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본활동[농農익는 대화] 마을에서 그리는 미래_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

2024-02-07

"농農익는 대화"을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두번째 농農익는 대화에서는 주정산 홍동농협 조합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홍동농협 조합장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신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두 번째 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이 될 정도로 조합원들의 큰 지지를 받고 계신데요. 농촌, 특히 면에서 농협이 차지하는 역할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커 보입니다. 첫 질문으로는 그런 단체의 대표로서 재임하시면서 지금까지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하려고 하셨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사람이 그동안에 농사꾼이었을 때와 이런 조직을 맡았을 때 하게 되는 생각은 약간 차이가 있더라고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있고. 내가 요즘 자주 쓰는 말인데 생각하면 꿈을 꾸게 돼요. 꿈을 꾸고 그다음은 이제 현실이 돼야 한다는 거죠. 저의 꿈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중학교는 평범하게 지역에 있는 홍동중학교를 갔지만, 고등학교를 풀무학교라는 좀 독특한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를 처음부터 알고 간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이념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성경을 잘 알아서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다 보니 하나의 이념이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 거죠. 이게 어떻게 보면 꿈의 시작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해요.

농촌은 이런 농촌이 돼야 한다는 꿈을 갖게 되고 20살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로도 계속 그 방향성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에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거죠. 지역에서 살아가며 농민 조직이라든지 마을 일이라든지 쭉 해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농협 조합장이 되었어요. 이 조직이 시골에서는 가장 큰 조직이잖아요.

돈도 있고, 사람도 있고 뭔가 할 수도 있는 조직이죠. 4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무엇을 했냐? 이렇게 물어보면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로컬푸드도 만들고, 유기질 퇴비 공장도 만들고, RPC도 만들고 금융업무도 했고, 경제 사업장도 그렇고 가만히 보면 역대 조합장들이 다 해놓은 일이에요. 이전 조합장들이 쭉 이렇게 해놓은 것을 여덟 번째인 제가 와서 정리를 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본점은 예수금을 좀 체계화했다든지 내지는 조합원들이 왔을 때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정리했다든지 하는 거죠. 조합원들이 왔을 때 직원이 상냥해야 내 집에 왔다고 느끼고 나를 반겨주고 하면 자주 오고 싶어지잖아요.

또 로컬푸드를 보니까 손님이 별로 없이 그렇다면 올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어요. 매출 규모를 보면 내가 취임했을 때보다 지금이 면 인구가 줄었다고 하는데 그때보다 매출이 한 70% 이상 더 뛰었거든요. 나도 모르는 새에 증가한 거죠. 우리는 조합원이 원하는 물건을 매장에 들여놓으려고 노력만 했는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구태여 조합원이 오토바이 타고 홍성 갈 필요가 없고, 나이 드신 분이 구태여 복잡한 홍성에 가서 그걸 사 올 필요가 없게 된 거죠. 그리고 홍동에는 귀농 귀촌인들이 한 700~800명 되잖아요. 이분들이 매장이 조금 더 나아진다면 지역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물건을 사러 홍성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봤어요. 조금 비싸든 조금 싸든. 그렇게 마니아가 생긴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다음에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경제 사업장이에요. 가보니까 농약 파는 게 전부인 거예요. 농약 팔고, 농기구 몇 개 파는 게 전부였어요. 농민들이 삽, 호미를 사러 홍성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야 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한 일이 경제사업장을 최소한 농민이 필요한 것을 갖추도록 만든 거죠. 그리고 없는 물건이라도 농민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다음 날 내지는 48시간 안에 갖다놓는 시스템을 갖췄어요. 그래야 80살 먹은 노인도 농사짓기가 수월해질거라 생각한거죠.

제가 젊었을 때는 동네 노인들 보고 70살까지만 농사지으시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때는 60살 넘으면 죽던 시대였으니까요. 근데 어느 순간에 이제 80세까지는 농사를 지어야 할 게 아니냐고 제가 이야기를 해요. 우리 농협이 80~90살 농민도 농사를 짓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농민이 더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쓸만한 경제사업장을 만들려고 노력했죠. 쓰던 물건이 망가져서 새것이 필요하면 갖고 오셔라 해요. 부서진 걸 갖고 오시면, 똑같은 걸 구할 수 있으면 똑같은 걸 구해드리고 없으면 비슷한 걸 구해드리는 거죠.

 그리고 유기질 퇴비 공장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어요. 일종의 혐오시설로 여겨지고 있었거든요. 계속 저것 때문에 사람들이 민원을 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협동조합이라는 곳에서 저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까 의문이었고 조합장 선거 공약에 그런 내용을 담았었죠. 공약에 제가 뭐라고 했냐면 유기질 퇴비 공장 현대화를 이야기했어요. 바깥에서 보면 퇴비 공장처럼 보이지 않게 하겠다고 했죠. 지난 임기 동안 현대화를 해서 이제는 바깥에서 보면 그냥 엄청난 큰 창고가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리모델링을 해놓은 거예요.

아직도 멀었죠. 제가 볼 적에는 더 노력해서 진짜 누가 봐도 혐오 시설이 아닌 우리와 같이 사는 시설로 변해야 해요. 왜 그러냐면 축분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거든요. 그 냄새도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귀농·귀촌 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계속 문제제기가 나옵니다. 여기 살던 사람들도 이제는 냄새나서 못 살겠다 하며 떠나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이 퇴비공장을 통해 일시에 해결될 순 없겠지만 나아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또 저희가 미곡 처리장(이하 RPC)을 운영해요. 취임했을 때 RPC가 있는 동네 사람들이 맨날 민원을 걸고 있었어요. 소리가 나고, 먼지가 난다고. 그래서 제가 생각했어요. 돈을 조금만 쓰면 먼지 안 나게 할 수 있고 최소한 소리 안 나게 할 수 있다고 봤죠. 그래서 지금은 리모델링 작업을 해서 마을 주민들 나름대로 잘 살잖아요. 지금까지는 민원 조금 있어도 그냥 운영할 수 있겠지, 대충 설득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거대한 조직일수록 마을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농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조직은 반드시 피해를 주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동안에 너무 큰 피해를 줬어요.

그리고 이제 우리 쌀을 파는 문제가 있었어요. 취임하고 보니 쌀을 못 팔고 있는 거예요. 친환경의 메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많은 벼를 수매를 했는데 반 정도밖에 못 팔고 있더라고요. 벼값을 결정하면 막 며칠씩 싸움을 하고 작목반과 농협이 서로 비싸니 싸니 이야깃거리가 되고. 그래서 제가 와서 제일 처음에 한 게 기초가격을 미리 공포를 했어요. 11월쯤 되면 내년도 가격이 얼마라고. 그러니까 최소 줄 수 있는 가격 얼마인지 미리 알려주는 거죠. 아무리 벼값이 내려가도 이 돈은 주겠다. 대신 올라가면 올라간 만큼 더 주겠다. 왜? 그래야 농민들이 나는 이 가격 정도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러고서 가을에 됐는데 쌀값이 오르고, 우리가 잘 팔면 기초 가격보다 더 줄 수도 있는 거죠.

그동안 늘 기초가격보다 더 많이 줬죠. 그러니까 농민들이 믿더라고요. 다 팔아주니까. 제값을 받아주니까. 우리가 쌀값을 결정할 때 벼값 결정 위원회를 해요. 지금은 아무도 얼마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농협에서 알아서 잘 줄 거라 믿어주시죠. 오히려 벼값에 대해서는 말도 안 하고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한 토의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친환경 쌀 문제가 일정 부분 해결이 되었어요. 이렇게 보면 내가 새로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정리만 한 거예요. 

추가로 제가 강조한 게 또 있어요. 저는 손익이 나기 전에 써야 한다는 개념이 굉장히 강해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흑미(검정 쌀)를 우리 1,400명 조합원에게 2kg씩 나눠줘요. 그리고 이곳에선 많이들 김장하잖아요. 근데 새우젓을 꼭 쓰잖아요. 그래서 제가 새우젓도 하나씩 1년에 한 번씩 드리고. 물론 각종 사업을 통해서 항공 방제할 때 보조금도 주고, 농약 판매할 때 20% 할인도 해드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로 농민들한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고 봐요. 내가 혜택을 받았다 생각하지 않아요. 홍동농협이 지난해에 교육 지원 사업비라고 해서 환원 사업을 7억 7천 정도 했어요. 7억 7천 정도 하는데, 그중에 한 2억 정도를 현금화해서 줬어요. 그러니까 상품권을 주는 거죠. 저는 상품권을 최소한 1년에 세 번은 줘야 한다고 말해요. 고액이 되든 저액이 되든 대신 1만 원짜리로 상품권을 만들어서 조합원들한테 세 번 정도는 드립니다. 여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가 있어야 밖으로 가지 않고 우리 매장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농협이 아무리 조합원들에게 농협을 이용해달라고 해도 조합원들은 먼 세상 이야기로 들어요. 왜 이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이용을 해보지 않았으니, 조합이 뭐가 좋고 나쁜지를 전혀 몰라요. 와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제가 취임할 때만 해도 농협을 그냥 돈 맡기고 찾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어요. 그래서 취임 후 홍동농협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상품권 1년에 딱 세 번씩 주기 시작했어요. 다른 데 같으면 5만 원짜리로 크게 만들어주잖아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대개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번에 2만 원 이상 쓰지 못해요. 1만 원짜리를 줘서 그걸 계속 와서 쓰게 만드는 거죠.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자꾸 1만 원짜리 상품권을 쓰러 오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홍동농협에 상품권을 쓰기 위해 두 번, 세 번 온다는 거예요. 그럼, 네 번째는 자동으로 오게 돼요. 그러면서 홍동농협이 이런 것도 하네, 이런 점은 좋다고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용도가 높아지고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홍동의 지역화폐인 ‘잎’을 하나로마트에서 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그러면 그다음에 수익이라는 게 생겨요. 그런데 흑자 난 거 누구 줘요? 배당으로 다 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작년에 7억 7천만 원 환원 사업을 했고, 12억 원 흑자를 배당금으로 집행했으니 총 20억 정도를 조합원한테 환원한 셈이죠. 결과적으로 남은 거 다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조합이 활성화가 되죠. 그럼에도 흑자가 나요.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이용을 해주니까.

예전에 흔히들 농협은 농민의 피를 빨아먹는 조직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농협이 농민들로부터, 주민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건 맞아요. 하지만 조합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확하게 농민들한테 환원하면 농민들이 생각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농협을 금융기관이라고들 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볼 때 농협은 농민의 편의시설이에요. 금융은 따라오는 겁니다. 그냥 우리가 잘하면 농민들이 돈 갖다 맡기고 대출해 가고 이건 따라오는 거지 그거를 위해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은 저뿐만 아니라 지역 분들도 농협을 농민 편의시설, 주민 편의시설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새롭게 만든 편의시설이라고 하면 육묘장을 시작한 것뿐이네요. 지금 홍동농협이 설치한 육묘장이 약 팔만 판 정도의 육묘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홍동면의 한 3분의 1 정도를 농사지을 수 있는 양이예요. 육묘장을 설치하고, 그 정도 양을 심어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죠. 왜? 아까 내가 이야기했잖아요. 80살까지 농사지을 수 있게 해야 하니까. 90살까지 농사지으려면 뭐를 해야 할까요? 60대는 걱정도 안 해. 왜 알아서 하니까요. 75세 넘어가는 사람들이 문제에요. 그분들 누가 모를 심어줄 거예요? 지금 모심을 사람이 없어서 못 심은 사람들 사정하고 다니잖아요. 가을 되면 콤바인 해달라고 사정하고 다닙니다. 이거 이제 마침표 찍을 때가 됐다는 거예요. 이제 농협에서 할 때가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앙기를 7대를 구입을 했습니다. 이걸 심어야 할 거 아니냐. 그리고 이앙기 7대를 젊은 친구들한테 그냥 사용하도록 했어요. 그 대신 영업을 할 때 단가는 시중 단가 보다 약간 싸게 하는 거죠. 항간에는 왜 청년 농부들한테 그 기계를 주냐. 공짜로 기계 쓰는 청년들만 돈 벌게 해준다고 말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80~90대 농민들은 이런 생각 안 해요. 논 골라주고, 모내기 해주고 벼도 수확해주고 내 아들도 안 하는 일을 해준다고 고마워해요. 지금 60대분들은 고마워하지 않죠. 비싸다고 착각들을 하는 거에요. 근데 그 사람들도 나이를 먹는다는거죠. 그분들이 75세가 되고 80세가 넘어가면 지금 80~90대 농민들과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근데 제가 왜 철저하게 청년이나 후계 농민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냐면 젊은 친구들이 돈을 벌어야 지역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이 홍동면이라고 봐요. 어떤 이들은 이미 늦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늦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우리 지역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요. 5명 중의 한 명만 미래에 농사를 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이 친구들이 농사를 짓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가 농부로서 잘살아야 해요. 최소한 삶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 5명 중 한 아이는 나중에 농사를 짓고 살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젊은 농부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거죠. 농협의 지원을 받아 기계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미래 농부의 부모가 될 거예요. 아직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절대로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오늘 태어난 아이가 청년이 되어서 홍동에서 농사짓는 모습을 생각하라는 거죠.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1년에 한 명씩이라도 매년 농부가 생긴다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10명이 생길 거고 20년 후에는 20명이 생겨나죠. 지금 40살 이하의 전업농이 홍동면에 몇 명이나 될까요. 20명이 안 돼요. 5명 안팎이에요. 그렇다고 하면 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이가 10명, 20명이라면 홍동의 농업이 무너질까요?

제가 20살에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우리 가족이 짓는 농토가 980평이었어요. 980평, 그게 저희 땅의 전부였어요. 그때 저의 꿈이 뭐였었냐면 20마지기의 땅을 갖는 거였어요. 20마지기면 4천 평입니다. 논과 밭이 4천 평만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꿈의 마지기라고 했죠. 당시에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에게 꿈의 마지기가 얼마냐고 물어보면 한 섬지기라고 다들 그랬었죠. 한 섬지기라는 게 논 20마지기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20마지기만 있으면 애들 잘 가르치고 부자로 살던 시대였어요. 제가 거의 10년 후, 30대 초반에 20마지기를 경작하게 되었죠. 

그런데 지금 농사짓는 친구들에게는 꿈의 마지기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한 200마지기라고 하더군요. 점점 기본 경작면적이 커지고 있는 거죠. 제 세대는 20마지기를 채우는 데 10년이 걸렸고, 지금 젊은 친구들은 300~400마지기를 채우는 데 2~3년이 걸렸어요. 점점 더 빠르게 1인당 경작하는 면적이 커지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그런 시대에 전업농 친구들 30명이 있으면 홍동면의 농토가 놀게 될까요? 저는 30명, 40명의 전업 농부를 키우고 겸업·부업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으면 홍동면의 농사가 지속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인구가 좀 줄어도 2천 명 정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왜 귀농 귀촌인들이 계속 들어오니까. 단, 지금부터는 준비해야 해요. 그래서 제 첫 임기에는 그걸 준비했어요.



그렇다면 두 번째 임기 때는 어떤 일을 하실 건가요?

2단계 사업은 뭐냐 하면 제가 복지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복지 사업을 거대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200~300억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200~300억 하면 엄청 큰돈이잖아요. 우리에게 그런 재원이 있나 생각해 보면, 홍동농협에는 재원이 없지만 나라에는 충분히 재원이 있습니다. 어쨌든 농업이나 농촌도 이곳에 맞는 복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복지의 핵심이 ‘공유’라는 거죠.

제가 지금 하려고 하는 게 청년들이 와서 연수할 수 있는 마을이에요. 아주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공유 주택을 지어야 한다. 우리 마을에 연고지가 없는 청년들이 마을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한 1, 2년 살면서 농촌에 익숙해지고 농사 공부를 해봐야 내가 농촌에서 살지 도시로 다시 나가야 할지 결정하잖아요.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집을 구하는 것도 쓰러져가는 폐가 얻고 그거 고쳐서 하우스 몇 동 얻어서 하다 보니까 빚만 지게 되죠. 그러니까 3년 정도 있다가 부채만 남기고 지역을 떠나기 일쑤죠. 그리고 부채는 어디다 남겨두고 가나요. 지역농협에다 남겨놓고 가죠.

나는 그래서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집을 한 6채만 지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4년 만에 나가는 친구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3년 만에 나가고, 어떤 사람은 6년 하고 독립하는 친구도 있겠죠. 하지만 1년에 한 명의 농부만 키운다고 생각하면 6년이라는 세월, 6채의 집 투자할 만하죠. 그리고 공유 주택에 사는 동안 농사일도 배울 뿐 아니라 유통·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되면 독립하는 거예요.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을 때 독립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공유 주택뿐 아니라 농지, 시설까지 다 준비해야죠.

다만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공유라고 해도 집을 수리를 한다든지 또 지어야 한다든지 최소한의 운영비가 있잖아요. 운영비는 나와야 그다음에 또 보수를 하고 또 공유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정리하면 청년 공유 주택과 공유 실습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청년들이 5년, 6년 공부를 하고 나서 귀농 정착 자금을 받든 청년 정착 자금을 받아서 자신감이 있을 때 땅도 사고 시설도 하고 하면 절대로 그 친구가 나가는 일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자신들이 하던 시설이 마음에 들면 그 친구한테 팔고 그 돈으로 옆에 또 시설을 지으면 돼요. 

어쨌거나 지금처럼 하면 백발백중 빚만 지고 청년들은 다시 농촌을 떠나게 되어 있어요. 땅 300, 400마지기 물려받은 친구들. 소, 돼지 몇백 마리, 몇천 마리 물려받은 친구들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새로이 시작하려는 친구들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지금 귀농을 하면 처음부터 귀농 창업 자금이라고 막 2억, 3억 대출해 줘요. 그 돈으로 막 하우스 지어요. 공부도 안 된 사람이. 그리고 4년 후부터 원금까지 갚아야 하죠. 이자 갚을 때는 조금 견딥니다. 원금 갚기 시작하면 부도가 나고 마을을 떠나가요. 이게 잘못돼가고 있다는 거예요. 연습이 안 돼 있다는 거죠. 연습이 된 상태에서 귀농 자금을 지원받으면 훨씬 낫겠죠. 그래서 귀농한 사람, 초보 농부들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농협에서 해야 한다. 그래서 공유 농토와 공유 집을 지어야 한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이 그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복지는 귀촌인들을 위한 거죠. 저는 지역의 붕괴가 학교부터 시작된다고 봐요. 학교가 없어지면 그다음 없어지는 게 뭘 것 같아요? 사람이 없어져요. 그다음에는 식당이 없어져요. 밥 먹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러면 편의시설이 싹 없어지는 거죠. 이걸 막기 위해서는 쉽게 귀촌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생각한 게 귀농·귀촌인의 집이죠. 그것도 청년동 바로 옆에 짓는 거예요. 그럼 어떤 때는 청년동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귀농·귀촌인을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죠. 이것도 5~6채면 될 것 같아요.

청년 농처럼 5~6년 있다가 마을에 적응이 되면 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양보하고 나가는 거죠. 그리고 저는 농촌에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이렇게 구분 지어서 말하는데, 자꾸 귀농인, 귀촌인이라고 자꾸 의식하니까 구분이 생기는 거라고 봐요. 제가 봤을 때는 5년 넘으면 원주민이에요. 그러니까 귀농·귀촌하신 분들도 스스로 5년 지나면 나는 원주민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청년 공유 주택과 귀농·귀촌인의 집을 가까이에 두면 청년 농들이 가끔 일손이 필요할 때 귀농·귀촌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귀농·귀촌인들은 농사일을 옆에서 보고 농사를 경험할 기회도 생길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아요. 

세 번째 복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복지예요. 60~80대를 위한 귀농 센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50대 중반인데 저보다 10년 정도 나이 많은 분들이 젊었을 때 농촌을 떠났다가 그 나이가 돼서 다시 농촌을 오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부모님 살던 집은 이미 다른 사람한테 팔았거나 폐가가 되어 있으니 돌아오기 어렵죠. 다 못 쓰게 됐어요.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친구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야죠. 그것도 똑같이 공유 주택입니다. 공유. 근데 그분들은 채 70살이 안 됐잖아요. 그리고 이분들이 농촌에 오면 아예 일을 접고 집에만 틀어박히기에는 젊단 말이에요. 하루 종일 일하는 건 어렵겠지만 소일거리를 바란단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농사일할 적에 하루 종일 일손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1시간, 2시간 정도 소포장을 해준다든지, 수확한다든지 이런 사람이 필요할 때 있잖아요. 이런 파트타임 일을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딸기 수확 철에 한 열흘 이거 할 수 있잖아요. 새벽에 5일만 나와주라고 할 수 있잖아요. 외지에서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각자에게 맞는 일거리, 실습 거리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죠. 이것도 하나의 실습인 겁니다. 그렇게 마을을 알아가고 난 다음에 농촌에서 살 만하다 싶으면 집을 짓든, 사든 해서 정착을 하는 거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유입되겠죠.

마지막으로는 90세 이상 되시는 분들을 위한 복지예요. 이분들이 머무를 곳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일을 못 하게 된 후 임종 전까지 이분들이 농촌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마을회관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시는 말씀이 ‘마지막 죽으러 가는 곳이 요양원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기에 가서 3일만 있다 오시라고 해도 그분들은 기절합니다. 누가 조금만 보살펴주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분들 30~40명이 살 수 있는 시설이 지역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시설의 운영 자금은 기부로 운영되는 상상을 합니다. 보통 우리한테 잘해 주는 친구에게는 뭔가를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잖아요. 그렇다면 시설이 잘 운영되어 이분들이 사시던 곳에서 노년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분들에게 가장 잘해 주는 친구가 그 조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려울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 게 뭐냐 하면 홍동이라는 곳이 이상하면서도 묘한 게 어찌 되든 뭐가 되는 사회에요. 홍동에는 의료생협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의료생협을 만든다고 했을 때 회의적이었어요. 1년에 3천만 원을 받으면서 농촌에서 살 의사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동네 작은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들 월급이나 제대로 챙겨줄 수 있을까 걱정했죠. 그런데 시작을 해보니 괜찮은 거에요. 우리 의사가 300만 원도 못 받아 가면서 의사 노릇을 하는 거예요. 남들한테 이야기하면 꿈같은 이야기죠. 지방에는 의사가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런 세상에 200만 원을 받고 농촌을 지키는 의사가 있다는 거 그리고 지역 주민이 그 뒤에 버티고 있다는 거 꿈같은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이곳에는 갖가지 협동조합이 나름대로 된다는 거예요. 최소한 망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망할 듯 망할 듯하면서도 굴러간다는 데에 희망이 있는 거예요. 하나 생기고 하나 망하면 희망이 없어요. 근데 만들어지는 곳마다 단체가 근근이 유지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홍동은 십시일반이라는 게 되는 곳이라는 거죠. 누군가 시작만 하면 3,000명이 1만 원씩 내놓는 곳이다. 그리고 그런 문화가 있는 곳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제구실하니까 외부에서도 기부하죠. 그러니까 여기가 기부해야 할 곳, 할 만한 곳이라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거예요. 앞서 말한 일들도 이런 식으로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부, 십시일반을 통해 농업, 농촌이 굴러갈 수 있게 되는 거죠.

또 하나 빠뜨린 게 있는데 외국인이에요. 앞으로 어쩔 수 없이 큰일은 외국인이 와서 할 수밖에 없어요. 전업 농민 40명을 도와줄 인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처럼 하면 안 됩니다. 홀대하면 안 돼요. 이주노동자들 오면 컨테이너 갖다주고 거기 살라 그러고, 비닐하우스 속에다가 방 들여서 살라고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과연 한국이라는 땅을 떠나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돈 벌러 왔지만 난 이런 나라 처음 봤다고 해요, 얼른 돈 벌어서 떠야겠다고 생각하죠.

이렇게는 안 됩니다. 청년 공유 주택, 귀농·귀촌인의 집 옆에 이주노동자를 위한 집도 같이 지어야 해요. 거기에 한 10채 정도 2인 1실로 한 20명 정도가 살 수 있는 센터를 지으려고 그래요. 그래서 올해 홍동농협에서는 외국인 20명을 받으려고 합니다.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 20명을 받아서 3개월 단위로 연수를 시킬 겁니다. 4, 5, 6월에 이제 사람들이 옵니다. 3개월 동안 봐서 20명 중에 일을 잘하는 친구만 다시 가을에 또 오게 할 거예요. 그때 또 20명을 채워서 오게 해야죠. 이런 과정을 1년, 2년 반복되면 우리 지역에 맞는 사람이 계속 오겠죠.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역 주민처럼 될 것이고, 기계라든지 농작업이 능수능란하게 됩니다. 그럼 그 친구들이 농사를 같이 짓는 거죠.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체계적으로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농사짓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 중입니다. 그래서 지금 많이 진척됐어요, 나름대로. 이게 마지막으로 농협이 할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사람들은 농협이 농산물 가공공장이나 그런 걸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할 것 같습니다. 농협이 좀 더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요. 

농협이 왜 해야 하느냐 의문이 생길 수 있어요. 제가 처음에 농협에 들어온 이유가 농협에 변화를 줘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바깥에서 보니까 제 역할을 다 못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런 생각을 갖고 들어왔는데 내 생각 하고 똑같더라고요. 들어올 때는 솔직히 그랬는데 이게 조금 변화만 주면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곳에는 돈이 돌아다니더라고요. 지역의 어느 단체를 가봐도 제가 돈 돌아다니는 걸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 조직을 잘 활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재원을 마련하기에도 농협이 좋죠. 조합원들의 예금뿐 아니라 지자체, 농협중앙회와도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농협이 하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들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농협은 단독으로 있는 게 아니라 거대한 농협이라는 조직에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홍동농협에서 벌여 놓은 일을 유지하기에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단순히 농협이 수직으로만 연결된 게 아니잖아요. 수평으로도 농협이라는 이름 아래 1천 개 이상의 지역 농협이 있죠. 그렇다면 한 곳에서 사회적인 모델이 잘 되면 전국에 확산이 되기도 쉽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잘해야 해요. 우리가 잘해놓으면 2번, 3번, 4번이 생긴다는 거예요. 


앞서서 농협중앙회가 잠깐 언급되었습니다. 농협중앙회장 연임제에 모든 관심이 쏠려 묻히긴 했지만,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에는 지역 농협의 지지를 받는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지역 농협 조합장으로서 지금의 농협중앙회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져야 하는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일단 농협중앙회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홍동농협 같은 경우에는 중앙회의 혜택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왜냐면 조그만 농협들은 중앙의 혜택을 안 볼 수가 없어요. 우리처럼 시골에 있는 농협들은 중앙회에서 무이자 자금이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환원 사업을 할 수 있고 그래요. 그런데 무이자 자금이라는 게 중앙회에서 지원받은 돈을 예치하면 이자가 발생할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 10억을 예치하면 발생하는 3천만 원의 수익을 지역 농협의 사업비로 활용하는 그런 거죠. 

다만 그 무이자 자금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농협법에 도시 농협은 수익의 일부를 상생 기금으로 내놓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도시 농협에서 1년에 금융 소득을 1조를 냈더라도 지금은 순수익의 몇 퍼센트를 내게 되어 있어요. 도시의 큰 농협들 20곳에서 한 300억 걷어도 지역 농협에 돌아가는 돈은 5천만 원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돈을 더 내놓게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단기 순수익이 아닌 총수입을 기준으로 상생 기금의 액수가 정해져야 한다고 봐요. 도시 농협에 ‘농’ 자를 붙일 수 있는 게 지역 농협 덕분이잖아요. 지역의 농민들 덕분이죠. 도시 농협에서 한해 예수금 유치 2조, 3조라고 광고할 수 있는 이유에는 도시에 있으면서도 농협이라는 조직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러니까 상생 기금은 혜택비라는 거죠. 홍동 농협처럼 조그만 농협들 덕에 갖가지 혜택을 보고 있으니, 혜택비를 내라는 것뿐이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명문화되고 구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홍동은 유기농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홍동에서도 유기 자재라고 해서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유기 자재에서 제외된 자재였고 그래서 농민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했는데요. 점점 농약 검사법이 발달하면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기농 인증제도 이대로 괜찮을까요?

우리나라 인증 제도는 관리 쪽으로 가야 하는데 감시 쪽으로 가고 있다고 봐요. 감시하고 그걸 찾아내서 인증을 취소시키고 있거든요. 관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주고 계속하도록 지원해 주는 식이 되겠죠. 아까 자재 문제도 감시에 기반한 인증제인 거죠. 그러다 보니 자꾸 규칙을 더 강하게 만들어버리고, 점점 더 많은 자재가 감시 대상에 들어가 버리죠. 그래서 저는 딱 한 마디로 이야기를 하면 감시보다는 행정적으로 뭔가를 해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농촌에서는 인력이 없으니 점점 무인 헬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러다 보니 비산 문제가 발생해요. 공중에서 살포하면 바람에 따라 10m, 20m 비산되기는 아주 쉽죠. 물론 바람에 날려온 농약이 묻은 농산물을 유기농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요. 어차피 농약이 비산됐으니까요. 그렇지만 토양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토양에 대한 인증도 취소시켜 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거죠. 이게 문제가 있는 게 토양 관리를 한 30년 동안 해왔단 거죠. 그렇다면 농민이 얼마나 억울할까요. 30년을 유기농으로 농사지어온 사람이, 농약이 바람에 날려왔다고 인증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하면 말이죠.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감시보다는 관리 쪽으로 지원해 주고, 컨설팅해 주면 더 좋겠죠. 잘 안되는 부분을 보완해서 유기 인증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제재만 느니까 점점 어려워져요. 제재하면 안 된다. 제재는 최후의 방법인 거라는 거예요. 일단 육성해야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올겨울 평소와 달리 비가 많이 왔습니다. 날도 따뜻해서 예년과 달리 논에 물도 가득 고여있고, 벌써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계속 심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농민과 농협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솔직히 농협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농민이 할 수 있는 것도 솔직히 아무것도 없다고 봐요. 왜 그러냐면 우선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 정도라고 하죠. 그렇다면 그 3%에서 더 줄일 방법이 뭘까요? 기껏해야 소 덜 먹이고 퇴비 덜 내고 농약 사용을 줄이는 것밖에 없지 않나요.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농민들도 자재를 덜 쓰고 해야겠죠. 그렇지만 현재 농민은 지금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 엄청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농민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하란 짐을 더 얹어주는 것은 안 된다는 거죠.


주정산 -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졸업, 전 풀무영농조합법인 생산자 대표, 현 홍동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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