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본활동[농農익는 대화] 우리가 꿈꾸는 농촌 특별대담(1)ㅣ나에게 농촌이란

2024-04-03

농본 3주년 행사 2부에서 '우리가 꿈꾸는 농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크콘서트 내용을 정리하여 농農익는 대화의 꼭지로 싣습니다. 대담 기록은 질문에 따라 총 세 편으로 나누어 구성했습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원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사회)




하승수  농본 3주년 2부 순서로 '우리가 꿈꾸는 농촌'을 기획한 이유는 농촌이 난개발되는 답답한 현실에서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입니다. 패널로 네 분을 초대했는데요.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님, 구자인 일소공도 협동조합 연구소 소장님, 농업 연구자 강마야 박사님, 멀리 서울에서 오신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늘 짧은 시간에 네 분의 말씀을 듣고자 질문을 세 가지 잡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나에게 농촌이란?'입니다. 네 분이 하시는 일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입장에서 농촌의 의미나 농촌과 관계 맺게 된 인연 등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먼저, 김정현 발행인께서 '녹색평론에게 농촌이란? 혹은 본인에게 농촌이란?'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농맹의 시대 속 농촌의 이야기 만들기

김정현  여기 <녹색평론>을 구독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신지 모르겠네요. 지금 하신 질문에 답을 하려면 이번 봄호로 185권이 되는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텐데요, 아주 간단하게 핵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녹색평론>을 환경운동 잡지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지만 <녹색평론>은 사람살이의 근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하는 잡지입니다. 인간이 지구라는 한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철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옳은 것이냐 하는 겁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다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데, 이게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오는가 생각을 하면서 살자는 것이죠. 얼마나 낭비적으로, 석유화학물질을 펑펑 쓰면서, 또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가 세끼를 해결하고 있는가 따져보자는 거예요. 그렇게, 먹는 문제 하나를 진지하게 바로잡기로 결심한다면 우리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사람살이의 근본을 생각한다면 결국 농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먹는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우선 농촌에서부터 뭐가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부에서 나온 이야기, 우리 농촌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고 있는지 듣고 있자면 속이 터지잖아요. 사실 하나같이 신문 1면에 나올 법한 일이죠.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인구 90%가 이런 일들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문맹’이라는 말을 쓰지만 저는 ‘농맹(農盲)’이 지금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의 현실이 제대로 알려지기만 해도 좀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가는 변화의 동력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신 분들께 농촌의 이야기, 언어를 열심히 개발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있어서 농촌이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점도 있지만, 농적(農的) 가치를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적인 것도 저는 큰 문제라고 봅니다. 농촌의 삶의 내용이나 가치가 풍부하지 못한 것이 아니잖아요. 농촌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훨씬 밋밋하고 획일적인, 재미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농촌의 삶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앞으로 <녹색평론>도 그런 측면에 좀더 주안점을 두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 주민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 농촌

하승수  자연스럽게 구자인 박사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으니 '나에게 농촌이란?', 농촌과 연을 맺게 된 계기와 박사님에게 농촌은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구자인  1부에서 지역별 농촌 난개발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30년 전 우리나라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고, 소각장, 매립장, 골프장 문제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진 일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반대 운동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정리됐다 싶었는데 지금도 새로운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거죠. 

저는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 반복되느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낼거냐, 이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려면 당장 주인공이 돼야 할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과연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1부 발표하신 분들한테는 그 애정들이 다들 묻어나잖아요. 문제는 평온한 일상에서는 주민들의 활동 중심이 개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한정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농촌은 행정에 너무 많은 권한이 몰려 있고, 행정이 주민들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고, 선출되는 단위도 아니고, 선출직조차 당선되는 순간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어떻게 만들 거냐는 질문에 주민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 그 길이 사실 지역 문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다른 말로 하면 ‘마을만들기’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는 서울이라는 곳은 결국은 해체돼야 될 공간이라고 보고, 결국은 농촌으로 가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결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라는 것은 농촌에서 가능한 것이지 도시에서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 맥락 속에 농촌에 와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하고 조금 달랐던 점은 제가 행정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어쩌다 공무원’(줄여서 어공)이란 말이 있는데, 저는 의식적으로 행정에 들어가서 행정에 있는 정보를 민간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행정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민간에서 행정에 파견한 스파이를 몇 백명 만들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문제들도 사실은 행정 공무원들의 정보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지방자치라는 측면에서 행정 개혁이 우리한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농촌이란, 살고 있는 주민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도시에도 여러 공동체 활동이 있지만, 뿌리가 약한 사람들의 동네입니다. 농촌은 떠나갈 수 없는,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의 공간이기 때문에 저는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미래는 농촌에서 열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승수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는 농촌에서만 가능하다, 서울에서는 안 된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굉장히 소수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그걸 더 많이 퍼뜨리는 게 구자인 박사님이 하고 있는 역할인 것 같습니다. 


Ⓒstudio H 박혜정


지역농협, 농촌의 변화를 위한 역량과 역할이 있는 곳

하승수  다음은 주정한 조합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정산 조합장님은 농민이시고, 농촌에서 굉장히 중요한 농민들의 자치 조직인 농협을 책임지고 계십니다. 주정산 조합장님에게 농촌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주정산  저는 스무 살부터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열심히 짓고, 돈도 많이 벌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쭉 농사를 짓다가, 조합장이라는 자리를 맡아보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저도 밖에 있을 때는 농협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많이들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농협은 돈 장사를 하는 곳 아닌가, 농민들을 너무 많이 이용하고 착취하는 곳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농협 임원 활동을 할 때 그런 점을 느끼기도 했고, 협동조합인 농협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바깥에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농협에 들어오고 조합장을 하게 됐습니다. 들어와보니, 뭔가 새로운 일을 해서 농협을 싹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농협이 그동안 해왔던 일, 하고 있던 일을 조금 더 낫게, 체계적으로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그런 작업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직원에게 다가갔습니다. 직원은 조합원도 아니고, 직원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직원들도 조합장 길들이기를 하더라고요. 직원들이 안 된다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직원들이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조합원의 참여입니다. 아직도 참여율이 100%는 아닌데, 제가 있는 홍동농협은 많이 올라갔다고 보여요. 어떻게 하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익이 생기면 다시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원들이 또 저를 믿어줘야 돼요. 일단 조직원들이 저를 믿어줘야 제가 하고자 하는 게 되지, 반대만 하고 부정적으로만 보면 제가 하고자 하는 게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까 직원, 조합원, 임원들이 제가 생각하는 일, 조합원들이 원하는 일을 농협이 추진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직원들한테 항상 꿈을 꾸자고 합니다.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농협에서 대출 상품을 팔고, 물건 파는 게 아니라 지역을 어떻게 아울러 갈 것인가를 꿈꾸고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홍동면에는 많은 협동조합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해서 저마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뭔가 하나 부족한 느낌이 있어요. 그 부족한 면을 채우는 역할이 농협이라고 생각해요. 농협에는 직원도 있고, 돈도 있고, 사람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런 부분에서 농협이 지역을 보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studio H 박혜정


농촌과 그곳에 깃든 사람과 떨어진 농업 연구는 별 의미 없어

하승수  다음, 강마야 박사님은 농업농촌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해오셨습니다. 제가 강 박사님 쓰신 논문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충남 마을 몇 개를 집어서, 마을 단위 농지 소유∙이용 현황을 전수조사를 하셨어요. 사실 그런 연구는 저는 처음 본 것인데, 그만큼 농촌, 농업에 애정이 많으신 분입니다. 강마야 박사님께 농촌이란 무엇인지, 본인 소개와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강마야  저는 공주에 있는 충남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농업 정책을 연구하고 있어서 농사짓는 분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충남연구원에서 일한지 12년이 됐고, 그전까지 대학교에서 농경제, 농업정책 등 농업 공부만 했어요. 그 외에 농촌 사람들과 그 환경은 전혀 학교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주질 않습니다. 그런 일률적인 교육을 받다가 충남연구원에 왔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달리 지역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연구원에서 활동하며 농업이라는 게 농촌이라는 공간, 그 공간에 사는 사람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원체 취미가 없기 때문에, 연구원에 출근해서 연구하다 퇴근하는 생활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에게 농업이란 그냥 제 삶의 일부 같아요. 연구 장소가 농촌이라서, 농민들이 아프면 제가 좀 허리가 아픈 것 같고, 농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으면 머리가 아픈 것 같습니다. 농업이라는 것은 농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히 연결된 곳이라고 생각을 해요. 

요새 프랑스에서 엄청 시위하고 있잖아요. 농민들의 구호가 '노 파머스, 노 푸드, 노 퓨처(No Farmers, No Food, No Future)'입니다. 농민이 없으면 먹거리도 없고, 우리 미래도 없다는 구호를 들고 트랙터 시위를 하고 있는데, 저는 그걸 보고 농업 연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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