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익는 대화'는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반도체로 전국이 떠들썩한 요즘, 용인만큼 자주 언급된 지역이 있을까요? 용인과 반도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쏟아지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농農익는 대화에서는 지금,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예정부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이동읍에서 가장 넓은 벌판, 구미뜰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올해 초만 해도 드물지만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요새는 아예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데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내가 1961년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만 잠시 수원 나가서 살아보고 쭉 여기서 살았어요. 시각 장애가 있는 관계로 방위를 받게 돼서 군 생활까지 다 이 동네에서 했기 때문에 여기를 떠나본 적이 없죠. 이 동네를 떠나보지 못한 거지(웃음).
그럼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이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1리죠.
그러면 동네가 변하는 것도 다 보셨겠어요.
그렇죠. 다 봤죠. 내가 1968년도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으니까, 그때부터 기억이 난다고 해도요. 지금 앉아있는 곳에 있는 마을 당산나무로 얘기를 하자면은 옛날에는 이 가쟁이(가지)에 매달려 올라가서, 저쪽 가쟁이를 짚고 내려오면서 놀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이 가쟁이가 지금 이렇게 잡아보니까 많이 컸네(웃음). 그때는 어린 손으로도 매달릴 수 있는 크기였으니까.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들어서는 이곳이 어떤 동네인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앞에 들로 따지면 거북이 구(龜) 자에다가 꼬리 미(尾) 자를 써서 여기를 ‘구미뜰’이라고 그러는데, 거북이 꼬리처럼 생겼다고 어른들이 그랬대요. 구미뜰이 이동읍에서는 제일 넓은 들이에요. 원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고, 시미1리가 다른 동네에 비해서 좀 늦게 도시화가 됐어요. 1970년대에 논은 경지정리가 되고, 지역에 규모가 큰 나무농원이 세 개나 생겨서 자기 땅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이제 거기 가서 품 팔아서 살고 했죠.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서서히 산업시설들이 들어오면서 농지가 차츰 줄어들기도 하고, 지금은 저 산업도로가 생기면서 농지가 많이 없어진 거죠.
저기 하천이 진위천 상류인데, 내가 80년대 후반에 환경운동을 하면서 ‘왜 남의 동네 이름을 쓰냐. 우리 동네 이름을 따서 이동천으로 하자’ 그랬거든요. 행정적으로는 이름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다 이동천이라고 불러요. 예전에는 멱 감는다고 그러잖아요. 저 하천에 들어가서 다들 수영을 하곤 했는데, 1986년도 여름에 대학 후배들 데리고 와서 이동천에서 멱 감자고 내가 먼저 들어갔는데, 물 느낌이 안 좋아. 그러고서 그날 저녁에 사타구니 이런 데가 좀 근질근질하더라고요. 그즈음부터 물 놀이를 할 수 없는 물로 바뀐 거죠.
용인이 시 승격 30년 만에 인구 110만 명을 넘기며 네 번째 특례시가 될 정도로 개발이 많이 되었는데, 이동읍은 그나마 제일 오랫동안 농촌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는 골프장 허가를 무진장 많이 내줬거든요. 그때부터 용인은 산업화된 동네보다는 위락시설이 있고 전원적인 마을로 간다는 방향성이 있었죠. 2000년대 초반에는 수지나 기흥이 사람들이 머무는 곳, 베드타운으로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수도 없이 만들어졌고, 처인구 쪽은 양지, 원삼, 백암을 중심으로 일종의 전원마을 형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어요.
용인은 어떻게 반도체 산업단지 집중지역이 되었나
용인이 에버랜드나 민속촌과 같은 관광지, 그리고 새로운 베드타운, 전원마을로 도시가 개발이 되다가 최근에는 반도체 때문에 첨단산업단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SK와 삼성이 추진하는 산업단지를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각각 처음에 어떻게 지역에서 추진이 되기 시작한건가요?
일단 SK는 사실 처음에 말이 많았던 게, 당시에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겠다고 하면서 대형 산업단지를 더 이상 허가해 주지 않겠다는 흐름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SK 회장이 그 지역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몰라도 몇 번 방문했다더라고요. 그 후에 경기도에서 승인받았는데, 그때 당시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모 언론에서 수도권에서 이런 대형 산업단지는 마지막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어요. SK가 들어가는 산업단지는 일반산단이라 경기도에서 허가를 받았고, 시기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때 승인돼서 윤석열 대통령 때 착공한 거죠. 그리고 삼성이 들어가는 국가산단은 2023년 3월 15일에 느닷없이 용인시 이동읍, 남사읍 일대에 230만 평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하겠다는 발표가 나면서 시작된거죠.
그전까지는 지역에 전혀 그런 소식이 없었나요?
네. 그래서 이제 나로서는 반도체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이게 과연 가능한가 싶어서 전에 용인시 부시장을 했던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용인 국가산단에 대해서 의문이 든 건, 그때 윤석열 정부하에서 중국과의 마찰 때문에 삼성이 반도체 수출길이 막혀서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이게 가능한지 의문이었고. 두 번째는 전기가 엄청 많이 필요하고, 반도체는 재생에너지로 해야 하는데 여기는 재생에너지도 없는데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들었죠. 그리고 나는 그 생각까지는 못 했는데 그 친구가 물 얘기를 했어요. 용수 부족으로 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내가 이제 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지역 사람들하고는 ‘이게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그냥 윤석열이 괜히 헛소리 한 번 한 거니까 시간 지나면 취소될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먹거리가 생긴 변호사들, 법무법인이라고 하는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책위 구성을 도와주겠다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처음에는 ‘죽을 수는 있어도 떠날 수는 없다’ 같은 격렬한 반대 구호도 외치고, 마을별로 대책위가 구성이 된 거죠. 나는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잘 싸운다 싶어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 이 변호사들은 내가 하는 얘기랑 자기네 주장이 다르니까 계속 마을 사람들한테 나하고는 접촉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계속 배척됐어요. 그러다가 LH가 읍사무소에서 설명회를 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취하시킬 거라고 하더니 나중에 보니까 거기 가서 협조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 취하시킨다더니 왜 이러고 있냐’ 하면서 현수막을 떼어내고 마이크 잡고 한 마디 하면서 취소하라고 그랬더니 의외로 쉽게 행사를 취소하더라고요. 그 후에도 환경영향평가 관련해서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 왜 너희만 떠들고 있냐’라고 문제제기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더 배제된 거죠.

처음에는 지역 분들도 용인반도체 국가산단은 불가능하다라는 데에 동조하신 게 아닌가요?
처음에는 동조했죠. 그런데 먹거리가 생긴 법무팀들이 무료 변론해 주겠다고 접근해서, 지속적으로 ‘토지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 선임을 빨리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당한다’라고 부추기니까 그쪽으로 확 가버린 거죠. 나 같은 경우는 감정평가 선임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자고 했는데, 주민들 입장에서는 쉽게 얘기하면 뭐 나처럼 두부나 파는 사람이 하는 말하고 넥타이 맨 변호사 말하고 누구 말이 더 신뢰가 가겠어요.
법무법인이 붙으면서 어느샌가 이 문제가 대다수 주민에게는 보상의 문제로 넘어간 거네요. 그럼, 시기별로 지역의 여론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23년에 용인 국가산단 발표가 나고 법무법인이 바로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이슈 전환은 한동안 없었죠. 2024년 초에 설명회를 한다고 했다가 주민들이 반대해서 미뤄지고, 다시 진행하려고 해도 아까 얘기했듯이 주민들의 물리력에 의해서 취소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계속됐어요. 그러다가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에, 2024년 12월 26일에 국토부가 그냥 승인해 버린 거죠. 그전에는 LH에서 와서 ‘결국은 나라에서 하는 거니까 될 겁니다’라는 식의 얘기밖에 없었던 거죠.
2024년 12월 26일에 승인이 되고 나서 2025년에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작년에 승인이 난 후에 이주단지가 추가가 돼서 사업이 더 커졌어요.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를 추가로 하고, 한편으로는 법무법인과 LH에서 계속 감정평가를 빨리 받게 하려고 주민들에게 ‘당신들이 안 하면 일방적으로 하겠다’고 자꾸 협박 섞인 말을 했지. 그러다 보니까 주민들 사이에 ‘어차피 승인까지 된 마당에 더 높은 금액이라도 보상받는 게 낫지 않겠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다른 주민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서 보상에 대한 협의와 조율을 하며 1년을 보낸거죠.
그리고 나는 처음에는 이 사업이 자동 폐기될 거라는 기대를 하다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2024년도에 승인이 나기 전부터 ‘반도체 지정철회 요구 모임’을 주민들 몇 명하고 만들었고, 2025년 대통령 선거쯤부터 모임 이름을 ‘재검토 요구 모임’으로 바꿔서 활동을 계속 이어왔죠.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마을을 둘러봤는데, 가구도 많고, 공장도 이렇게 많은데 2025년까지 이주단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는 거죠?
그렇죠. 이주단지 계획이 없다가 대책위가 구성되면서 이주단지 얘기가 나왔죠. 대책위도 서로 처지가 다르니까 하나가 아니에요. 마을을 중심으로 창리·남사 대책위, 이동읍 대책위 이렇게 두 개가 있고, 그다음에 외지인들이 땅만 여기 사놓은 사람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 땅 주인 대책위라는 이름으로 대책위를 또 만들었고. 그리고 또 기업인 대책위가 있어요. 그래서 대책위별로 요구사항이 다른 와중에, 기업인 대책위에서 공장 이주단지를 요구한 거죠. 그래서 애초에 있던 주민 이주단지와 별개로 공장 이주단지가 나중에 추가가 됐죠.
용인 사람이 바라보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지방선거 이후,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 등 연일 관련 이슈가 터지고 있습니다. 지금 지역의 실제 여론은 어떤가요?
일단 솔직히 보상받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산단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거예요. ‘이미 나는 돈을 받았으니,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그냥 살면 된다. 농사짓지 말라고 할 때까지 농사지으면 된다’ 그런 거죠.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는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는 중요하지 않고, 보상을 아직 받지 않은 사람들은 ‘혹시 안 들어오면 우리 땅값 올라간 거 도로 떨어지려나’하는 염려들을 하고 있죠. 그다음에 우리가 개발과 발전을 동일시하잖아요. 부지 밖에 사는 일반 지역 사람들은 환경이라든가 이런 고민 없이, 그래서 ‘발전하면 다 우리한테 좋은 거 아니야?’ 하는 막연한 생각들이 있죠. ‘지금 반도체가 우리 먹거리라는데 그걸 왜 반대햐느냐’ 이런 분위기여서 애초에 반대를 못 했던 거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이 지역 사람들은 어차피 반대하면 땅값 더 받으려고 반대한다며 여론 몰이를 당하기도 했던 거고. 정치인, 공무원, 하다못해 이장 이런 사람들은 반도체 산단이 들어오는 것이 용인을 크게 살리는 줄 알고, 그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인 줄만 아는 인식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 설령 반대하는 입장이어도 겉으로 얘기를 안 하고 그러죠. 논리적으로 이건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반대라는 말로 들려서 그 말조차도 어디 가서 얘기를 못 하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러니 우리처럼 재검토 요구나 지정철회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었고, 이상한 집단 취급을 받아왔죠.
선생님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우리가 떠나야 되네. 우리 터전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야 되네’ 우리 안식구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나는 앞서 말한 세 가지 이유로 어차피 사업이 안 될 거니까 걱정 말라고 얘기를 했었죠. 그러다 보상금 책정이 되고 나서는 이 돈 갖고 어디로 갈까하는 고민도 했죠. 우리 마누라는 ‘이 돈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네. 재산 가치가 그것도 우습게 좀 나네(웃음). 이제 들어오든지 말든지 모르겠다. 나는 좋은 데만 잘 찾아서 내가 계속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더 좋은 데로 간다’ 그런 상황이고 나 역시 ‘그 말에 그러긴 하네(웃음)’ 이런 입장이죠. 지금 호남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는, ‘떠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자. 그렇지만 세 가지 조건 중에 전기와 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우리는 무상 장기 임대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 편히 살자’ 이런 거지.
근데 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데 한쪽으로는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아마도 꽤 긴 기간은 내가 살 수 있을 거다’하는 생각으로 있거든요. 왜냐하면 결국 용도 변경이 될 거라고 보거든. 반도체 공장은 물과 전기를 공급하기 힘들어서 안 들어올 거라고 아직도 믿고 있고, 그렇게 되면 여기가 이제 국유지가 되는 거 아니에요? LH가 토지 매입을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럼, 무상 임대를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 그때 용도 변경을 하더라도 기존에 있는 산업시설을 억지로 이주시킬 게 아니라 얕은 산, 시설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지역에 어울리게 다른 방식으로 용도 변경이 되도록 그 싸움을 또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개인들이야 쉽게 떠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구미뜰에 있는 저런 산, 저런 하천들이 망가지게 둘 수는 없으니까.

나라를 먹여 살릴 반도체?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유
언젠가 이사를 가야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반대운동을 이어간다는 게 쉽지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 여론과 다르게 움직이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매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이 운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나도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태어나서 여기를 떠나보지 못하고 살았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살이, 식모살이하면서 이 터전을 마련한 거예요. 저기 뒷산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묻혀 계신 산소가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저 땅을 사면서 ‘내가 이다음에 여기 묻혀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 땅을 사셨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같은 마을에 사는 동서를 데리고 가서 ‘나 요 자리에 묻어줘’ 하시고는 며칠 있다 돌아가셨거든. 우리 어머니도 내가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이런 것들이 다 송두리째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어릴 때 이 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놀던 이런 추억들이 다 없어지는 거란 말이에요. 내가 지금 1961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대충 예순여섯 살인데, 이 66년이라는 나의 인생이 사라지는 거고. 그리고 이 마을에서 애들을 낳아서 길렀단 말이에요. 우리 딸내미가 서른네 살인데, 그 애들의 인생도 다 없어지는 거란 말이야.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은 사업이 이대로 강행된다는 게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이 작은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냥 없어지는 거지.
백번 양보해서 없어지더라도 나라 전체의 이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면 자기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자기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 사업을 위해서 저 아래 사람들은 자기 터전에 송전탑이 세워져서 그야말로 보상도 몇 푼 받지 못하면서 늘 전자파로 고민하고 살아야 하고, 또 물을 용인에 주기 위해서 국토를 반으로 갈라가면서까지 물을 끌고 와야 하고, 이 작은 땅덩어리를 위해서 전 국토가 희생해야 하는 정책이 과연 제대로 된 정책인가.
그리고 정말 이 지역에 반도체 산업단지를 꼭 해야 한다면 지역에 많이 있는 그 넓은 골프장 한 서너 개 합쳐서 지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평생 터전을 잡고 살아온 사람한테 아무런 피해를 주지도 않고, 도리어 이 사람들한테 일자리 제공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왜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여기를 수십 년 지켜온 사람이 내쫓기고 다 떠나야 하나, 무슨 보상을 받고 떠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죠.
마을을 함께 둘러볼 때 두꺼비집 노래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옛 노래에서도 두꺼비에게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라고 하는데, 여기는 살고 있는 땅과 집을 전부 돈으로 퉁 쳐서 줄 테니 그 돈 들고 나가서 알아서 살라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 정부가 기본사회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산단이 이곳에 굳이 들어와야 한다고 하면 나는 그 요구를 하고 싶어요. 여기 사람들이 기업을 위해서 마을을 떠나게 되면 최소한 이 사람들이 생을 다 할 때까지 기본소득을 보장하라고. 나는 여기서만 벌어먹고 살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여기를 떠나면 어디 가서 10원 한 장 벌 수 없는 무능력자로 바뀌는 주민들이 많단 말이죠. 그럼, 그 사람들한테는 어떤 식으로든 소득 보장을 해줘야지. 너희가 남의 땅에 와서 돈을 벌었으면 그 번 돈 중에 요만큼이라도 이 사람들한테도 같이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마을 분들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떠나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많죠. 화신2리는 마을의 반은 산단 부지고 반은 아니에요. 거기에 딸만 여덟을 낳은 노부부가 있어요. 그 집 같은 경우는 이제 보상받으면 사업부지 대상이 아닌 건넛마을로 가서 산다고 해요. 왜냐하면 딸들은 다 딴 데로 시집을 갔고 부부는 지금 100세가 거의 다 돼 가시는 분들인데 이 나이에 이제 어디로 가서 사시겠냐는 거죠. 평생 농사짓고 들판 같은 데서만 사시던 분이 아파트 생활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딸들이 그 앞마을에 조그만 땅을 하나 사서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는 거예요. 멀리 안 가시게. 그다음에 지금 이 마을에도 아흔여덟이신 어르신이 계시는데 들어올 때 산단이 들어와도 나 죽은 다음에 들어와라 하시는 분도 계시고, 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친구 아버지는 나한테 ‘춘식아, 나 죽기 전에는 안 들어오지?’ 하시더니 작년 말에 돌아가셨어요.
여기 사시는 분들이 옆 마을로 이사를 가시려고 해도 사실 보상금으로 충분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모자라죠. 예를 들어서 집터가 평당 한 400만 원 보상이 나왔다고 쳐요. 그런데 산단 부지 바깥 마을 땅은 평당 600만 원 이렇게 값이 올랐으니까. 땅 팔아서 땅도 지금 못 사는 거예요.
아까 마을 둘러보면서 얘기하실 때 농사짓기 좋은 벌판 땅보다 오히려 산 밑에 숨겨져 있는 땅들이 더 비싸게 보상받는다고 얘기하셨잖아요. 도대체 기준이 뭘까요?
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지금 토지 보상이 끝난 곳들은 맹지거나, 농사짓기 어렵거나 한 곳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얼씨구나 하고 얼른얼른 돈을 받죠. 농사도 짓기 어려운 땅이니까. 그런데 산 아래 벌판은 절대농지라고 그러잖아요. 지금은 농업진흥지역이라고 바뀌었고. 여기서는 농사 외에는 다른 걸 아예 못 하게 했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 상당히 피해를 본 거예요. 그러면 보상할 때는 그동안 이 사람들이 정책적으로 제약을 받았었으니까, 보상금을 오히려 더 줘야 맞는 거죠. 그리고 내가 집을 짓고 사는데 전이나 답을 대지로 전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또 대지 값을 못 받아요.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결국 개발해서 사용할 사람 입장에서는 여기 땅을 다 밀어버리고 평탄 작업을 해버릴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다 똑같은 땅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땅은 농업진흥지역이라고 싸게 보상하고, 어디는 맹지여도 절대농지 아니라고 비싸게 주고, 집이 있더라도 지목이 논밭이면 논밭 가격으로 보상을 하고 이게 말이 되는 거에요? 주민들의 삶에, 가치에 맞춰 보상해야 정상인데, 단순하게 가격 보상을 하는 바람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온통 AI, 반도체, 주식 이야기뿐입니다. 그런 뉴스 뒤편에서,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와 송전탑 싸움을 외롭게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계속 추진된다고 할 때 ‘왜 용인만을 위해서 전 국토가 몸살을 앓아야 하느냐?’, ‘왜 전 국민이 용인 국가산단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좀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경기도청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갔는데, 당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영상으로 토론회 축하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영상에서 도지사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경기도민의 행복이고 용인 시민의 행복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발표 하려고 준비해 간 원고를 엎어버리고 뭐라 그랬냐면, ‘왜 그게 경기도민의 행복이고, 용인 시민의 행복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불행한 데 그러면 나는 용인 시민이 아니냐. 나는 경기도민이 아니냐. 그리고 왜 경기도민의 행복을 위해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이 송전탑으로 고충을 겪어야 하느냐. 왜 강원도 사람들은 물 부족으로 고생하면서도, 경기도민의 행복을 위해서 물을 용인으로 보내야 하느냐. 큰 정치를 할 사람으로서 아무리 경기도지사라 하더라도 전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지, 어떻게 내 동네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합니까?’하고 문제를 제기했거든요.
지금도 나는 사람들한테 여기에 반도체 산단이 들어와서 우리가 얼마나 부자가 되는지는 몰라도, 왜 전라도·충청도·경상도 사람들이 송전탑 때문에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지 역지사지로 생각을 좀 해보자고 얘기해요. 언론에서도 그런 입장에서 취재해 줬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무리한 정책을 세우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진짜 반도체 산업이 꼭 필요하고 이것만이 우리나라 먹거리로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전기와 물을 확보하기 쉽고 일반 국민들이 고충을 겪지 않을 만한 지역으로 선정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겠어요? 그랬으면 우리 시민들이 반대운동을 하고 있겠냐고요.
국회에 가서도 내가 늘 얘기를 하는 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재검토되거나 취소되면 지역 주민들이 여기 서울까지 올라와서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계속 추진할지 말지부터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그럼, 송전탑 반대하시는 분들의 싸움은 끝나는 거 아니냐는 거죠. 그리고 지역에서 올라오신 분들에게는 ‘국가산단 재검토 싸움에서 성공하면 여러분도 같이 성공하는 거니까, 여러분의 싸움이 나한테 힘이 되듯이 내 싸움이 당신들한테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 정도의 얘기밖에 할 이야기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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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읍에서 가장 넓은 벌판, 구미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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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61년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만 잠시 수원 나가서 살아보고 쭉 여기서 살았어요. 시각 장애가 있는 관계로 방위를 받게 돼서 군 생활까지 다 이 동네에서 했기 때문에 여기를 떠나본 적이 없죠. 이 동네를 떠나보지 못한 거지(웃음).
그럼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이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1리죠.
그러면 동네가 변하는 것도 다 보셨겠어요.
그렇죠. 다 봤죠. 내가 1968년도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으니까, 그때부터 기억이 난다고 해도요. 지금 앉아있는 곳에 있는 마을 당산나무로 얘기를 하자면은 옛날에는 이 가쟁이(가지)에 매달려 올라가서, 저쪽 가쟁이를 짚고 내려오면서 놀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이 가쟁이가 지금 이렇게 잡아보니까 많이 컸네(웃음). 그때는 어린 손으로도 매달릴 수 있는 크기였으니까.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들어서는 이곳이 어떤 동네인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앞에 들로 따지면 거북이 구(龜) 자에다가 꼬리 미(尾) 자를 써서 여기를 ‘구미뜰’이라고 그러는데, 거북이 꼬리처럼 생겼다고 어른들이 그랬대요. 구미뜰이 이동읍에서는 제일 넓은 들이에요. 원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고, 시미1리가 다른 동네에 비해서 좀 늦게 도시화가 됐어요. 1970년대에 논은 경지정리가 되고, 지역에 규모가 큰 나무농원이 세 개나 생겨서 자기 땅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이제 거기 가서 품 팔아서 살고 했죠.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서서히 산업시설들이 들어오면서 농지가 차츰 줄어들기도 하고, 지금은 저 산업도로가 생기면서 농지가 많이 없어진 거죠.
저기 하천이 진위천 상류인데, 내가 80년대 후반에 환경운동을 하면서 ‘왜 남의 동네 이름을 쓰냐. 우리 동네 이름을 따서 이동천으로 하자’ 그랬거든요. 행정적으로는 이름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다 이동천이라고 불러요. 예전에는 멱 감는다고 그러잖아요. 저 하천에 들어가서 다들 수영을 하곤 했는데, 1986년도 여름에 대학 후배들 데리고 와서 이동천에서 멱 감자고 내가 먼저 들어갔는데, 물 느낌이 안 좋아. 그러고서 그날 저녁에 사타구니 이런 데가 좀 근질근질하더라고요. 그즈음부터 물 놀이를 할 수 없는 물로 바뀐 거죠.
용인이 시 승격 30년 만에 인구 110만 명을 넘기며 네 번째 특례시가 될 정도로 개발이 많이 되었는데, 이동읍은 그나마 제일 오랫동안 농촌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는 골프장 허가를 무진장 많이 내줬거든요. 그때부터 용인은 산업화된 동네보다는 위락시설이 있고 전원적인 마을로 간다는 방향성이 있었죠. 2000년대 초반에는 수지나 기흥이 사람들이 머무는 곳, 베드타운으로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수도 없이 만들어졌고, 처인구 쪽은 양지, 원삼, 백암을 중심으로 일종의 전원마을 형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어요.
용인은 어떻게 반도체 산업단지 집중지역이 되었나
용인이 에버랜드나 민속촌과 같은 관광지, 그리고 새로운 베드타운, 전원마을로 도시가 개발이 되다가 최근에는 반도체 때문에 첨단산업단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SK와 삼성이 추진하는 산업단지를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각각 처음에 어떻게 지역에서 추진이 되기 시작한건가요?
일단 SK는 사실 처음에 말이 많았던 게, 당시에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겠다고 하면서 대형 산업단지를 더 이상 허가해 주지 않겠다는 흐름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SK 회장이 그 지역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몰라도 몇 번 방문했다더라고요. 그 후에 경기도에서 승인받았는데, 그때 당시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모 언론에서 수도권에서 이런 대형 산업단지는 마지막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어요. SK가 들어가는 산업단지는 일반산단이라 경기도에서 허가를 받았고, 시기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때 승인돼서 윤석열 대통령 때 착공한 거죠. 그리고 삼성이 들어가는 국가산단은 2023년 3월 15일에 느닷없이 용인시 이동읍, 남사읍 일대에 230만 평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하겠다는 발표가 나면서 시작된거죠.
그전까지는 지역에 전혀 그런 소식이 없었나요?
네. 그래서 이제 나로서는 반도체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이게 과연 가능한가 싶어서 전에 용인시 부시장을 했던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용인 국가산단에 대해서 의문이 든 건, 그때 윤석열 정부하에서 중국과의 마찰 때문에 삼성이 반도체 수출길이 막혀서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이게 가능한지 의문이었고. 두 번째는 전기가 엄청 많이 필요하고, 반도체는 재생에너지로 해야 하는데 여기는 재생에너지도 없는데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들었죠. 그리고 나는 그 생각까지는 못 했는데 그 친구가 물 얘기를 했어요. 용수 부족으로 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내가 이제 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지역 사람들하고는 ‘이게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그냥 윤석열이 괜히 헛소리 한 번 한 거니까 시간 지나면 취소될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먹거리가 생긴 변호사들, 법무법인이라고 하는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책위 구성을 도와주겠다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처음에는 ‘죽을 수는 있어도 떠날 수는 없다’ 같은 격렬한 반대 구호도 외치고, 마을별로 대책위가 구성이 된 거죠. 나는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잘 싸운다 싶어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 이 변호사들은 내가 하는 얘기랑 자기네 주장이 다르니까 계속 마을 사람들한테 나하고는 접촉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계속 배척됐어요. 그러다가 LH가 읍사무소에서 설명회를 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취하시킬 거라고 하더니 나중에 보니까 거기 가서 협조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 취하시킨다더니 왜 이러고 있냐’ 하면서 현수막을 떼어내고 마이크 잡고 한 마디 하면서 취소하라고 그랬더니 의외로 쉽게 행사를 취소하더라고요. 그 후에도 환경영향평가 관련해서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 왜 너희만 떠들고 있냐’라고 문제제기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더 배제된 거죠.
처음에는 지역 분들도 용인반도체 국가산단은 불가능하다라는 데에 동조하신 게 아닌가요?
처음에는 동조했죠. 그런데 먹거리가 생긴 법무팀들이 무료 변론해 주겠다고 접근해서, 지속적으로 ‘토지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 선임을 빨리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당한다’라고 부추기니까 그쪽으로 확 가버린 거죠. 나 같은 경우는 감정평가 선임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자고 했는데, 주민들 입장에서는 쉽게 얘기하면 뭐 나처럼 두부나 파는 사람이 하는 말하고 넥타이 맨 변호사 말하고 누구 말이 더 신뢰가 가겠어요.
법무법인이 붙으면서 어느샌가 이 문제가 대다수 주민에게는 보상의 문제로 넘어간 거네요. 그럼, 시기별로 지역의 여론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23년에 용인 국가산단 발표가 나고 법무법인이 바로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이슈 전환은 한동안 없었죠. 2024년 초에 설명회를 한다고 했다가 주민들이 반대해서 미뤄지고, 다시 진행하려고 해도 아까 얘기했듯이 주민들의 물리력에 의해서 취소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계속됐어요. 그러다가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에, 2024년 12월 26일에 국토부가 그냥 승인해 버린 거죠. 그전에는 LH에서 와서 ‘결국은 나라에서 하는 거니까 될 겁니다’라는 식의 얘기밖에 없었던 거죠.
2024년 12월 26일에 승인이 되고 나서 2025년에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작년에 승인이 난 후에 이주단지가 추가가 돼서 사업이 더 커졌어요.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를 추가로 하고, 한편으로는 법무법인과 LH에서 계속 감정평가를 빨리 받게 하려고 주민들에게 ‘당신들이 안 하면 일방적으로 하겠다’고 자꾸 협박 섞인 말을 했지. 그러다 보니까 주민들 사이에 ‘어차피 승인까지 된 마당에 더 높은 금액이라도 보상받는 게 낫지 않겠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다른 주민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서 보상에 대한 협의와 조율을 하며 1년을 보낸거죠.
그리고 나는 처음에는 이 사업이 자동 폐기될 거라는 기대를 하다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2024년도에 승인이 나기 전부터 ‘반도체 지정철회 요구 모임’을 주민들 몇 명하고 만들었고, 2025년 대통령 선거쯤부터 모임 이름을 ‘재검토 요구 모임’으로 바꿔서 활동을 계속 이어왔죠.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마을을 둘러봤는데, 가구도 많고, 공장도 이렇게 많은데 2025년까지 이주단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는 거죠?
그렇죠. 이주단지 계획이 없다가 대책위가 구성되면서 이주단지 얘기가 나왔죠. 대책위도 서로 처지가 다르니까 하나가 아니에요. 마을을 중심으로 창리·남사 대책위, 이동읍 대책위 이렇게 두 개가 있고, 그다음에 외지인들이 땅만 여기 사놓은 사람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 땅 주인 대책위라는 이름으로 대책위를 또 만들었고. 그리고 또 기업인 대책위가 있어요. 그래서 대책위별로 요구사항이 다른 와중에, 기업인 대책위에서 공장 이주단지를 요구한 거죠. 그래서 애초에 있던 주민 이주단지와 별개로 공장 이주단지가 나중에 추가가 됐죠.
용인 사람이 바라보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지방선거 이후,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 등 연일 관련 이슈가 터지고 있습니다. 지금 지역의 실제 여론은 어떤가요?
일단 솔직히 보상받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산단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거예요. ‘이미 나는 돈을 받았으니,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그냥 살면 된다. 농사짓지 말라고 할 때까지 농사지으면 된다’ 그런 거죠.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는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는 중요하지 않고, 보상을 아직 받지 않은 사람들은 ‘혹시 안 들어오면 우리 땅값 올라간 거 도로 떨어지려나’하는 염려들을 하고 있죠. 그다음에 우리가 개발과 발전을 동일시하잖아요. 부지 밖에 사는 일반 지역 사람들은 환경이라든가 이런 고민 없이, 그래서 ‘발전하면 다 우리한테 좋은 거 아니야?’ 하는 막연한 생각들이 있죠. ‘지금 반도체가 우리 먹거리라는데 그걸 왜 반대햐느냐’ 이런 분위기여서 애초에 반대를 못 했던 거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이 지역 사람들은 어차피 반대하면 땅값 더 받으려고 반대한다며 여론 몰이를 당하기도 했던 거고. 정치인, 공무원, 하다못해 이장 이런 사람들은 반도체 산단이 들어오는 것이 용인을 크게 살리는 줄 알고, 그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인 줄만 아는 인식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 설령 반대하는 입장이어도 겉으로 얘기를 안 하고 그러죠. 논리적으로 이건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반대라는 말로 들려서 그 말조차도 어디 가서 얘기를 못 하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러니 우리처럼 재검토 요구나 지정철회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었고, 이상한 집단 취급을 받아왔죠.
선생님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우리가 떠나야 되네. 우리 터전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야 되네’ 우리 안식구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나는 앞서 말한 세 가지 이유로 어차피 사업이 안 될 거니까 걱정 말라고 얘기를 했었죠. 그러다 보상금 책정이 되고 나서는 이 돈 갖고 어디로 갈까하는 고민도 했죠. 우리 마누라는 ‘이 돈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네. 재산 가치가 그것도 우습게 좀 나네(웃음). 이제 들어오든지 말든지 모르겠다. 나는 좋은 데만 잘 찾아서 내가 계속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더 좋은 데로 간다’ 그런 상황이고 나 역시 ‘그 말에 그러긴 하네(웃음)’ 이런 입장이죠. 지금 호남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는, ‘떠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자. 그렇지만 세 가지 조건 중에 전기와 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 우리는 무상 장기 임대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 편히 살자’ 이런 거지.
근데 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데 한쪽으로는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아마도 꽤 긴 기간은 내가 살 수 있을 거다’하는 생각으로 있거든요. 왜냐하면 결국 용도 변경이 될 거라고 보거든. 반도체 공장은 물과 전기를 공급하기 힘들어서 안 들어올 거라고 아직도 믿고 있고, 그렇게 되면 여기가 이제 국유지가 되는 거 아니에요? LH가 토지 매입을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럼, 무상 임대를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 그때 용도 변경을 하더라도 기존에 있는 산업시설을 억지로 이주시킬 게 아니라 얕은 산, 시설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지역에 어울리게 다른 방식으로 용도 변경이 되도록 그 싸움을 또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개인들이야 쉽게 떠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구미뜰에 있는 저런 산, 저런 하천들이 망가지게 둘 수는 없으니까.
나라를 먹여 살릴 반도체?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유
언젠가 이사를 가야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반대운동을 이어간다는 게 쉽지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 여론과 다르게 움직이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매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이 운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나도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태어나서 여기를 떠나보지 못하고 살았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살이, 식모살이하면서 이 터전을 마련한 거예요. 저기 뒷산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묻혀 계신 산소가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저 땅을 사면서 ‘내가 이다음에 여기 묻혀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 땅을 사셨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같은 마을에 사는 동서를 데리고 가서 ‘나 요 자리에 묻어줘’ 하시고는 며칠 있다 돌아가셨거든. 우리 어머니도 내가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이런 것들이 다 송두리째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어릴 때 이 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놀던 이런 추억들이 다 없어지는 거란 말이에요. 내가 지금 1961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대충 예순여섯 살인데, 이 66년이라는 나의 인생이 사라지는 거고. 그리고 이 마을에서 애들을 낳아서 길렀단 말이에요. 우리 딸내미가 서른네 살인데, 그 애들의 인생도 다 없어지는 거란 말이야.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은 사업이 이대로 강행된다는 게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이 작은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냥 없어지는 거지.
백번 양보해서 없어지더라도 나라 전체의 이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면 자기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자기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 사업을 위해서 저 아래 사람들은 자기 터전에 송전탑이 세워져서 그야말로 보상도 몇 푼 받지 못하면서 늘 전자파로 고민하고 살아야 하고, 또 물을 용인에 주기 위해서 국토를 반으로 갈라가면서까지 물을 끌고 와야 하고, 이 작은 땅덩어리를 위해서 전 국토가 희생해야 하는 정책이 과연 제대로 된 정책인가.
그리고 정말 이 지역에 반도체 산업단지를 꼭 해야 한다면 지역에 많이 있는 그 넓은 골프장 한 서너 개 합쳐서 지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평생 터전을 잡고 살아온 사람한테 아무런 피해를 주지도 않고, 도리어 이 사람들한테 일자리 제공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왜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여기를 수십 년 지켜온 사람이 내쫓기고 다 떠나야 하나, 무슨 보상을 받고 떠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죠.
마을을 함께 둘러볼 때 두꺼비집 노래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옛 노래에서도 두꺼비에게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라고 하는데, 여기는 살고 있는 땅과 집을 전부 돈으로 퉁 쳐서 줄 테니 그 돈 들고 나가서 알아서 살라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 정부가 기본사회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산단이 이곳에 굳이 들어와야 한다고 하면 나는 그 요구를 하고 싶어요. 여기 사람들이 기업을 위해서 마을을 떠나게 되면 최소한 이 사람들이 생을 다 할 때까지 기본소득을 보장하라고. 나는 여기서만 벌어먹고 살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여기를 떠나면 어디 가서 10원 한 장 벌 수 없는 무능력자로 바뀌는 주민들이 많단 말이죠. 그럼, 그 사람들한테는 어떤 식으로든 소득 보장을 해줘야지. 너희가 남의 땅에 와서 돈을 벌었으면 그 번 돈 중에 요만큼이라도 이 사람들한테도 같이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마을 분들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떠나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많죠. 화신2리는 마을의 반은 산단 부지고 반은 아니에요. 거기에 딸만 여덟을 낳은 노부부가 있어요. 그 집 같은 경우는 이제 보상받으면 사업부지 대상이 아닌 건넛마을로 가서 산다고 해요. 왜냐하면 딸들은 다 딴 데로 시집을 갔고 부부는 지금 100세가 거의 다 돼 가시는 분들인데 이 나이에 이제 어디로 가서 사시겠냐는 거죠. 평생 농사짓고 들판 같은 데서만 사시던 분이 아파트 생활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딸들이 그 앞마을에 조그만 땅을 하나 사서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는 거예요. 멀리 안 가시게. 그다음에 지금 이 마을에도 아흔여덟이신 어르신이 계시는데 들어올 때 산단이 들어와도 나 죽은 다음에 들어와라 하시는 분도 계시고, 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친구 아버지는 나한테 ‘춘식아, 나 죽기 전에는 안 들어오지?’ 하시더니 작년 말에 돌아가셨어요.
여기 사시는 분들이 옆 마을로 이사를 가시려고 해도 사실 보상금으로 충분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모자라죠. 예를 들어서 집터가 평당 한 400만 원 보상이 나왔다고 쳐요. 그런데 산단 부지 바깥 마을 땅은 평당 600만 원 이렇게 값이 올랐으니까. 땅 팔아서 땅도 지금 못 사는 거예요.
아까 마을 둘러보면서 얘기하실 때 농사짓기 좋은 벌판 땅보다 오히려 산 밑에 숨겨져 있는 땅들이 더 비싸게 보상받는다고 얘기하셨잖아요. 도대체 기준이 뭘까요?
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지금 토지 보상이 끝난 곳들은 맹지거나, 농사짓기 어렵거나 한 곳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얼씨구나 하고 얼른얼른 돈을 받죠. 농사도 짓기 어려운 땅이니까. 그런데 산 아래 벌판은 절대농지라고 그러잖아요. 지금은 농업진흥지역이라고 바뀌었고. 여기서는 농사 외에는 다른 걸 아예 못 하게 했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 상당히 피해를 본 거예요. 그러면 보상할 때는 그동안 이 사람들이 정책적으로 제약을 받았었으니까, 보상금을 오히려 더 줘야 맞는 거죠. 그리고 내가 집을 짓고 사는데 전이나 답을 대지로 전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또 대지 값을 못 받아요.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결국 개발해서 사용할 사람 입장에서는 여기 땅을 다 밀어버리고 평탄 작업을 해버릴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다 똑같은 땅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땅은 농업진흥지역이라고 싸게 보상하고, 어디는 맹지여도 절대농지 아니라고 비싸게 주고, 집이 있더라도 지목이 논밭이면 논밭 가격으로 보상을 하고 이게 말이 되는 거에요? 주민들의 삶에, 가치에 맞춰 보상해야 정상인데, 단순하게 가격 보상을 하는 바람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온통 AI, 반도체, 주식 이야기뿐입니다. 그런 뉴스 뒤편에서,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와 송전탑 싸움을 외롭게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계속 추진된다고 할 때 ‘왜 용인만을 위해서 전 국토가 몸살을 앓아야 하느냐?’, ‘왜 전 국민이 용인 국가산단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좀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경기도청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갔는데, 당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영상으로 토론회 축하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영상에서 도지사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경기도민의 행복이고 용인 시민의 행복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발표 하려고 준비해 간 원고를 엎어버리고 뭐라 그랬냐면, ‘왜 그게 경기도민의 행복이고, 용인 시민의 행복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불행한 데 그러면 나는 용인 시민이 아니냐. 나는 경기도민이 아니냐. 그리고 왜 경기도민의 행복을 위해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이 송전탑으로 고충을 겪어야 하느냐. 왜 강원도 사람들은 물 부족으로 고생하면서도, 경기도민의 행복을 위해서 물을 용인으로 보내야 하느냐. 큰 정치를 할 사람으로서 아무리 경기도지사라 하더라도 전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지, 어떻게 내 동네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합니까?’하고 문제를 제기했거든요.
지금도 나는 사람들한테 여기에 반도체 산단이 들어와서 우리가 얼마나 부자가 되는지는 몰라도, 왜 전라도·충청도·경상도 사람들이 송전탑 때문에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지 역지사지로 생각을 좀 해보자고 얘기해요. 언론에서도 그런 입장에서 취재해 줬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무리한 정책을 세우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진짜 반도체 산업이 꼭 필요하고 이것만이 우리나라 먹거리로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전기와 물을 확보하기 쉽고 일반 국민들이 고충을 겪지 않을 만한 지역으로 선정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겠어요? 그랬으면 우리 시민들이 반대운동을 하고 있겠냐고요.
국회에 가서도 내가 늘 얘기를 하는 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재검토되거나 취소되면 지역 주민들이 여기 서울까지 올라와서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계속 추진할지 말지부터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그럼, 송전탑 반대하시는 분들의 싸움은 끝나는 거 아니냐는 거죠. 그리고 지역에서 올라오신 분들에게는 ‘국가산단 재검토 싸움에서 성공하면 여러분도 같이 성공하는 거니까, 여러분의 싸움이 나한테 힘이 되듯이 내 싸움이 당신들한테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 정도의 얘기밖에 할 이야기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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