대로 비용이 들고 그렇다고 판매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어서 거추장스러운 건 하지 않겠다, 다시 제휴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일본은 지금도 인증받은 유기농민은 4천 명을 넘지 못하고 있어요. 반면에 2010년에 인증을 받지 않고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가 얼마만큼 되는지를 대략 조사했을 때도 8천 농가가 넘었거든요.
일본 정부에서도 인증받지 않은 농가들도 유기농업을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환경보전형농업직불이 있는데, 인증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대로 활동 내용을 기준으로 직불제가 지급되다 보니 인증이 없어도 직불금을 주는 거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하고 관련된 걸로 유기농업 면적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인증하는 4천 명도 안되는 농가로는 목표했던 면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인증 받지 않은 농가의 땅도 다 포함해서 유기농 농지로 계산하고 있죠.
결국은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업의 원리, 원칙이 무엇인지 다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형태로든 유기농을 활성화시키려면 농약이 검출되었느냐에 주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한국유기농업연구소에 있을 때 농민들하고 나눈 이야기가 있어요. 인증 초기에 아예 토양 오염이 얼마나 됐는지를 측정하고 그 후 토양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변화를 계속 조사하는 게 오히려 유기농의 본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거죠.
끝으로 앞으로 농본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까요? 농본의 활동 방향이나 활동에 대해서 제안하실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특정 관심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농촌과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고민을 함께 해주면 좋겠어요. 이전에는 저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이야기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농업과 농촌 문제가 복합적이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에는 안 되겠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다양한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축적해 나가면 종합적인 대안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농본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고민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기흥―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 원장.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농업대학, 동경대학대학원에서 유기농업 공부. 2014년 귀국하여 충남연구원을 거쳐 한국유기농업연구소 부소장 재직. 2023년 3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농업·농촌 연구를 위해 아시아농업농촌연구원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