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본 3주년 행사 2부에서 '우리가 꿈꾸는 농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크콘서트 내용을 정리하여 농農익는 대화의 꼭지로 싣습니다. 대담 기록은 질문에 따라 총 세 편으로 나누어 구성했습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원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사회)
하승수 올해 농본 3주년을 맞아 농촌 문제, 농업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자치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부 농촌 난개발 지역 사례를 보면 면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반대하는데도 군청이나 업체가 사업을 밀어붙인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인데, 저희는 읍면 자치를 확대하고 그 중간 단계로서 읍면장 직선제를 제안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농촌에서 자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국회의원도 면을 대표하지 않아, 농촌문제 해법은 자치의 확대에 있어
구자인 제가 일본 유학을 가서 박사 논문 쓸 당시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일본 농촌의 역사적 변화과정입니다. 1950~1970년대 일본에서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될 때 농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것이 일본 농촌의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했습니다. 당시 제 키워드는 두 가지였는데, ‘자급’과 ‘자치’였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농촌이 자급의 힘을 잃어버린 것, 자치 역량을 잃어버린 탓에 일본 농촌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급이라고 하는 게 단순히 먹거리 자급만 떠올리는데 그게 아니라 에너지의 자급, 나아가 사람의 자급, 경제의 자급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자급의 힘이 자치의 역량을 결정하는데, 저는 자치란 나의 운명, 우리 지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 농촌은 중앙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산업폐기물 단지 문제처럼 대기업의 횡포에도 시달리는 등 농촌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개발 ‘대상’인 거죠. 어쨌든 지금의 농촌을 누가 가장 많이 파괴했냐 하면 결국 행정이 다 파괴했거든요. 중앙정부 정책이 결국은 농촌을 파괴해온 셈인데 행정과 중앙정부는 그런 반성이 별로 없습니다.
결국 우리 지역사회의 운명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했을 때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자치에 주목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면의원 선거를 세 번 했고, 면장도 두 번 주민 직선으로 선출했는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인구 3만 명이 되는 군도 작다고 그러는데, 저는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읍과 면의 자치권을 다시 회복하는 게 작은 숙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헌법도 손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면 지방선거로 선출된 군의원조차 면을 대표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개 면을 합쳐서 군의원 한 명을 뽑고, 국회의원도 여러 개 군을 합쳐서 한 명을 뽑는 식이죠. 특히 수도권에 살고 있는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사람들이 전국의 운명을 다 결정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죠. 우리가 상상력이 너무 좁은 상태인데, 저는 ‘읍면 자치’를 다시 회복하는 게 정말 중요한 숙제라고 봅니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치를 확대해나가야겠죠. 읍면이 자치단위가 되고, 읍면장을 투표로 뽑고, 면의회를 주민 직선으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가되, ‘읍면장 주민추천제’와 같은 현행 제도를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홍동면장을 주민들이 추천해 뽑을 수 있는 제도예요. 공무원 중에 뽑을 수도 있고, 민간인 중에서도 뽑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홍동면장은 임기 동안 떠날 생각 안하고,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비전을 수립할 수가 있겠죠.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는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우리는 시군구가 자치단체인데 일본은 시정촌(市町村)이 자치단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정촌은 우리의 읍면에 해당합니다. 일본에서 인구수가 가장 작은 자치 단체는 주민이 몇 명쯤 될까요? 168명이 가장 작은 자치단체입니다. 일본에는 인구 3,000명이 안 되는 지자체가 200개 정도 됩니다. 그렇게 작은 지역에서도 면장을 주민들이 뽑고, 의회를 직접 구성하고 있어요. 일본은 인구 3,000명 쯤 되는 지자체라면 그 안에 공무원 수가 100명 이상 있습니다. 인구 5,500명인 지자체는 공무원 수가 140명 쯤 있거든요. 140명이 공공행정을 하는데, 지역 주민 말을 안 들을 수 없고, 공무원들은 그 지자체에 살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니까 주민들하고 항상 고민을 같이 하면서 길을 찾죠. 우리 지방행정은 지금 전혀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야 우리에게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studio H 박혜정
면의 자치는 마을자치, 지역 자치 조직에의 참여로부터 시작
하승수 자연스럽게 우리 주정산 조합장님 말씀도 들어보겠습니다. 농협도 자치 조직인데, 읍면 자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주정산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제가 홍동을 볼 적에 면장을 우리 손으로 뽑지는 못해도 자치가 나름대로 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0개 마을 총회나 대보름 때 돌아보면, 이장님 한 분을 선출해도 진지하게 뽑고 있어요. 엄청 발전된 형태는 아니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새로운 사람들이 마을로 유입되고 있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마을 자치에 참여를 하게 되는 거죠. 참여를 하면서 인정을 받고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마을 자치부터 만들어져야 됩니다.
다른 이유로는 단체 자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면 단위에서 농협이라든지, 신협이라든지, 의료생협이라든지, 협동조합 뜰(홍동면 협동조합 식당・술집)이라든지 다 하나의 자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런 단체들이 하나하나 모여 면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면장 직선제도 전국적으로 한 번에 하기는 쉽지 않을 거에요. 도 단위로는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그것이 모델로 만들어져서 확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자치는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단체의 구성원들이 얼마만큼 열심히 참여해주느냐에 따라 단체의 운명이 달라지죠. 마을 단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체 안에서, 마을 안에서 힘을 모아 작은 성취가 쌓일 때 그 마을은 작은 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자신감을 쌓아가는 게 자치를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하승수 저희 농본에서도 2026년 지방선거 때 한번 시범적으로 몇 군데라도 면장 직선제를 도입해서 면장이 주민들을 대변하고, 면 내의 여러 자생단체와 주민조직들하고 협력해서 면 자치를 구현해보자는 제안을 해보려합니다. 이어서 강마야 박사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자치로 인한 변화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자치의 출발점
강마야 농본에서 얼마 전 읍면 자치권 확대 방안이라는 브리핑을 냈어요. 여기 보면 이제 우리나라 자치의 역사를 쭉 나열하시고, 자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그다음에 했으면 하는 걸 중심으로 말씀드릴게요. 우선 자치하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농민들한테 자치를 와닿게 하려면, 자치를 할 때 우리 마을에 어떤 일이 생길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하는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자치를 하게 되면 어떤 것들이 좋아질지 상상하기 위해서는 실태 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치로 생겨날 변화를 상상하는 시작이 내 주변, 내 이웃, 마을의 실태를 우리가 스스로 알아가는 작업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우리 지역의 실태를 우리 스스로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오늘 행사가 치러지고 있는 홍동면에 축사 문제가 있는데 우리 동네 축사가 도대체 몇 개인지 아무도 몰라요. 파악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에 돌아다니면서 축사가 몇 개인지 세어보고, 축사에서 키우는 가축의 종류와 수도 세어 보는 거죠.
또 만약에 농지 문제가 있다고 하면, 각 필지에 누가 진짜 농사짓고 있는지 파악해보는 거죠. 그런데 청년이 왔는데 300평이 없어서 농업경영체 등록을 못 받는 상황이라면, 실태 파악이 되어 있다면 농사짓지 않는 땅을 연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치가 된다고 하면 지역에서 스스로 부족한 땅, 남는 땅, 모자란 땅을 분명히 알게 되고, 마을에 살면서 제도적으로 혜택받지 못하거나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땅과 연결해 줄 수 있는 거죠. 청년농과 귀농귀촌 가구에게 마을에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실제 살 기반들을 지역 주민들이 찾아서 연결을 해준다면, 그것이 자치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돌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 농촌에 굉장히 많습니다. 그 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를 지역 사람들이 관찰하고 다니는 거죠. 저 어르신이 밥은 제대로 챙겨드시는지, 병원에 어떻게 이동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관찰을 통해 파악된 정보를 조합하여 읍내 나가는 마을 사람의 차를 타고 가실 수 있게 한다면 그게 자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거죠. 소소하지만 행정에서 잡아내지 못해 발생하는 일들을 자치를 통해 해결하는 경험이 쌓이면 결국 주민들이 힘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이 읍면 자치의 출발점이자 끝 아닐까 생각합니다.
난국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민주주의
하승수 마지막으로 김정현 발행인께서 읍∙면 자치, 농촌 자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정현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특별히 농촌자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긴 어렵고, 지금 왜 민주주의가 절실한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역시 기후변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개인보다 기업이, 제3세계보다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 45%에 대한 책임이 있는 최상위 부유층 10%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전 세계 상위 10%의 생활수준이 평균으로 내려오기만 해도 온실가스 3분의 1이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기후위기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는 엘리트 기득권층에서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라고 하지만 이것의 본질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글로벌 경제가 땅과 인간을 황폐하게 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기후대응은 화석연료 사용 줄이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산업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경제를 멈춰 세워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과는 완전히 다른 논리와 가치로 작동하는 사회를 상상해야 합니다. 경제도, 인구도 축소돼야 하고, 달라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정치구조가 필요하겠죠. 게다가 갈수록 줄어드는 자원(식량, 에너지, 물 등)과 심화되는 경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국내외 갈등도 고조될 수밖에 없잖아요. 미국과 중국이 저렇게 아웅다웅하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그런 측면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먹고살기 편하면 왜 저러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좀 평화롭게, 마음 놓고 살기 위해서도 우리 삶의 방식, 산업자본주의를 넘어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정치권은 세계 어디에서나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이익을 포기하느니 세상이 망하는 쪽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1992년부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가 28회나 열렸습니다. 뭐가 바뀌었습니까. 그래서 <녹색평론>은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이 민주주의밖에 없다는 얘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만약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1부에서 나온 기막힌 일들이 애초에 벌어질 수 없죠. 민주주의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저는 지금 우리가 도시고 농촌이고 돈의 논리 앞에 굉장히 취약해져 있는 상황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를 끌어내려야죠. 경제는 사회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앞서 구자인 선생님께서 미래는 농촌에서 열린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농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모인 분들이 농촌에서 하는 활동을 지켜보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도 일종의 투표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날 하루가 아니라 매일같이 농(農)에 관심을 갖고, ‘농본’ 활동도 나만 알고 마는 게 아니라 주변에 퍼뜨려서 이런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키워나가야죠. 그렇게 해서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라는 틀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다른 가치’들이 표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자치(自治)행위가 될 수 있잖아요.
Ⓒstudio H 박혜정
하승수 오늘 행사의 주제를 우리가 꿈꾸는 농촌이라고 잡았는데요. 우리가 지금의 현실은 어렵고 헤쳐나가야 될 숙제들도 많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결국 꿈과 희망으로 또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농본 3주년 행사 2부에서 '우리가 꿈꾸는 농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크콘서트 내용을 정리하여 농農익는 대화의 꼭지로 싣습니다. 대담 기록은 질문에 따라 총 세 편으로 나누어 구성했습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원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사회)
하승수 올해 농본 3주년을 맞아 농촌 문제, 농업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자치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부 농촌 난개발 지역 사례를 보면 면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반대하는데도 군청이나 업체가 사업을 밀어붙인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인데, 저희는 읍면 자치를 확대하고 그 중간 단계로서 읍면장 직선제를 제안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농촌에서 자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국회의원도 면을 대표하지 않아, 농촌문제 해법은 자치의 확대에 있어
구자인 제가 일본 유학을 가서 박사 논문 쓸 당시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일본 농촌의 역사적 변화과정입니다. 1950~1970년대 일본에서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될 때 농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것이 일본 농촌의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했습니다. 당시 제 키워드는 두 가지였는데, ‘자급’과 ‘자치’였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농촌이 자급의 힘을 잃어버린 것, 자치 역량을 잃어버린 탓에 일본 농촌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급이라고 하는 게 단순히 먹거리 자급만 떠올리는데 그게 아니라 에너지의 자급, 나아가 사람의 자급, 경제의 자급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자급의 힘이 자치의 역량을 결정하는데, 저는 자치란 나의 운명, 우리 지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 농촌은 중앙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산업폐기물 단지 문제처럼 대기업의 횡포에도 시달리는 등 농촌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개발 ‘대상’인 거죠. 어쨌든 지금의 농촌을 누가 가장 많이 파괴했냐 하면 결국 행정이 다 파괴했거든요. 중앙정부 정책이 결국은 농촌을 파괴해온 셈인데 행정과 중앙정부는 그런 반성이 별로 없습니다.
결국 우리 지역사회의 운명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했을 때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자치에 주목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면의원 선거를 세 번 했고, 면장도 두 번 주민 직선으로 선출했는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인구 3만 명이 되는 군도 작다고 그러는데, 저는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읍과 면의 자치권을 다시 회복하는 게 작은 숙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헌법도 손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면 지방선거로 선출된 군의원조차 면을 대표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개 면을 합쳐서 군의원 한 명을 뽑고, 국회의원도 여러 개 군을 합쳐서 한 명을 뽑는 식이죠. 특히 수도권에 살고 있는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사람들이 전국의 운명을 다 결정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죠. 우리가 상상력이 너무 좁은 상태인데, 저는 ‘읍면 자치’를 다시 회복하는 게 정말 중요한 숙제라고 봅니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치를 확대해나가야겠죠. 읍면이 자치단위가 되고, 읍면장을 투표로 뽑고, 면의회를 주민 직선으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가되, ‘읍면장 주민추천제’와 같은 현행 제도를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홍동면장을 주민들이 추천해 뽑을 수 있는 제도예요. 공무원 중에 뽑을 수도 있고, 민간인 중에서도 뽑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홍동면장은 임기 동안 떠날 생각 안하고,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비전을 수립할 수가 있겠죠.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는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우리는 시군구가 자치단체인데 일본은 시정촌(市町村)이 자치단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정촌은 우리의 읍면에 해당합니다. 일본에서 인구수가 가장 작은 자치 단체는 주민이 몇 명쯤 될까요? 168명이 가장 작은 자치단체입니다. 일본에는 인구 3,000명이 안 되는 지자체가 200개 정도 됩니다. 그렇게 작은 지역에서도 면장을 주민들이 뽑고, 의회를 직접 구성하고 있어요. 일본은 인구 3,000명 쯤 되는 지자체라면 그 안에 공무원 수가 100명 이상 있습니다. 인구 5,500명인 지자체는 공무원 수가 140명 쯤 있거든요. 140명이 공공행정을 하는데, 지역 주민 말을 안 들을 수 없고, 공무원들은 그 지자체에 살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니까 주민들하고 항상 고민을 같이 하면서 길을 찾죠. 우리 지방행정은 지금 전혀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야 우리에게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studio H 박혜정
면의 자치는 마을자치, 지역 자치 조직에의 참여로부터 시작
하승수 자연스럽게 우리 주정산 조합장님 말씀도 들어보겠습니다. 농협도 자치 조직인데, 읍면 자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주정산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제가 홍동을 볼 적에 면장을 우리 손으로 뽑지는 못해도 자치가 나름대로 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0개 마을 총회나 대보름 때 돌아보면, 이장님 한 분을 선출해도 진지하게 뽑고 있어요. 엄청 발전된 형태는 아니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새로운 사람들이 마을로 유입되고 있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마을 자치에 참여를 하게 되는 거죠. 참여를 하면서 인정을 받고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마을 자치부터 만들어져야 됩니다.
다른 이유로는 단체 자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면 단위에서 농협이라든지, 신협이라든지, 의료생협이라든지, 협동조합 뜰(홍동면 협동조합 식당・술집)이라든지 다 하나의 자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런 단체들이 하나하나 모여 면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면장 직선제도 전국적으로 한 번에 하기는 쉽지 않을 거에요. 도 단위로는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그것이 모델로 만들어져서 확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자치는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단체의 구성원들이 얼마만큼 열심히 참여해주느냐에 따라 단체의 운명이 달라지죠. 마을 단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체 안에서, 마을 안에서 힘을 모아 작은 성취가 쌓일 때 그 마을은 작은 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자신감을 쌓아가는 게 자치를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하승수 저희 농본에서도 2026년 지방선거 때 한번 시범적으로 몇 군데라도 면장 직선제를 도입해서 면장이 주민들을 대변하고, 면 내의 여러 자생단체와 주민조직들하고 협력해서 면 자치를 구현해보자는 제안을 해보려합니다. 이어서 강마야 박사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자치로 인한 변화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자치의 출발점
강마야 농본에서 얼마 전 읍면 자치권 확대 방안이라는 브리핑을 냈어요. 여기 보면 이제 우리나라 자치의 역사를 쭉 나열하시고, 자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그다음에 했으면 하는 걸 중심으로 말씀드릴게요. 우선 자치하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농민들한테 자치를 와닿게 하려면, 자치를 할 때 우리 마을에 어떤 일이 생길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하는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자치를 하게 되면 어떤 것들이 좋아질지 상상하기 위해서는 실태 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치로 생겨날 변화를 상상하는 시작이 내 주변, 내 이웃, 마을의 실태를 우리가 스스로 알아가는 작업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우리 지역의 실태를 우리 스스로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오늘 행사가 치러지고 있는 홍동면에 축사 문제가 있는데 우리 동네 축사가 도대체 몇 개인지 아무도 몰라요. 파악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에 돌아다니면서 축사가 몇 개인지 세어보고, 축사에서 키우는 가축의 종류와 수도 세어 보는 거죠.
또 만약에 농지 문제가 있다고 하면, 각 필지에 누가 진짜 농사짓고 있는지 파악해보는 거죠. 그런데 청년이 왔는데 300평이 없어서 농업경영체 등록을 못 받는 상황이라면, 실태 파악이 되어 있다면 농사짓지 않는 땅을 연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치가 된다고 하면 지역에서 스스로 부족한 땅, 남는 땅, 모자란 땅을 분명히 알게 되고, 마을에 살면서 제도적으로 혜택받지 못하거나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땅과 연결해 줄 수 있는 거죠. 청년농과 귀농귀촌 가구에게 마을에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실제 살 기반들을 지역 주민들이 찾아서 연결을 해준다면, 그것이 자치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돌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 농촌에 굉장히 많습니다. 그 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를 지역 사람들이 관찰하고 다니는 거죠. 저 어르신이 밥은 제대로 챙겨드시는지, 병원에 어떻게 이동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관찰을 통해 파악된 정보를 조합하여 읍내 나가는 마을 사람의 차를 타고 가실 수 있게 한다면 그게 자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거죠. 소소하지만 행정에서 잡아내지 못해 발생하는 일들을 자치를 통해 해결하는 경험이 쌓이면 결국 주민들이 힘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이 읍면 자치의 출발점이자 끝 아닐까 생각합니다.
난국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민주주의
하승수 마지막으로 김정현 발행인께서 읍∙면 자치, 농촌 자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정현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특별히 농촌자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긴 어렵고, 지금 왜 민주주의가 절실한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역시 기후변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개인보다 기업이, 제3세계보다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 45%에 대한 책임이 있는 최상위 부유층 10%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전 세계 상위 10%의 생활수준이 평균으로 내려오기만 해도 온실가스 3분의 1이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기후위기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는 엘리트 기득권층에서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라고 하지만 이것의 본질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글로벌 경제가 땅과 인간을 황폐하게 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기후대응은 화석연료 사용 줄이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산업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경제를 멈춰 세워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과는 완전히 다른 논리와 가치로 작동하는 사회를 상상해야 합니다. 경제도, 인구도 축소돼야 하고, 달라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정치구조가 필요하겠죠. 게다가 갈수록 줄어드는 자원(식량, 에너지, 물 등)과 심화되는 경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국내외 갈등도 고조될 수밖에 없잖아요. 미국과 중국이 저렇게 아웅다웅하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그런 측면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먹고살기 편하면 왜 저러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좀 평화롭게, 마음 놓고 살기 위해서도 우리 삶의 방식, 산업자본주의를 넘어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정치권은 세계 어디에서나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이익을 포기하느니 세상이 망하는 쪽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1992년부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가 28회나 열렸습니다. 뭐가 바뀌었습니까. 그래서 <녹색평론>은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이 민주주의밖에 없다는 얘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만약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1부에서 나온 기막힌 일들이 애초에 벌어질 수 없죠. 민주주의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저는 지금 우리가 도시고 농촌이고 돈의 논리 앞에 굉장히 취약해져 있는 상황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를 끌어내려야죠. 경제는 사회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앞서 구자인 선생님께서 미래는 농촌에서 열린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농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모인 분들이 농촌에서 하는 활동을 지켜보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도 일종의 투표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날 하루가 아니라 매일같이 농(農)에 관심을 갖고, ‘농본’ 활동도 나만 알고 마는 게 아니라 주변에 퍼뜨려서 이런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키워나가야죠. 그렇게 해서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라는 틀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다른 가치’들이 표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자치(自治)행위가 될 수 있잖아요.
Ⓒstudio H 박혜정
하승수 오늘 행사의 주제를 우리가 꿈꾸는 농촌이라고 잡았는데요. 우리가 지금의 현실은 어렵고 헤쳐나가야 될 숙제들도 많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결국 꿈과 희망으로 또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