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본 3주년 행사 2부에서 '우리가 꿈꾸는 농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크콘서트 내용을 정리하여 농農익는 대화의 꼭지로 싣습니다. 대담 기록은 질문에 따라 총 세 편으로 나누어 구성했습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원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사회)
하승수 네 분이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농촌농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 같은 것들도 말씀해주시고, 농촌과 농업에 대한 생각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농촌・농업에 필요한 게 무엇인가'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오늘 모이신 분들 모두 지금 우리 농촌과 농업현실에 필요한 게 뭔지 각자 생각하시는 게 있을 텐데, 먼저 강마야 박사님부터 말씀해주시죠.
농에 대한 존중과 긍지
강마야 저는 농업 쪽 연구를 해서 농촌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상황은 아닌 것 같고, 농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 세 가지에 한 가지를 더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농업에서 생산 요소는 기본적으로 농지(토지), 농업노동력(노동), 자본이라고 제가 배웠는데, 이 원칙은 깨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농지 문제를 정상화하는 게 가장 필요합니다. 지금 통계를 보면 임차농이 50% 이상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농촌 어르신들이 떠나간 자리에 상속을 받지만 실제 농사짓지 않는 부재지주 혹은 투기 자본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여전히 모든 농업 정책이 농지를 기준으로 사업도 주고, 수당도 주고, 직불금도 주기 때문에 땅(농지)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인력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저는 부여에서 살고 있는데 읍내 나가보면 외국인들이 참 많습니다. 농촌의 고령화률이 45%라고 하면 굉장히 높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실제 현실을 마주하면 그냥 대다수가 노인입니다. 마을 버스정류장을 봐도, 거리에서도 80~90%가 노인입니다. 또 다른 면은 이주 노동자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10년 이내에 농촌의 미래는 외국인들로 많이 채워지겠구나 싶어요. 이런 사람들을 인력으로만 보지 말고, 농촌의 일원으로 같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가장 필요한 게 자본과 시설입니다. 저는 여기서 생산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수입 농자재에 의존하다 보니 치솟는 경영비로 굉장히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수입산 혹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재에 의존해 농사를 짓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을 어떻게든 줄이고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경영비 상승으로 인한 농가 소득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인데요. 농민, 농촌 주민들이 도시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나는 모자라니까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 자식한테 농사는 절대 물려주지 말아야지, 너는(자식들은) 돈 잘 벌고 똑똑해져서 서울로, 도시로 나가고 농사 절대 짓지 말라는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농민 스스로가 농업을 추천하지 않는 마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농업을 산업적으로만 보고,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하다 보니 농촌과 농사를 바라보는 감수성이 메말라버린거죠. 그런 상황에서 농촌과 농업 현실이 계속 열악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고, 피해의식이 생긴 현실이 있는데 사실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자치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tudio H 박혜정
외국인, 청년, 노인이 함께하는 공유마을을 꿈꾸는 홍동농협
하승수 강마야 박사님께서 필요한 것을 말씀해주셨는데, 현장에서 가장 고민하고 계시는 게 조합장님이시거든요. 이번 질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은데 이어서 말씀해주시죠.
주정산 제 사무실에 들어와 보시면 책상 위에 공유마을이라는 조감도가 걸려 있습니다. 앞서 박사님이 이야기하신 내용과 비슷한데요. 농촌의 노동력 문제를 떠올리면, 어차피 농촌에 있는 젊은 농부가 농사를 짓게 돼 있잖아요. 하지만 이들이 이 어마어마한 땅을 다 농사지을 수 없잖아요. 도울 사람이 이제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게 누구냐면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동농협에서는 올해 한 20명 정도 외국인 노동자를 직원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위한 쾌적한 숙소를 준비하는 거죠.
두 번째는 지역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복지가 잘돼야 해요. 지역에서 살기 편해야 된다는 겁니다. 청년 농부들이 지금 귀농귀촌 명목으로 많이 들어오잖아요. 지금 같은 환경이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온 청년이 열 명 있다면 한 3년쯤 지나면 한 명도 안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 농부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현재 현실을 보면, 한 5년 정도 열심히 하신 분들이 대출을 받아서 5년 거치 5년 상환을 한다고 보면, 초기 5년은 이자만 갚다가 그다음 5년은 원리금 동시 상환을 하는데 1년에 원금 4,000만 원씩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이자 400만 원이 더해지면 1년에 4,400만 원을 갚고, 먹고 살기 위한 생활비가 별도로 있어야 하는 거죠. 이러다보니 원금을 상환하게 되는 귀농 5~6년차가 되면 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먹고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렇다면 해결책이 뭘까요. 농부들한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 됩니다. 농업에 필요한 시설, 기계, 예를 들어서 하우스 이런 것들을 농협의 돈을 활용해서 제공하면 되는 거에요. 공간을 만들어서, 청년들이 와서 실습도 하고, 농사도 짓고, 판매도 해보고, 유통도 해보고 해서 자신감을 얻고요.
제가 홍동농협에 처음 들어와서(조합장이 돼서) 했던 일이 육묘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운영하려고 그러냐고 했지만 그것을 청년 농부들한테 줬습니다. 한쪽은 우리 전공부(풀무농업기술학교 전공부 과정)한테도 줬고, 한쪽은 지역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한테도 줬고 또 한쪽에는 청년농부한테도 줬고 그러니까 그게 잘 운영되고 있어요. 그다음에 할 일이 뭐냐면 기계를 사주는 거예요. 이앙기 한 대가 한 5,000만원 합니다. 근데 아무리 모내기를 해도 해도 그 5,000만원 갚을 때 되면 그 기계는 쓸모없게 되고 다시 사야합니다. 그러니 그 기계 또 사겠냐고요. 그래서 농협에서 기계를 사주고, 군에서 보증을 해주면 농민들이 그걸 이용하면서 농사를 짓게 될 것이라고 봐요.
마지막으로는 노인복지입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할 때 어디서 죽고 싶나요? 집이죠? 그 다음에는 친구 옆입니다. 이런 시설들이 이곳(농촌, 홍동면)에 지어져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 친구 옆에서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고, 고스톱도 치고, 요양시설 가기 전 단계까지는 최소한 내 친구들하고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상식처럼 자리잡게 되면 이 지역(홍동)은 훌륭한 곳이 됩니다. 이게 제 앞에 걸려 있는 공유마을이라는 꿈입니다.
하승수 앞서 강마야 박사님이 말씀하신, 당장 필요한 것들을 지역농협이 나서서 지역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고 계시고, 복지 문제까지 고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어서 구자인 박사님께서 보태서, 지금 농촌에 필요한 게 뭘까 말씀해주시겠습니다.
공동의 비전을 함께 수행해갈 농촌의 자치조직이 필요
구자인 농촌의 당면 과제와 해결 방향에 대해 말하자면 보고서 한 편 써도 될 정도의 이야기죠. 사실은 우리 안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옳은 대안이냐에 대해서 토론할 부분이 많다고 보거든요.
지금 우리 농촌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 했을 때, 첫 번째는 우리 안의 차이를 극복하고 어떻게 합의를 할 거냐, 지역사회를 어떻게 발전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우리 안의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있습니다. 주민자치회가 그런 걸 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대표조직이죠.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시는데, 주민자치회는 행정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농촌 주민들이 각자의 차이를 극복하고 어떻게 합의를 하고, 한 목소리를 내서 행정으로부터 정당성, 대표성을 획득해낼 것인가. 하여튼 우리 안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저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앞선 이야기와 연결하면 우리 안의 꿈과 희망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입니다. 저는 10년 발전 계획 같은 걸 빨리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정산 조합장님도 꿈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꿈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꾸는 꿈이 되려면 구상을 함께 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역사회 발전 방향에 대한 합의가 있으면 산업 폐기물 들어온다고 소문이 나면 금방 알아듣고 문제제기도 할 텐데, 지금은 우리 지역사회 전체에 대한 꿈을 우리가 못 그리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세 번째는 민간 영역의 단체 간 칸막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입니다. 행정도 칸막이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도 칸막이가 분명히 있거든요. 이 칸막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역 내 단체와 조직들이 어떻게 협력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비영리 네트워크 법인'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런 형태의 법인을 우리가 빨리 만드는 게 우리 농촌 사정을 보자면 시급하고 중요한 당면 과제라고 제안드립니다.
Ⓒstudio H 박혜정
소농을 지키는 농촌
하승수 현장에서, 연구자로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김정현 발행인께서 앞서 2부 초반에 말씀하셨듯 녹색평론의 역할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의 중요성을 깨닫게하고, 농촌과 농사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지금 농촌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정현 저는 우리가 왜 지금 농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가지인데, 원초적으로 생존의 차원에서 그리고 철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농(農)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지만 기후변화 대단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하겠다고 하는데 굉장히 안이한 소리죠. 이미 1.5도로 기온 상승 억제하는 일도 어렵다고 자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온실가스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아도 기후위기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좀 덜 야만적으로, 약자들을 보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놓을 것인가, 저는 이것이 다급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식량이 부족해질 겁니다. 에너지(연료), 물 같은 생존을 위한 기초적 물자를 두고 다툼이 벌어질 거라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쌀 포함)이 20퍼센트 정도잖아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까 석유 같은 화석연료 없이는 4퍼센트라고 합니다. 무서운 이야기죠. 요즘 기초 농산품 가격이 높다고 아우성인데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농업 무시하면서 딴짓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기후위기는 날씨가 극단적으로 덥거나 춥고 비가 퍼붓고 그런 문제가 아니죠. 심각한 경제문제,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대응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줄여야죠. 그래서 석탄발전 그만두고, 태양광 발전하고, 비행기 안 타고, 전기차 타면 되는 것 아닌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온실가스 거의 절반은 우리가 먹는 것과 관계가 있어요. 농사짓는 방식, 식품을 처리, 가공, 포장, 운송, 유통, 폐기하는 방식 등 농식품산업과 관련된 것만 바꾸어도 온실가스 배출을 5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면서 농업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리고 지금 우리 농촌에 밀려드는 산업단지, 발전시설, 오염시설 문제는 엄밀하게 따지면 농촌이 아니라 도시의 문제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산업단지가 필요합니까. 전기 만들어서 어디로 보냅니까. 그 많은 폐기물 어디서 나오는데요. 이 모든 행위가 멈추게 되면 곤란한 것은 도시죠. 농촌이라는 공간, 농사라는 생존의 기술, 농민문화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지속되기 위한 근본토대입니다. 이게 완전히 망가지면 미래는 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걱정거리가 늘었는데 인공지능 기술 때문입니다. 정밀농업, 스마트팜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그나마 농업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문제는 다 제쳐둔다고 해도 거기에 필요한 그 많은 에너지(전기)를 어떻게 감당한다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농업분야에서 기술혁신이라는 것은 자동화, 기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스마트팜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수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온갖 정보, 토양환경, 기후조건 등 온갖 데이터를 탈취해서 궁극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서너 개 기업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농식품 기업들이 전 세계 먹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70% 이상 인구는 소농들이 부양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인공지능기술이 농업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지금까지는 거대 기업들이 큰 이윤을 낼 수 없어서 방치해왔던, 소농들의 땅조차 손아귀에 넣고자 할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농업은 통째로 글로벌 기업들의 하청업자가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 연구하는 분들이 인공지능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연구 좀 많이 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어요.
한편, 철학적으로도 농적 가치는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문명의 필수 요소입니다. 기후위기는 땅속의 석유와 석탄 등을 너무 많이 뽑아내서, 너무 빨리 써대서 대기 중에 탄소가 많이 쌓인 결과잖아요. 천천히 조금씩 태웠다면 지구생태계가 소화할 수 있었겠죠. 즉 순환의 사이클이 망가진 게 원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순환을 핵심 원리로 하는 경제로 돌아가야죠. 농적 사회, 농업을 중심에 둔 사회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사람이 농촌, 농업, 농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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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원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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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사회)
하승수 네 분이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농촌농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 같은 것들도 말씀해주시고, 농촌과 농업에 대한 생각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농촌・농업에 필요한 게 무엇인가'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오늘 모이신 분들 모두 지금 우리 농촌과 농업현실에 필요한 게 뭔지 각자 생각하시는 게 있을 텐데, 먼저 강마야 박사님부터 말씀해주시죠.
농에 대한 존중과 긍지
강마야 저는 농업 쪽 연구를 해서 농촌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상황은 아닌 것 같고, 농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 세 가지에 한 가지를 더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농업에서 생산 요소는 기본적으로 농지(토지), 농업노동력(노동), 자본이라고 제가 배웠는데, 이 원칙은 깨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농지 문제를 정상화하는 게 가장 필요합니다. 지금 통계를 보면 임차농이 50% 이상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농촌 어르신들이 떠나간 자리에 상속을 받지만 실제 농사짓지 않는 부재지주 혹은 투기 자본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여전히 모든 농업 정책이 농지를 기준으로 사업도 주고, 수당도 주고, 직불금도 주기 때문에 땅(농지)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인력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저는 부여에서 살고 있는데 읍내 나가보면 외국인들이 참 많습니다. 농촌의 고령화률이 45%라고 하면 굉장히 높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실제 현실을 마주하면 그냥 대다수가 노인입니다. 마을 버스정류장을 봐도, 거리에서도 80~90%가 노인입니다. 또 다른 면은 이주 노동자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10년 이내에 농촌의 미래는 외국인들로 많이 채워지겠구나 싶어요. 이런 사람들을 인력으로만 보지 말고, 농촌의 일원으로 같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가장 필요한 게 자본과 시설입니다. 저는 여기서 생산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수입 농자재에 의존하다 보니 치솟는 경영비로 굉장히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수입산 혹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재에 의존해 농사를 짓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을 어떻게든 줄이고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경영비 상승으로 인한 농가 소득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인데요. 농민, 농촌 주민들이 도시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나는 모자라니까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 자식한테 농사는 절대 물려주지 말아야지, 너는(자식들은) 돈 잘 벌고 똑똑해져서 서울로, 도시로 나가고 농사 절대 짓지 말라는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농민 스스로가 농업을 추천하지 않는 마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농업을 산업적으로만 보고,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하다 보니 농촌과 농사를 바라보는 감수성이 메말라버린거죠. 그런 상황에서 농촌과 농업 현실이 계속 열악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고, 피해의식이 생긴 현실이 있는데 사실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자치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tudio H 박혜정
외국인, 청년, 노인이 함께하는 공유마을을 꿈꾸는 홍동농협
하승수 강마야 박사님께서 필요한 것을 말씀해주셨는데, 현장에서 가장 고민하고 계시는 게 조합장님이시거든요. 이번 질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은데 이어서 말씀해주시죠.
주정산 제 사무실에 들어와 보시면 책상 위에 공유마을이라는 조감도가 걸려 있습니다. 앞서 박사님이 이야기하신 내용과 비슷한데요. 농촌의 노동력 문제를 떠올리면, 어차피 농촌에 있는 젊은 농부가 농사를 짓게 돼 있잖아요. 하지만 이들이 이 어마어마한 땅을 다 농사지을 수 없잖아요. 도울 사람이 이제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게 누구냐면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동농협에서는 올해 한 20명 정도 외국인 노동자를 직원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위한 쾌적한 숙소를 준비하는 거죠.
두 번째는 지역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복지가 잘돼야 해요. 지역에서 살기 편해야 된다는 겁니다. 청년 농부들이 지금 귀농귀촌 명목으로 많이 들어오잖아요. 지금 같은 환경이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온 청년이 열 명 있다면 한 3년쯤 지나면 한 명도 안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 농부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현재 현실을 보면, 한 5년 정도 열심히 하신 분들이 대출을 받아서 5년 거치 5년 상환을 한다고 보면, 초기 5년은 이자만 갚다가 그다음 5년은 원리금 동시 상환을 하는데 1년에 원금 4,000만 원씩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이자 400만 원이 더해지면 1년에 4,400만 원을 갚고, 먹고 살기 위한 생활비가 별도로 있어야 하는 거죠. 이러다보니 원금을 상환하게 되는 귀농 5~6년차가 되면 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먹고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렇다면 해결책이 뭘까요. 농부들한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 됩니다. 농업에 필요한 시설, 기계, 예를 들어서 하우스 이런 것들을 농협의 돈을 활용해서 제공하면 되는 거에요. 공간을 만들어서, 청년들이 와서 실습도 하고, 농사도 짓고, 판매도 해보고, 유통도 해보고 해서 자신감을 얻고요.
제가 홍동농협에 처음 들어와서(조합장이 돼서) 했던 일이 육묘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운영하려고 그러냐고 했지만 그것을 청년 농부들한테 줬습니다. 한쪽은 우리 전공부(풀무농업기술학교 전공부 과정)한테도 줬고, 한쪽은 지역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한테도 줬고 또 한쪽에는 청년농부한테도 줬고 그러니까 그게 잘 운영되고 있어요. 그다음에 할 일이 뭐냐면 기계를 사주는 거예요. 이앙기 한 대가 한 5,000만원 합니다. 근데 아무리 모내기를 해도 해도 그 5,000만원 갚을 때 되면 그 기계는 쓸모없게 되고 다시 사야합니다. 그러니 그 기계 또 사겠냐고요. 그래서 농협에서 기계를 사주고, 군에서 보증을 해주면 농민들이 그걸 이용하면서 농사를 짓게 될 것이라고 봐요.
마지막으로는 노인복지입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할 때 어디서 죽고 싶나요? 집이죠? 그 다음에는 친구 옆입니다. 이런 시설들이 이곳(농촌, 홍동면)에 지어져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 친구 옆에서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고, 고스톱도 치고, 요양시설 가기 전 단계까지는 최소한 내 친구들하고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상식처럼 자리잡게 되면 이 지역(홍동)은 훌륭한 곳이 됩니다. 이게 제 앞에 걸려 있는 공유마을이라는 꿈입니다.
하승수 앞서 강마야 박사님이 말씀하신, 당장 필요한 것들을 지역농협이 나서서 지역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고 계시고, 복지 문제까지 고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어서 구자인 박사님께서 보태서, 지금 농촌에 필요한 게 뭘까 말씀해주시겠습니다.
공동의 비전을 함께 수행해갈 농촌의 자치조직이 필요
구자인 농촌의 당면 과제와 해결 방향에 대해 말하자면 보고서 한 편 써도 될 정도의 이야기죠. 사실은 우리 안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옳은 대안이냐에 대해서 토론할 부분이 많다고 보거든요.
지금 우리 농촌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 했을 때, 첫 번째는 우리 안의 차이를 극복하고 어떻게 합의를 할 거냐, 지역사회를 어떻게 발전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우리 안의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있습니다. 주민자치회가 그런 걸 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대표조직이죠.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시는데, 주민자치회는 행정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농촌 주민들이 각자의 차이를 극복하고 어떻게 합의를 하고, 한 목소리를 내서 행정으로부터 정당성, 대표성을 획득해낼 것인가. 하여튼 우리 안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저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앞선 이야기와 연결하면 우리 안의 꿈과 희망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입니다. 저는 10년 발전 계획 같은 걸 빨리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정산 조합장님도 꿈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꿈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꾸는 꿈이 되려면 구상을 함께 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역사회 발전 방향에 대한 합의가 있으면 산업 폐기물 들어온다고 소문이 나면 금방 알아듣고 문제제기도 할 텐데, 지금은 우리 지역사회 전체에 대한 꿈을 우리가 못 그리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세 번째는 민간 영역의 단체 간 칸막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입니다. 행정도 칸막이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도 칸막이가 분명히 있거든요. 이 칸막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역 내 단체와 조직들이 어떻게 협력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비영리 네트워크 법인'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런 형태의 법인을 우리가 빨리 만드는 게 우리 농촌 사정을 보자면 시급하고 중요한 당면 과제라고 제안드립니다.
Ⓒstudio H 박혜정
소농을 지키는 농촌
하승수 현장에서, 연구자로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김정현 발행인께서 앞서 2부 초반에 말씀하셨듯 녹색평론의 역할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의 중요성을 깨닫게하고, 농촌과 농사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지금 농촌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정현 저는 우리가 왜 지금 농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가지인데, 원초적으로 생존의 차원에서 그리고 철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농(農)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지만 기후변화 대단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하겠다고 하는데 굉장히 안이한 소리죠. 이미 1.5도로 기온 상승 억제하는 일도 어렵다고 자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온실가스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아도 기후위기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좀 덜 야만적으로, 약자들을 보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놓을 것인가, 저는 이것이 다급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식량이 부족해질 겁니다. 에너지(연료), 물 같은 생존을 위한 기초적 물자를 두고 다툼이 벌어질 거라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쌀 포함)이 20퍼센트 정도잖아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까 석유 같은 화석연료 없이는 4퍼센트라고 합니다. 무서운 이야기죠. 요즘 기초 농산품 가격이 높다고 아우성인데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농업 무시하면서 딴짓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기후위기는 날씨가 극단적으로 덥거나 춥고 비가 퍼붓고 그런 문제가 아니죠. 심각한 경제문제,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대응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줄여야죠. 그래서 석탄발전 그만두고, 태양광 발전하고, 비행기 안 타고, 전기차 타면 되는 것 아닌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온실가스 거의 절반은 우리가 먹는 것과 관계가 있어요. 농사짓는 방식, 식품을 처리, 가공, 포장, 운송, 유통, 폐기하는 방식 등 농식품산업과 관련된 것만 바꾸어도 온실가스 배출을 5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면서 농업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리고 지금 우리 농촌에 밀려드는 산업단지, 발전시설, 오염시설 문제는 엄밀하게 따지면 농촌이 아니라 도시의 문제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산업단지가 필요합니까. 전기 만들어서 어디로 보냅니까. 그 많은 폐기물 어디서 나오는데요. 이 모든 행위가 멈추게 되면 곤란한 것은 도시죠. 농촌이라는 공간, 농사라는 생존의 기술, 농민문화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지속되기 위한 근본토대입니다. 이게 완전히 망가지면 미래는 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걱정거리가 늘었는데 인공지능 기술 때문입니다. 정밀농업, 스마트팜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그나마 농업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문제는 다 제쳐둔다고 해도 거기에 필요한 그 많은 에너지(전기)를 어떻게 감당한다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농업분야에서 기술혁신이라는 것은 자동화, 기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스마트팜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수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온갖 정보, 토양환경, 기후조건 등 온갖 데이터를 탈취해서 궁극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서너 개 기업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농식품 기업들이 전 세계 먹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70% 이상 인구는 소농들이 부양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인공지능기술이 농업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지금까지는 거대 기업들이 큰 이윤을 낼 수 없어서 방치해왔던, 소농들의 땅조차 손아귀에 넣고자 할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농업은 통째로 글로벌 기업들의 하청업자가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 연구하는 분들이 인공지능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연구 좀 많이 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어요.
한편, 철학적으로도 농적 가치는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문명의 필수 요소입니다. 기후위기는 땅속의 석유와 석탄 등을 너무 많이 뽑아내서, 너무 빨리 써대서 대기 중에 탄소가 많이 쌓인 결과잖아요. 천천히 조금씩 태웠다면 지구생태계가 소화할 수 있었겠죠. 즉 순환의 사이클이 망가진 게 원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순환을 핵심 원리로 하는 경제로 돌아가야죠. 농적 사회, 농업을 중심에 둔 사회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사람이 농촌, 농업, 농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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