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농農익는 대화] 300만분의 1과 1,980분의 1_김누리 지리산이음 활동가

2025-09-29

'농農익는 대화'를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자라,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활동가가 있다. 그가 활동하는 지리산 이음에서는 활동가, 주민, 공무원 등 저마다 살고 있는 곳에서 지역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실천하는 사람들을 아울러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번 농農익는대화에서는 김누리 활동가가 다시 농촌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 지리산이음의 활동, 농촌의 이야기를 외부로 발신하며 맞닥뜨린 고민들을 담았다.



유(U)턴형 귀촌인, 지리산이음과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일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원 산내면에 살면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에서 일하고 있는 김누리라고 합니다. 지리산이음에서 홍보와 관련된 업무들을 맡고 있습니다. 홍보라고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관련된 업무들인데요. 구체적으로는 홈페이지를 비롯한 온라인 소통 채널을 운영·관리하고, 각종 행사나 콘텐츠 디자인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의 운영도 담당하고 있어요.

지리산이음과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은 다른 곳인가요?

지리산이음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이라는 마을 카페를 만들자는 프로젝트가 먼저 시작됐어요. 토닥에서 여러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지리산이음이라는 단체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거죠. 현재 토닥은 주변에 여러 카페가 생기면서 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하게 되었어요. 공간 대관도 하고 후원회원을 대상으로 한 모임 지원과 산내에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 마을안내소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dd22004223332.jpg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누리 님에 대해 찾아보다가 '유턴형 귀촌인'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산내면이 고향이신가요?

네. 고향인 셈이죠. 산내에 실상사라는 절이 있잖아요. IMF 시기에 실상사에서 귀농학교를 운영했었는데, 당시 아빠가 귀농에 대한 꿈이 있어서 귀농학교를 다니셨어요. 이후에 근처에 있는 구례에서 1년 정도 지내다가 최종적으로 산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그때 저한테 발언권은 없었죠(웃음).

지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을 가면서 산내를 떠나 서울로 가게 됐어요. 졸업 후에 다니던 직장에서 잘렸는데 서울이 집값이 너무 비싸잖아요. 그러다 보니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다시 동네에 잠깐 내려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잠시 머문다는 생각이었어요. 언제든 다시 이 동네를 뜨겠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아무튼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토닥에서 알바를 하게 됐어요. 그때 당시 지리산이음의 전 이사장이셨던 조아신 선생님이 내년에 지리산권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단체를 꾸릴 건데, 마침 홍보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렇게 2018년에 지리산이음이 만들어지면서 상근활동가로 합류했고 지금까지 산내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온 산내에서의 일상은 어떠세요?

괜찮은 것 같아요. 항상 ‘너무 즐거워’ 이렇게 느끼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즐거워요. 도시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독립영화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즐거움으로부터 좀 멀어졌다고 감각하고 있지만, 여기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어요. 최근에는 실상사에서 불교 회화 강의를 석 달 들었거든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불교 회화의 변천사에 대한 강의였는데, 이것도 이 동네라서 가능한 강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한 가지 새로웠던 것은 어릴 적부터 알았던 어른들과 다시 관계를 맺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쭉 산내에 살았다 보니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던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돌아와서 동네에서 일하기 시작하니까 이모, 삼촌 하며 따랐던 분들이 갑자기 저한테 존댓말을 쓰시고 누리쌤이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그런 변화가 처음에는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렇게 이미 알던 분들과 새로운 관계로 만나는 것도 재밌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 밖에도 동네에서 작은 활동들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 여성회의'라고 하는 여성주의 모임이 있어요. 마을 주민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 안에서의 해결책을 고민하는 모임이에요. 최근에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응할 사건이 있지는 않아서 <서브스턴스> 같은 영화를 보거나 일상 활동들 위주로 진행하고 있어요. 해마다 여성의 날이면 산내면 옆에 인월면에서 열리는 오일장에 나가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인월면의 오일장 날짜가 3일, 8일이거든요.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매년 장이 열리니까 그날에 맞춰 피케팅을 나가서 시장에 계시는 어르신들한테 오늘이 여성의 날이라고 알리면서 사탕을 드리기도 하고요. 이 활동이 몇 년 이어지니까 어르신들도 그날이 됐네, 하면서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청년 모임을 꾸려 산내 청년공간 틈새를 다른 청년들과 같이 운영하고 있어요. 틈새 공간은 옛날에 한의원이었던 자리에요. 창문 너머로 천왕봉이 보이고 따뜻하게 몸을 데우면서 가끔 땡땡이를 칠 수 있는 좋은 곳이었죠(웃음). 근데 환자가 뜸했는지 의원을 옆 마을로 이전하면서 그 공간이 갑자기 비게 된 거예요. 여기를 청년들의 공유 사무실처럼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청년공간을 만들게 됐어요. 또 우리 동네에 품안작은도서관이라고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생 나이였을 때 처음 품안작은도서관이 만들어져서 그곳에서 검정고시 공부도 하고, 마을 분들이 오시면 맞이하는 자원봉사를 하곤 했는데 다시 산내로 돌아와서도 도서관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마 홍동도 그럴 것 같은데 산내도 지역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좋은 문화가 많아요. 그러니까 지역에 사는 사람들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산내에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런 감각이 되게 좋거든요. 이제 도시에서는 못 살 것 같아요.


97d30c35bc1fa.jpg

83409b6ab5bd4.jpg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럼 이제부터 지리산이음에 대해 이야기해볼텐데요, 지리산이음은 어떤 일을 하는 조직일까요?

지리산이음에서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요. 꼭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뭔가 달라질 수 있도록,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실천하는 사람, 심지어 공무원도 포함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저희는 지금의 체제와는 다른 삶, 돌파구를 생각하면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북돋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그런지 지리산이음은 협력사업이 많아요. 조합원분들과 같이 계속 일을 만들어가고 있죠.

또 한편으로 저희는 출발이 마을 카페였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직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해요. 일차적으로는 마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면서 산내를 어떻게 더 살만하게 만들까, 지리산권에 있는 활동가들과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서 필요한 부분을 충족하면서 서로 응원하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늘 생각해요. 나아가서는 지역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산내를 좋아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산내와 관계를 맺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전국에 있는 활동가들이 산내를 아지트같이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각자 다른 지역이나 공간에서 활동하시다가 산내를 통해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이 지역 자체에도 좋은 인상을 갖고 왕래를 하고 관계를 쌓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더 넓게 보면 저희의 핵심 타깃층은 모든 활동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국의 활동가 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써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조직이죠. 예컨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했던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와 같은 사업도 그중 하나고요. 지리산권에 있는 5개 시군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해당 시군의 공익활동가들을 연결해주고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는 내용이었어요. 올해로 11년째 진행을 하는 지리산포럼도 그 일환이죠. 지금은 9월에 있는 지리산포럼 준비로 엄청나게 바쁜 때입니다. 모든 멤버가 포럼에 주력하고 있어요.

어느덧 활동가로서 8년 차,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초반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했어요. 주변에 함께 대학에 다닌 친구들은 도시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내가 계속 여기에 있는 게 맞을까, 더 나이 들기 전에 서울로 가야 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죠. 또 이런 일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사실 활동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활동가를 지원하는 일을 하려고 하니까 한참 헤맸어요. 

그리고 홍보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만, 제가 홍보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다른 조직의 활동가를 보면 보도 자료를 보내자마자 언론에 실리거나, 팝업스토어같이 새로운 방식으로 홍보한다거나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엄청 작아 보이는 거죠. 그렇게 어려운 순간들을 맞닥뜨리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여기에서 지리산이음 일을 잘 해내는 게 내 경력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희 조직에 맞게 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지금은 나라는 사람이 이 동네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일과 역할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건 있어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너무 잘하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를 느낍니다(웃음).

홍보 담당자로서 일을 하실 때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시고, 어떤 것들을 신경쓰시나요?

마을에서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제가 느낄 때 이걸 지역에서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출발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또 제가 방금 말한 것처럼 시기와 질투를 잘하는 편인데, 다른 지역들의 멋진 사업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우리 지역, 마을의 상황에 맞춰서 변형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일을 해 나가는 편이에요.

그리고 홍보를 할 때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사는 저는 맥락을 알고 있지만, 소식을 받아보는 분들은 모르실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 지역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 우리의 고유한 맥락이 어떻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요. 예를 들면 토닥을 운영할 때도, 여행자분들이 토닥에 방문해서 이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이 동네에는 이런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신경 쓰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농촌의 상황이 절박하더라도 그걸 티 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라고 하고 싶지는 않은 거죠. 그래서 지역에서 어떤 활동, 투쟁을 하고 있어서 그 이야기를 전달할 때도 우리가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도 관심을 가지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식으로 발신하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발신을 하면 수신이 잘되는지 궁금하네요.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농촌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청년들에게 농촌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식으로 말을 건네야할까요?

제가 지금 산내로 돌아와서 계속 살고 있는 이유는 결국 가족과 집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생활비가 덜 들 뿐 아니라 정서적인 안전망이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산내에 제가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는 사실도 일단 전제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말로 정리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동네에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농촌에서의 일자리, 살 집 이런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되어 줄 수 있고 같이 놀아줄 수 있다, 산내를 경험해 보면 아마 좋아하게 될 것이고 산내로 온다면 최선을 다해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21bf4ca6664e9.jpg

79fd891d9b21a.jpg


지리산이음 활동 중에서 기억에 남는 소개해주실 만한 활동이 있을까요?

올해 초에 '산내마을 모두발표회'라는 걸 했어요. 저희가 작년에 홍동에 견학을 갔는데 홍동에서 매년 '우리마을발표회'라는 걸 하시더라고요. 산내도 소모임이나 단체들이 많으니까 이런 발표회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홍동의 '우리마을발표회'를 벤치마킹해서 '산내마을 모두발표회'를 기획했어요. 자료집에는 취미 모임까지 포함해서 33개의 단체와 모임이 실렸고 발표하러 오신 단체들은 20개 정도 됐어요. 마을이 크진 않지만, 이 안에서도 각자 친하게 지내는 그룹이 다 있거든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친한 사람끼리 모이고 그 안에서 또 정보가 오가고 이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데, 만약 제가 산내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거나 이제 마을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어떤 게 필요할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산내를 소개할 때 모임이 50개~70개 정도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이 하는데 정확한 수는 아무도 모르기도 하고요(웃음). 산내에 어떤 모임들이 있는지, 그 모임들엔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가 저는 계속 궁금했던 것 같고 그 정보가 공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마을 안에서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산내마을 모두발표회' 자료집에 각 모임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를 요청해서 넣었어요.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하시더라고요. 각자의 그룹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교류하고 싶은 욕구들이 있고 판만 깔리면 기꺼이 마음을 낼 수도 있는데, 그 판을 까는 사람이 지금까진 없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300만분의 1과 1,980분의 1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고 지금의 활동들을 계속 하게 만드는 동력이 있다면요?

제가 최근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상을 해봤어요.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게, 저는 저한테 재량권이 있거나 권한이 주어지면 굉장히 열심히 하게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도시에 살았다면 열심히 살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한테 재량권, 권한이 농촌에서만큼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곳에서는 마을의 이런 점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연결되어 생각나요. 특히 지역에서는 그래도 청년 세대를 귀하게 여기고 저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 때문에, 제가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나갈 방법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도시에서는 사람 한 명이 몇십, 몇백만 명 중에 한 명이잖아요. 산내 인구가 1,980명 정도 되는데요, 도시에서의 300만분의 1과 지역에서의 1,980분의 1은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완전히 다르죠. 여기에서는 제가 목소리를 내면 무언가 바뀔 수 있어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기대만큼 저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최근에는 더 체감하기도 하고요. 지금의 마을을 만드는 데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마을의 구성원으로서 제가 이바지했다는 감각이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지역에 대해 다룬 칼럼집을 봤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반짝이는 가게가 있었단 말이야? 가봐야지' 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문을 닫은 곳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버텨야겠다', '이렇게 미약하게라도 버티는 게 중요하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완전히 맥락이 반대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예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모임이나 공간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역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꼭 이 지역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비록 이주했더라도 이곳에서 그 일을 했던 동기나 그 공간에서 쌓아온 시간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저는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토닥도 2012년에 만들어졌거든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2025년에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쌓아온 시간을 스스로 인정해 줘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역의 활동가로서 목표나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장래희망 같은 게 잘 없어요. 그냥 눈앞에 있는 걸 하는 편이에요. 주어진 것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 나가는 게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아요.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 건, 사실 그렇게 제가 일을 벌여도 별일이 안 생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실수해 봤자 늘 수습할 수 있는 만큼이더라고요. 또 행동으로 옮긴 다음에야 보이는 것들도 있고요. 지리산이음의 전 이사장이고 지금은 반상근으로 전환한 조아신 선생님이 그런 신조가 있었어요.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 중에 '애자일'이라는 개념이 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세우기보다 스타트업이나 IT기업처럼 새로운 방식이나 사업을 일단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빠르게 전환하는 거죠. 지난 8년 동안 계속 같이 일을 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그 방식이 배어있는 것 같아요. 다른 갈래로는, 저는 산내가 누구나 나답게 살 수 있는 마을이면 좋겠어요. 그런 마을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에서 활동하다 보면 어느 자리에 가든 항상 계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이분들이 심지어는 금전적인 보답도 없이 이렇게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나서시는데 월급 받는 입장에서 뭐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합니다.

굉장히 공적이네요(웃음).

그러게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지금 2년째 '초보운전' 딱지를 달고 다니거든요. 워낙 잘하는 지역들이 많잖아요. 운전 솜씨를 갈고닦아서 전국 방방곡곡 놀러, 배우러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놀러 다닐 수 있는 시간도 만들고요.


c658b44f2ff28.jpg



인터뷰_문수영, 장정우
2025년 8월 29일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자 하승수 ⎮ 고유번호 410-82-86268

(32284)충남 홍성군 홍동면 홍장남로 668 2층

문의

전화  010-7904-0224

팩스  0504-334-1237

이메일  nongbon.office@gmail.com

ⓒ 공익법률센터 농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