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의기양양한 인간들의 시대

2026-05-14

장정우 사무국장이 언론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의기양양한 인간이 판치는 계절이다. 못 믿을 직업 1위로 정치인이 뽑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의 확신에 찬 태도, 즉 어떤 주제든 경청하기보다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이 앞서는 것이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신이 정치인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확신은 바로 AI와 반도체에 관한 신화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인, 기업인, 정부 관료, 하다못해 일반 시민까지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AI와 반도체의 굉장한 성공의 대가로 내주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그랬듯, AI로 점철된 미래로 계속 뛰어가도 괜찮을 것일까?


얼마 전 신문을 보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지면 앞뒤로 반도체 시장 호황에 따른 삼성과 노조 간의 갈등을 다룬 기사와 무분별한 송전탑 공사로 산사태 등의 재난이 예상된다는 기사, 그리고 고령층을 위한 AI 교육에 관한 기사가 실린 것이다. 해당 기사들은 연속적으로 배치돼 있었지만 서로 연결돼 있지는 않았다. 내게는 그 사실이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도체,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송전선로 건설사업 그리고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AI. 실제로는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사안이지만 현실에서는 별개의 일들처럼 여겨진다.


한편, 앞서 언급한 기사에는 성과를 만드는 과정에 함께한 협력·하청업체, 비정규직 등을 고려하지 않는 노조를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반도체 산업의 성과가 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협력업체, 주주들의 투자만으로 이뤄진 것인가. 어마어마한 전기가 필요한 반도체 산단을 가동하기 위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한적한 농어촌 마을에 발전소가 지어지고, 논밭 위로는 철탑과 태양광 패널이 꽂히고, 집 위로는 송전선이 드리워지며,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위해 멀쩡했던 산이 송두리째 깎여나간다. 삼성과 SK가 거둔 눈부신 성과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뿐 아니라, 전국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낸 결과다. 수많은 광고와 언론 기사, 정치인들의 확신에 찬 말들, 주식투자를 하는 이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AI와 반도체에 대한 찬양이 늘 불편한 것은 이런 사실들이 감쪽같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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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과정도 없이 결과물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물이 뚝딱 만들어진다는 게 너무 허탈”하다고 말하는 웹툰 작가의 말은 이제 제법 익숙하다. 그러나 이런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개발자조차 “인류의 기술이 왜 이렇게까지 발전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인터뷰한 것을 보면, AI 기술에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누구나 지금의 급격한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우울 또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책(⟪AI블루⟫)의 후반부에는 2023년 열린 ‘사람과 디지털 포럼’의 한 일화가 소개된다. 한 연사가 지난 10년간 자율주행 기술에 정부가 투자를 많이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돈을 대중교통에 투자했다면 자율주행 기업들이 말하는 미래, 즉 자동차에 편하게 앉아 책도 읽고, 잠도 자면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미래가 실현됐을 것이라 지적했다는 이야기이다. 반도체 호황 속에서 부풀어 오른 AI 강국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오만가지 것들에 ‘스마트’, ‘AI’를 붙여가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의기양양한 이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작금의 AI 광풍은 우리 사회를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생각도, 합의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확신과 추진력이 아닌 ‘망설이는 마음’이다. 이 길이 맞는지, 누가 피해를 보지는 않을지 주저하는 마음, 변화로 인해 삶터나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들과 뒤처지지 않으려 무리해서 안간힘 쓰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사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의기양양한 인간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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