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농農익는 대화] 위기감이 아니라 자긍심을, 마을에서 시작한 안남의 자치(1)ㅣ송윤섭 옥천군의회 의원 X 임해란 덕실마을 이장

2026-01-07

'농農익는 대화'를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면단위는 과거 기초자치단체였을 만큼 농촌 주민의 생활 단위이자 가장 기본적인 자치단위이다. 충남 옥천군의 덕실마을이라는 작은 곳에서부터 주민들의 자치 활동을 일궈온 송윤섭 옥천군의회 의원과 임해란 덕실마을 이장을 만났다.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살아있는 농촌 자치의 모습과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옥천에서의 첫 걸음


두 분 자기소개와 함께 각각 어떻게 안남면에 오게 되셨는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송윤섭 안녕하세요, 안남면 덕실마을에 살고 있는 옥천군의회 의원 송윤섭입니다. 제가 먼저 얘기를 하자면, 저는 농과대학을 나왔어요. 학교를 졸업하면 농촌 현장에서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죠. 그 시절에는 대학에서 학생운동하고 졸업 후 노동 현장으로 가는 게 기본이다 보니까 농촌 현장에 내려가면서 선배들한테 계급성이 없다고 욕을 먹었어요.(웃음)노동 현장으로 가야지 왜 농촌이냐고요.

어찌 됐든 저는 농촌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농활로 충북과 연을 맺었어서 졸업을 하며 옥천을 소개받아 정착하게 된 거죠. 그 당시에 옥천에 농민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평생 농사일을 배우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활동 조직들을 같이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전라북도 정읍 시골 출신이라 농촌살이에 적응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고, 간간이 농활을 다니면서 일을 해보니 이렇게 해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고 그랬어요(웃음).

그런데 내려온 해에 재미있는, 하지만 저한테는 충격적이고 트라우마까지 생긴 일이 있었어요. 그때는 겨울철에 농사 준비한다고 논둑, 밭둑을 태우던 시절이었어요. 당시에 제가 겨우 한두 곳 밭을 얻은 데가 있었어요. 오전에는 동네 분 일을 거들어드리고 점심 먹고는 제 밭에도 거름 내고 논둑, 밭둑을 태웠는데 겨울철에 오후가 되면 바람이 일잖아요. 불을 붙이자마자 바람이 불어와 동네 앞산에 불이 붙은 거예요. 여기가 이씨 집성촌이고, 동네 앞산에 문중 산소들이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거를 다 태워버렸어요. 다행히 근처 인삼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보고 달려와서 불을 끄긴 했는데 그날 앞산 산소를 다 태웠으니까,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대빗자루로 재를 쓸고 시커멓게 된 무덤에 소주 드리고 예 갖추고 볏짚으로라도 덮고 그랬어요. 엄청나게 혼나면서 신고식을 진짜 제대로 치렀죠.

돌이켜보면 농촌살이를 만만하게 보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저한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 사건 덕에 농촌 사람으로 사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죠. 신고식 이후에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일을 항상 우선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동네 분들하고 열심히 살아왔어요. 마을에서도 저놈이 처음에는 그냥 1~2년 있다가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눌러앉아 있으니까 마을에서부터 관계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나중에는 면 단위 활동을 하거나 단체 실무를 하더라도 ‘저놈이 하는 거라면, 저놈이 얘기하는 거라면 믿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신뢰 속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죠. 지금은 안남에서의 경험이 옥천 전체에도 반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역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임해란 저는 안남면 도덕2리 덕실마을 이장이고,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임해란입니다. 2012년 5월에 들어왔고요. 그때 제 또래 몇 분이 같이 귀촌했는데 그 분들은 안남이라는 곳이 어떤 동네인지, 송윤섭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들어온 경우가 많은데 저 같은 경우는 사실 잘 몰랐어요. 저는 그때 대전에 살고 있었고 첫째 아이가 6살, 둘째가 3살이었어요. 당시에 남편이 건강 때문에 시골로 이주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대전에서 출퇴근해야 하는 상황이라 대전이랑 좀 가까운 곳 중 개발이 좀 덜 되고 지대가 높은 곳을 찾으니 안남으로 오게 된 거예요. 그때 지금 살고 있는 덕실마을에 집이 한 채 나왔다고 해서 보러 왔는데 집이 너무 좁은거예요. 그래서 여기는 아니다하고 내려오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딱 본 거예요. 왠지 빈집인 것 같아서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고 그 앞집에 계신 마을 분들에게 앞집이 빈집이냐고 물어보니 당시 이장님을 바로 연결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계약했어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계약하고 3개월 만에 짐을 다 싸서 왔어요.

첫해에는 진짜 조용히 살았어요. 아이들과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다니고 그랬죠. 그러다가 운명이었는지 의원님 가족을 만나면서, 바쁘지만 시골에서 이렇게 사는 것도 굉장히 가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로 의원님이 ‘어머니학교 교사 한번 해볼래요?’라든가 뭘 제안하면 네네네 하면서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냥 다 좋았거든요. 그때부터 마을 일을 한 게 지금 여기까지 왔네요. 몇 가지 역할을 하며 나름 바쁘게 시간을 쪼개서 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 재밌는 것 같아요.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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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일은 어떻게 본격적으로 하게 되신건가요?

송윤섭 저는 마을에서 농사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본 거죠. 마을 회의를 통해서 뭔가 제안도 많이 하고, 건강 장수마을 사업이라든가 여러 시도를 했는데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했죠. 마을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도 내가 이런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좀 어렵다고 여겨지고, 그 과정에서 면 단위 공동체 활동을 고민하게 되면서 마을에는 좀 손을 놓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임해란 씨가 이사를 왔는데, 처음에 와서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이 농사일하는 걸 거들며 SNS에 일하는 모습도 올리고, 수확 철에는 농산물 판매하는 일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마을 일을 하고 있던 거예요. 그래서 사적인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고 또 서운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마을 일을 계속할거면 마을기업 형태로, 조직적으로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죠. 그래서 마을기업 사무장 일을 좀 해보자 제안하면서 임해란 씨가 마을 일에 코가 꿰기 시작했죠(웃음).

그리고 저는 이제 면 단위에서 어머니 학교 일을 하면서 지역발전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학교 자원 활동하실 분들이 어떤 해에는 구해지질 않으니까 이리저리 사람을 찾다가 임해란 씨에게 그 일도 제안하게 되었죠. 

임해란 처음에 이사 와서 판매 목적의 농사보다는 우리가 먹을 정도만 농사를 짓자고 생각했어요. 농사의 농자도 모르기 때문에 어른들이 감자 캔다고 하면 애 데리고 가서 하지에 감자 캐며 일도 배우고 했어요. 그러다가 지인이 제가 하는 카카오스토리에 사는 이야기도 올리고 그러면서 지역 농산물도 팔면 어떻겠느냐 해서 덕실 스토리 농부라는 이름의 카카오스토리를 만들게 되었어요. 거기에 농사짓는 어르신들 모습도 올리고 농산물도 팔고, 그렇게 혼자 하다가 의원님이 조직적으로 해보자고 해서 2013년에 생산자회를 만들고 이듬해 마을기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직거래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다른 일이 없었으면 쭉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제가 일을 중간에 못하게 된 시기가 있었는데 유지하기가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마을기업은 정리했어요.

송윤섭 판매도 애로사항이 있고 생산 체계도 그랬죠. 어찌 됐든 온라인으로 소비자들과 관계를 맺었어도, 그분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도록 품목이 다양해야 되는데 동네에서 고령자들이 많고 농사짓는 품목이 적다 보니까 서로 재미가 좀 떨어지는 거죠. 여기를 통해서 농산물을 구하고 싶은 분들도 선택지가 별로 없고, 그러다 여러 일이 겹치면서 정리를 하게 된 거죠. 마을 단위 활동과 면 단위 활동을 같이 연계해서 풀어내려는 생각은 있는데, 머릿속으로 그림 그리는 거랑 실제 상황은 많이 달라요. 저도 기본적으로 군 단위에서 일하고 있지만 근본은 마을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하는데, 혹자는 마을 일에 너무 집중한다고 말이 나오죠. 임해란 씨가 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들이 나오더라고요.


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시다가 활동의 축을 면으로 옮기셨다고 했잖아요. 어떤 계기로 변화를 꾀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송윤섭 그러니까 의기투합이 돼서 일이 되려면 다양한 연배들이 있어야 하는데 마을에는 다 고령자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지속하기가 불가능한 거예요. 뭔가 해보면 서로 신뢰가 형성돼서 으쌰으쌰 힘을 모으지만, 그렇게 한두 번 하다 보면 바빠서 어쩌고 뭐 해서 저쩌고 이러니까 활동이 중단돼 버리는 경우들이 자꾸 반복되는 거죠. 일을 벌여서 시작할 때는 참 좋은데, 이게 지속이 안 되니까 고민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런 활동들이 면 단위에서 진행되면 우여곡절은 좀 있겠지만 지속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임해란 마을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활동가들은 처음부터 면 단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마을은 그냥 집 지어놓고 사는 곳이고 주민들과 별로 섞이지 않는 그런 관계로 시작을 한 거죠. 반면에 저는 어쨌거나 덕실마을이라는 마을에서 크고 자란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거의 10년 넘게 활동했는데, 면 단위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활동가들 역시 지금 와서 돌아보니 마을 살이가 기본이 돼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새로 젊은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하면, 먼저 마을에서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이 어울리고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를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하거든요. A라는 사람이 청년이 됐든 중년이 됐든 마을 주민들로부터 이 사람은 마을에서 충분히 잘 자리 잡고 어려운 상황일 때 마을에서 서로 좀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됐을 때, 면 단위의 일을 하면 마을에서 쌓았던 관계가 큰 힘이 될 수 있죠. 저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인 것 같아요. 마을에서 제가 거짓말을 해도 이분들은 진짜 다 믿어줄 것 같고요(웃음).

송윤섭 그러니까 저 역시도 이제 10여 년 먼저 활동을 시작했지만, 심정적으로는 항상 내 마을, 우리 지역 주민들에 대한 신뢰가 있는 거예요. 제가 면 단위나 군 단위에서 활동할 때 혹시나 처음에는 이해가 가질 않는 행보를 보이더라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받아줄 것이다, 이런 신뢰들이 있거든요.

임해란 젊은 사람들한테 계속 그 얘기를 하는데(웃음), 마을에서 이장님뿐만 아니라 주민들과도 계속 관계를 맺으라고요. 물론 그동안 10년 가까이 마을에 얼굴도 안 비친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면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계속 얼굴 비추라고, 그래야 나중에 힘이 생긴다고 말해요. 면 단위는 보기에는 뭔가 큰 게 있을 것 같지만 없어요. 그냥 만나는 사이 있잖아요. 의리상. 근데 마을은 진짜 끈끈하거든요.


덕실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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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덕실마을이 굉장히 좋은 곳 같습니다. 그런 덕실마을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마을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와 함께 덕실마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송윤섭 안남에서 가장 작은 동네(웃음).

임해란 지금은 행정상 70명이 살고 있어요. 가구 수는 40세대예요. 근데 마을에서 실제로 움직이면서 같이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30명 정도. 그 외에는 주소지만 있거나 마을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송윤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에 수계기금(편집자 주: 수계기금은 물이용부담금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상수원 상류 지역의 수질 개선과 상수원 보호로 인한 규제와 불편을 겪는 상류 지역 주민 지원 사업에 사용됨)을 마을에서 배분하면 모든 사람한테 줘요. 마을 회의를 통해서 그분들이 가끔 마을에 오더라도 텃밭 농사를 지으니까 기금을 주기로 합의가 됐어요. 보통 마을들이 공동체의 구심점을 만들지 못하면 서로 이해관계로 부딪치고, 또 귀농귀촌자들이 들어오면 다툼이 나기도 쉬운데 저희는 마을의 근간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새로 들어온 사람 중에 조금 별난 사람이 있어도 동네를 휘젓지를 못해요.

그러다가 이제 벌써 5년이 됐네요. 이 평온한 동네에서 태양광 싸움을 한 지. 우리마을에 앞서 투기 목적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진행된 동네들이 있는데, 대개 마을들이 경제적인 논리로 태양광 발전을 받아들였어요. 마을기금을 받고 허락했던 건데, 덕실마을에도 그런 업자가 들어왔다가 동네에서 제동을 걸면서 싸움이 시작됐죠.

임해란 송윤섭 의원님이 그때 이장님이셨는데 처음에 과연 우리 동네에서 이걸 막아낼 수 있을까 걱정하셨어요. 왜냐하면 업자랑 싸워야 하니까. 만약에 업자랑 싸웠으면 우리가 졌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저희는 군과 싸워야겠다고 방향을 잡은 거죠.

송윤섭 이해관계로 싸울 일은 분명 아닌 거고 행정 절차상 하자이기 때문에 우리 권리를 찾는 과정이고, 이는 행정하고 다퉈야 할 일이라고 방향을 잡았어요.

임해란 굉장히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이었거든요. 그때 78일 동안 군청 앞에서 주민들이 매일 나가서 천막 농성하고 그랬죠.

송윤섭 어른들이 도청에도 처음 가보고요(웃음).

임해란 주민들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재밌어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자기 할 일이 있는 거죠. 어떤 분은 트럭을 잘 모니까 트럭 뒤에 선전대를 만들어서 다니기도 하고요.

송윤섭 안남에서만 홍보할 일이 아니라 읍내에도 이 억울함을 알려야 된다고 해서 주민들이 직접 나가서 선전물을 막 돌렸죠. 사실 처음에는 싸우자고 결정을 해놓고도 경험이 없으니까 난감했는데, 한 번 쭈뼛거리면서 나갔는데 재밌는 거예요. 초기에는 아침 출근 시간에 군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데 마을 분들이 말하길 피켓이 그렇게 고맙더라는 거예요.(웃음) 혹시라도 아는 공무원이 지나가고 그러면 괜히 아는 척하기도 멋쩍고 해서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니까 좋았다는거죠. 그러다 나중엔 되게 속상하더래요. 우리는 당연한 얘기를 하러 왔는데 알아주질 않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피켓을 내리게 되고, 아는 공무원이 지나가면 빨리 이런 일이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나중에는 군수한테도 그렇게 얘기하게 되고 그랬죠. 

그리고 활동하고 나면 저녁에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날마다 나는 무슨 일을 했는데 어떻더라 얘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냐 저렇게 해보는 게 어떠냐 하면서 활동 범위도 커졌고, 제가 어찌 됐든 마을 일과 면 단위 일을 같이하니까 면 단위, 군 단위에 공동대책위 꾸리는 일을 했죠.

이 과정에서 제일 큰 문제는 동네 사람 간의 갈등이었어요. 업자들에게 땅을 판 사람들이 동네 안에 있었던 거죠. 주로 비탈밭들이었는데, 그동안 농사짓기도 어려우니까 보통 임대를 줘서 묘목을 심거나 방치하던 밭인데 갑자기 시세보다 돈을 더 준다고 하니까 쉬쉬하면서 계약서 쓰고 돈을 받은 거죠. 사실 돈을 다 받은 것도 아닌데 허가가 나면 잔금을 치르겠다고 해서 사인을 했던 거예요. 처음에 이 문제가 나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땅 팔아먹은 사람들만 이득을 본다는 얘기가 잠깐 거론됐는데 동네분들한테 이해를 시켰어요. 그분들하고 우리가 같은 입장에서 힘을 모아 업자들에게 대처해야 이길 수 있는 거지, 우리가 저 사람들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분들이 동네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주셨으면 좋겠다. 그 부분이 동의가 돼서 그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도 하고, 결국 그분들이 회의에 참석했죠. 그리고 고해를 했어요. 그분들이 미안하다. 이렇게 해서 땅을 팔았다. 속내를 다 내비친 거죠. 업체하고 긴밀하게 약속했던 부분들, 계약서에 조건으로 다뤘던 부분들이 그분들 입을 통해서 제보가 되고 우리가 싸우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이런 과정들이 있었어요. 사실 뭘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지금 돌아보니 오히려 갈등보다는 결속이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임해란 그렇게 잘 끝났어요. 그런데 지금도 한 번씩 마을에서 그때 태양광 해서 마을기금을 마련해야 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긴 해요. 그래서 그런 말들을 잠재운다기보다는 그런 말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옥천군에 마을공동체활동 지원사업이 있거든요. 태양광 싸움했던 기록을 다시 모으자고 해서 작년에 그 사업을 받아 주민들 인터뷰 내용이 담긴 《땅이 된 사람들》이라는 책을 만들고 책 출판회도 했어요. 그래도 가끔 그런 말이 나와요. 그런데 그 말대로 했다면 우리 마을은 벌써 깨졌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마을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또 열심히 마을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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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장정우
2025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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