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숫자를 넘어, 농본주의로 그리는 미래

2026-07-23

장정우 사무국장이 언론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한 해 농사도 반환점을 돌고 농민들은 이제야 잠시 숨을 고른다. 지금 시기는 초록빛이 절정을 이룬다. 맑은 날이면 바람에 숲의 나무며, 벼가 흔들리며 다채로운 빛깔의 초록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내가 사는 마을 풍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관행과 유기농 쌀값의 차이가 줄어들자 한 농민이 관행으로 돌아서며 논둑에 제초제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시간 마을에서 제초제를 친 논둑을 본 적이 없었던지라 마을 한가운데에 샛노랗게 말라 있는 논둑들은 이질감을 넘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상황을 겪어보니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혹은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았어도 부지런히 논둑을 깎는 이들이 있어 우리 마을의 풍경이 오랜 시간 아름답게 유지돼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다.

3대 메가 프로젝트, 치솟는 코스피와 반도체 수출액. 전에 없던 숫자가 온통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그런 숫자 앞에서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논둑을 깎고,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결실은 하늘에 맡겨야 하는 농사란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정부와 기업은 농촌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놓고 말겠다는 듯 개발에 목을 맨다. 정부는 ‘초격차 산업 강국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기업은 이마저도 아쉬운지 “민주주의만 생각하니 자본주의를 망각”한다며 고삐를 챈다. 그 결과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농본주의를 말한다》 우네 유타카/ 녹색평론사/ 2021년 3월/ 11,000원


여전히 경제성장이 되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다수는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보다 갑자기 일확천금을 얻은 이들의 뉴스에 마음이 흔들리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AI와 로봇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지금 이대로라면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는커녕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답이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우리나라의 논밭과 산, 강과 바다는 어떻게든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탐욕에 개발이 된 것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인 것도 아닌 지저분한 모습이 돼간다.

《농본주의를 말한다》의 저자 우네 유타카는 농촌의 위기 그리고 자본주의가 절정에 달한 오늘날, 자본주의 너머의 미래를 바라본다. 그는 지금이 자본주의로 인해서 생긴 수많은 모순과 폐해를 해결할 기회이며, 그 방법으로 “땅의 풍요로움을 망가뜨리는 시대와 싸우기 위해서” 탄생한 농본주의를 말한다. 농본주의는 자본주의·근대화·산업화의 대척점에 있다. 효율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쟁보다는 우리가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돈이 되는 것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구매력보다는 농사와 같은 자급력이 더 높게 평가받는 사회가 농본주의가 그리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는 농사와 마을의 부활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농사를 통해 사람들은 다른 생명의 목소리를 듣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가꾸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각각의 마을에서 ‘내부로부터의 시선’으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구현할 수 있을 때 지켜나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평생을 한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지도나 숫자로 마을을 보는 사람 중 누가 그 마을의 아름다움을 더 잘 알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겠는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오늘날, 나는 여전히 농촌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고, 느끼고, 관계를 맺는 많은 것들은 숫자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초록으로 가득 찬 논을 바라볼 때의 시원함, 논에서 태어나 하늘을 나는 잠자리, 논둑에 피고 지는 수많은 들꽃, 계절마다 변화하는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 생각해 보면 논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농민들과 농촌이 우리 사회에 제공하는 것 중에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개발주의자들이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하고, 계산기를 두들겨 정해놓은 미래 예측에 우리 삶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 《농본주의를 말한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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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넘어, 농본주의로 그리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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