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익는 대화'를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정읍시 옹동면, 평범한 작은 마을처럼 보이지만 이 마을에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단일 면 단위 중 가장 많은 석산 사업장이 있고, 전국 유일의 면 단위 환경단체인 ‘옹동면환경연대’가 있다. 석산과 환경단체, 인구 1,539명의 작은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농農익는 대화에는 시위라고는 몰랐던 평범한 도시의 직장인에서 석산 싸움 전문가가 된 엄성자 님과의 대화를 통해 옹동면의 길고 긴 투쟁을 담았다.
석산의 고장에서 시작된 전국 유일의 면 단위 환경단체

옹동면의 석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왔지만, 그전에 옹동면의 자랑부터 들어보면 좋겠어요(웃음). 사람들이 옹동면에는 석산만 있다고 오해하면 안 되잖아요. 오면서 잠깐 얘기해주셨는데 쌍화차에 들어가는 생지황을 옹동면에서 생산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생지황은 보통 공장에서 9번 찌거든요. 생지황을 찌면 숙지황이 돼요. 생지황을 찌기 시작하면 고구마 굽는 냄새가 쫙 퍼져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옹동 와서 누가 이렇게 계속 고구마를 구워 먹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게 생지황 찌는 냄새였더라고요.
지금도 많이 하나요?
옹동면사무소 옆에 공장이 있어요. 이번에 지원을 받아서 더 크게 확장했어요. 이제 앞으로 체험 공간도 만든다고 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이제 이쪽으로 올라가면 석산 가기 전에 중간 마을. 거기가 예전에는 닭베미라고 불렀대요. 거기가 지황 주산지였대요. 그런데 생지황을 키우고 나면 몇 년 동안은 그 땅을 못 써요. 인삼처럼 토양의 양분을 다 뽑아가나 봐요. 그래서 다시 같은 땅에 심으면 뿌리가 썩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오늘 인터뷰하는 장소도 와보고 깜짝 놀랐는데 여기가 옹동초 용호분교 자리죠? 카페로 만들어서 4월에 문을 열었다고 하셨는데 너무 좋네요. 이 카페가 생기면서 엄성자 실장님이 바라는 옹동면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환경연대에서 계획 중이신 일과 연계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네요.
저희가 올해 환경연대에서 세웠던 계획 중의 하나가 ‘옹동 보물지도 만들기’에요. 지금 저희가 갖고 있는 지도는 옹동 환경오염 지도에요. 석산도 그렇고, 폐기물 처리장도 있어서 악취가 심한 곳이 있거든요. 그런 시설들을 표시하는 작업을 해왔었죠. 저희가 계속 재판에서 승소하면서 많은 환경오염 시설들을 막아내고 있는데, 재판하다 보니 ‘옹동면이 이렇게 살 만한 곳인데 너희들이 자꾸 들어오면 안 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겠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이장님들이나 단체에서 환경연대가 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일일이 32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분들을 만나 설명하는 과정들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옹동면 곳곳에 숨겨진 보물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되게 많더라고요. 이런 보물들을 연결해서 옹동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옹동 주민들이 다 같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사실은 평범한 삶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중요한 건데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평범한 삶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기 전까지는 옹동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활동도 너무 힘들고, 시간 여유도 없고,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어차피 업자들은 계속 들어올 거고 반대운동만 하다 끝날 것 같은 거예요. 힘들지만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서 마을 자체에서 근본적으로 환경오염 시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보고 있어요.


엄성자 님이 기획실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옹동면환경연대는 언제,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나요?
옹동은 뱀 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모양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생활권이 형성될 수 없는 지역이거든요. 그래서 생활권이 3권역으로 나뉘어있어요. 그중에서 한 덩어리가 용호리 쪽의 상두산 지역이에요. 이 상두산에 석산이 생기면서 운반을 용호리 쪽으로 했는데 용호리 쪽 7개 마을 이외에 나머지 마을들은 석산에 대한 피해가 별로 없었어요. 가끔 산을 폭파하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그런 영향들만 있었던 거죠. 그래서 석산에 대한 싸움은 있었지만, 면 전체 싸움으로 커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면 소재지로 골재 선별 채취장이 들어온다고 하면서 문제가 커졌죠.
그래서 2021년도에 석산 반대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폐기물 처리 악취 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어요. 새로 추진되는 골재 선별 채취장은 운반 차량이 무조건 면 소재지 중심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길옆으로 축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예요. 심각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축산 농가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어요. 축산 농가 중심으로 회의가 열리고, 마을 단체장들 회의가 이어졌죠. 그러다가 옹동에 환경 문제가 많으니까 석산, 악취 등 환경에 관련된 걸 모아서 대응해 보자는 제안이 나와 2022년 환경연대가 만들어지게 된 거죠.
환경연대 구성은 운영진, 정회원, 준회원이 있어요. 거기에 추가로 공식적인 기구는 아니지만 삼촌 부대라고 있어요. 연세가 드신 분들인데 제가 그냥 삼촌이라고 다 부르거든요. 보통 육칠십 대 삼촌들이에요. 더 많으신 분도 있고요. 그분들이 큰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제 머릿속에 각자 전문 분야가 나뉘어 있어서 상황에 따라 도움을 청하는 분도 달라요. 정보를 요청할 때 전화하는 삼촌, 기동력이 있어서 지금 바로 현장으로 움직여줄 수 있는 삼촌 이런 식으로요(웃음).
엄성자 실장님은 원래부터 옹동에 계셨던 건가요?
저는 2021년도에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고등학교까지 옹동에서 살다가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 부천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곳에서 30년 살다가 부모님이 이제 시골에 땅이 있으니, 노후를 고향에서 살고 싶다 하셨는데 마침 제가 2021년도에 코로나 때문에 직장 일을 쉬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자식 대표로 고향에 내려와서 부모님 집 짓는 일을 거들게 된 거예요(웃음). 그렇게 집을 거의 다 지을 무렵에 동네에서 석산 이야기가 잠깐 있긴 했는데 그때는 정신이 없으니까 ‘엄마, 아빠 여기서 행복하게 다시 신혼부부 생활 하세요’하고 떠났죠.
그러다가 전화가 왔어요. 새로 지은 부모님 집하고 300미터 떨어진 앞산에 석산이 들어온다고요. 저희 부모님 집 거실에서 딱 정면으로 보이는 산이었어요. 당시에는 석산이 뭔지 몰랐죠. 그래서 정읍시청, 환경청, 옹동면사무소, 마을 이장님, 전화할 수 있는 데는 다 해봤어요. 제가 또 궁금하면 못 참거든요. 알아갈수록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려왔죠. 내려와서 상황을 자세히 듣게 됐죠. 그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싸움인지 몰랐어요. 알았으면 안 했을 텐데(웃음).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집-직장만 오가던 사람이었어요.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대학 때도 시위 현장 근처에도 안 가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렇지만 부모님 집 앞에 석산이 들어오면 못 살 것 같더라고요. 남편이 애들도 다 컸고 하니까 내려가서 한 1년 도와드리라고 말하더라고요.
길어야 1년을 생각하고, 일단 내려와서 동네 분들을 만나고 다녔죠. 우리 동네는 가구 수가 여섯 집밖에 안 돼요. 그 여섯 집이 어떻게 석산을 막아내겠어요. 제가 아랫동네 일을 도와줄 테니 아랫동네가 다 같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남들은 저한테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냥 몰라서 뛰어든 거예요. 몰랐으니까 결혼했다는 말이랑 똑같은 거죠. 그렇게 시작했는데, 문제는 소송이더라고요. 마을 분들이 어차피 돈 많은 사람들―업자―이 이길 건데 해도 되겠냐고 이야기했어요. 저도 세상 물정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겠죠. 세상 물정을 몰라서 하면 된다고 겁 없이 말했죠. 그런데 보기 좋게 1심에서 패소했어요.
길고 긴 재판의 연속
그 소송이 2022년에 옹동면환경연대가 만들어지고 나서 한 첫 소송이었죠?
네. 첫 소송이었어요. 그 소송은 저희가 처음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중간에 뛰어든 거죠. 제가 그 소송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환경영향평가였어요.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면 업체는 환경영향평가에서 문제없다고 나와 있으니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활동하고 있던 홍정용 선생님이 하승수 변호사님을 소개해 주셔서 찾아뵀었죠. 그때 저희에게 환경오염도 조사를 요청하라고 조언해 주셔서 정읍시에 쫓아갔죠.
그런데 정읍시에 환경오염도 조사를 해달라고 했더니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설득했어요. 주민들도 없는 돈 끌어모아서 변호사 비용 대고 있으니까 정읍시도 협조해달라고 계속 요청했죠. 다행이었던 건 그때 부시장님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부시장님이 환경 문제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분이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죠. 하 변호사님도 계속 조언해 주시고, 그때 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주민들이 현장 검증하고 하면서 2심에서 저희가 승소를 할 수 있었어요.
그 소송이 몇 년도였죠?
2022년 8월에 시작해서 2023년 3월에 승소했어요. 석산과 관련한 첫 번째 승리였죠. 저희가 폐기물 업체와도 소송을 하고 있었어요. 폐기물 관련 행정 소송은 우리가 다 이겼어요. 근데 석산은 처음부터 패배를 맛보고 시작했죠(웃음). 그때 재판 상대가 선봉이라는 업체인데 그 악연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재판 전후에 골재 채취를 하던 산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업체가 이름과 대표를 바꾸더라고요. 그러고는 소송이 끝난 후에 재산이 없다고 소송 비용을 못 준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대법원에서까지 승소했고, 돈은 못 받았지만 일단락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이상하게 산에 덤프트럭이 계속 들락날락한다고 제보가 들어온 거예요. 소송에서 패소한 이상 해당 사업장에서는 채굴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추가로 확인해 봐달라고 했더니 주변에 계신 주민 두 분이 상황을 저한테 제보해 주셨어요. 참고로 환경연대가 소송에서 이기고 나니 옹동의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뭐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사람들이 저희한테 제보를 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삼촌 부대한테 전화해서 먼저 현장을 살펴달라고 했어요. 교대로 덤프트럭을 미행했는데 산에서 자갈을 계속 퍼내고 있는 거에요. 주먹만 한 돌멩이를. 그래서 저희가 정읍시에 민원을 넣었죠. 알아보니 어떻게 된 거냐면 사업 신청을 할 당시에는, 신청만 하면 다 허가가 났기 때문에 업체가 당연히 사업 허가가 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개발하기 전에 미리 흙을 다 팔아먹고 어차피 골재 선별장 하려면 시멘트를 다 깔아야 하니 미리 거기다 자갈을 갖다가 다 부어놔 버린 거예요. 그 후 재판에 져서 사업을 이제 못 하게 되니까 새로운 땅 주인이 난리가 난 거죠. 자갈밭에 어떻게 농사를 짓겠어요. 그래서 그거를 다 불법으로 파내고 있던 거죠.


그럼 지금까지 소송은 몇 건이나 하신 거예요?
저희가 재판으로 하면 총 7번의 재판을 했어요. 세 개 업체와 7번의 재판을 진행한 거죠.
폐기물은 빼고요?
네. 폐기물까지 하면 더 많죠. 거의 10번은 되는 것 같아요. 최근까지 진행한 재판이 옥산과의 재판이었는데 마무리가 되었죠. 옥산과의 재판에서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다뤘던 게, 피해 주민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옥산을 포함한 5개 석산 업체가 1997년도부터 상두산에서 석산 개발을 시작했어요. 27년간 석산이 운영되었던 건데 2016년도에 인근 7개 마을하고 해당 업체들하고 협약서를 체결했어요. 피해가 계속되고 주민들은 계속 민원을 넣으니까, 정읍시에서 중재를 해서 협약을 체결한 거죠. 그리고 주민들은 협약대로 옥산이 2025년도까지만 사업을 하고 더 이상의 석산 개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거예요.
그런데 옥산이 사업 종료가 임박하니 사업 기간을 7년 더 연장해서 2032년까지 확장하겠다고 신청한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주민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약도 맺었으니 당연히 7개 마을 주민을 찾아가서 그분들을 대상으로 주민 설명회를 여는 게 맞잖아요. 너무 상식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어느 날 옹동면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를 했다는 거예요. 요즘은 환경영향평가서 보면 사진 자료도 다 올라오거든요. 이후에 저희가 사진을 보면서 참석한 사람을 확인해 봤어요. 7개 마을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없는 거예요. 관계없는 마을 주민 서너 명하고 업체 쪽 사람들 데려다가 그냥 설명회를 한 거예요.
그런 와중에 저희가 다른 석산 문제로 1인 시위를 107일간 했는데, 1인 시위 중인 저한테 어떤 할머님이 오셔서 상두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상두산 석산 건은 협약도 체결했고, 7개 마을 이장님이 참여하고 계시니 환경연대에서 관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그게 아니라고, 협약을 맺은 마을 주민들은 다 반대한다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마을로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마을 분들이 다들 반대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지만, 상두산 대응도 함께 해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맺은 협약이 있으니까 7개 마을 이장님을 설득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반대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며 석산에서 제일 가까운 3개 마을 이장님을 계속 설득했어요. 만약 세 마을이 저희와 함께 해준다면 저희도 끝까지 일을 진행해 보겠다고요. 그때가 아마 2022년도 겨울 그쯤일 거예요.
저희가 마을 분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옥산이 석산 개발을 2032년도까지 확장한다는 이야기를 언제 들으셨는지 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분들한테 다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대부분 모르시는 거예요. 이건 정말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옥산과의 재판 과정에도 그 문제를 주요하게 다뤘거든요.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되게 돼 있잖아요. 협의회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이 상두산 주변 마을은 계속 피해를 보는 지역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라고 하면서 마을에 직접 현수막도 걸고 마을 방송도 하고 마을 주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제대로 설명하라는 내용이 있어요. 업체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주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던 거예요. 저희가 그 지점을 문제 삼았는데 업체는 상두산 지역은 협약서대로 관리가 잘 되고, 주민들도 불만이 없는데 이웃 마을 주민들이 걸고넘어진다는 주장을 계속했죠.
그러다 산지관리위원회에서 옥산 사업장을 현장점검 하러 왔어요. 저는 정읍시에 항상 고마워하는 게 현장점검에 대해서 저희가 물어보면 참여할 기회를 주고 일정을 알려주었어요. 그때도 점검이 언제라고 알려주며 주민 대표로 저를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참여해서 이곳 주민들은 2025년도에 석산 개발이 끝나는 줄 알았고, 2032년도까지 연장하는 줄 몰랐다, 알았으면 반대했을 거라고 이야기했죠.
석산 싸움이라는게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참 힘든 것 같아요. 처음 시작부터 투명하면 좋잖아요. 어쨌든 석산 개발은 지역 주민들한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요. 석산은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로 석산이 위치한 자리가 마을과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에 따라서 소음, 진동, 분진의 문제가 발생하고요. 둘째로 골재를 채취하면 덤프트럭에 싣고 나가야 되잖아요. 운반과정의 문제가 있어요. 덤프트럭이 지나가면서 주는 피해가 엄청나거든요.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한테 피해 여부를 정확하게 알려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사실 저희 환경연대가 특별한 일을 해서 이긴 게 아니라 감춰뒀던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거예요.
7전 6승의 비결–생생한 주민들의 증언
그렇죠. 저도 옹동 이야기 알게 되고 예전 자료들을 찾아보니까 정읍시가 업체들하고 소송을 몇 번 했더라고요. 근데 정읍시가 다 진 것 같았어요. 그게 아마 말씀하신 것처럼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법원에 잘 전달이 안 돼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저희가 재판할 때도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첫째는 정읍시가 가지고 있는 석산에 관련된 정보, 그동안 운영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이런 정보들을 얻어내는 게 가장 중요했고 두 번째는 현장이죠. 저희가 현장을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소송하러 법정에 다녀올 때마다 사안별로 현장하고 연결된 게 뭔지를 먼저 생각했어요. 현장에 가면 그 지역에서 피해를 겪고 있는 분들만이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저희가 아무리 머리로 안다고 해도 현장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 가서 재판 중에 생긴 의문들을 주민들과 꼭 이야기를 나눠봐요.
예를 들면, 우리는 덤프트럭이 다닌다고 하면 돌을 싣고 나갈 때만 먼지가 나고 피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주민들이 어느 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 들어봤어?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들어보니 빈 차가 가면 덜컹덜컹하는 소음이 더 크다는 거예요. 그리고 덤프트럭이 과속을 자주 하니 주민들이 방지턱을 설치해달라고 말해서 방지턱을 많이 설치했는데 빈 차는 가벼우니까 더 빨리 달릴 수 있잖아요. 방지턱에서도 더 덜컹덜컹하는 거예요. 소리가 더 크게 나서 시끄러운 거죠. 왕복으로 다니니까 더 힘든 거예요. 또 덤프트럭에는 덮개가 있잖아요. 그런데 덮개에 틈이 있어서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돌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요. 그 돌들이 쌓이면 엄청 많은 거예요. 돌이 떨어져 있는데 차가 계속 지나다니니까 먼지도 많이 나죠. 저희가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덤프트럭이 지나가면서 돌을 떨어뜨리고 가는 사진을 촬영해서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죠.
그리고 덤프트럭 교통사고가 잦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업체에서 경찰서에 기록된 신고 건이 1, 2건밖에 없다고 해당 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한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통사고가 났어도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고 업체가 합의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삼촌 부대한테 전화해서 덤프트럭 교통사고에 대해 물어보니 여러 사례를 이야기해 주는데 증거가 없잖아요. 그러다가 재판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인데, 한 삼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지금 덤프트럭하고 차하고 부딪혀서 사고 났으니까 빨리 와보라고. 해당 제보를 받고 사무국장님이 뛰어가서 그 현장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이 외에도 주민들이 그동안 사고가 있어도 신고 안 된 건이 엄청 많다고 말을 해주셔서 도움이 되었죠.
그게 아니더라도 마을 주민이 증언해 주신 게 참 많아요. 용호리는 도로를 가운데 두고 마을이 양쪽으로 이분되어 있는데, 그 마을 어르신에게 서명받으러 가니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건넛마을에 친구가 사는데 그 집에 놀러 가지를 못한다고요.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더니, 덤프트럭이 하루에 많으면 천 대씩도 지나다니는데, 노인들이 발걸음도 느려 길을 건너는 게 위험하니 그냥 포기한다는 거예요. 환경연대가 싸우는 방식이 이런 생생한 증언을 다 기록해서 자료로 제출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주민들 증언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옥산과의 재판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2심에서 승소를 한 게 몇 월이죠?
올해 5월이에요. 사실 옥산과의 재판이 모든 재판 중에서 제일 힘든 재판이었어요. 특히 2심이 힘들었던 이유가 1심 승소 후에 업체 쪽에서 저희를 회유하려고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협상에 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만 신경 써도 되니 속 편하게요. 그런데 그러기 시작하면 끝이 없잖아요. 만약 석산 개발에 끝이 있었다면 아마 협상이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옹동 같은 경우는 석산이 남아있고 앞으로 또 어떤 업체가 들어올지 모르잖아요. 온갖 석산 업자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환경연대에서는 협상하지 말고 그냥 재판을 진행하자고 했죠.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실 잠을 못 잤어요. 저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겠어요. 재판이라는 게 마지막 1%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마지막 1%는 사실 판사님 성향인 거죠.
웃긴 이야기인데 재판에서 이기고 그러면 원래 잔치도 하고 좀 하루 쉬기도 하잖아요. 저희는 그걸 못했어요. 왜냐하면 항상 다음 재판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재판에 이겼는데 하필이면 제일 바쁜 농사철인 거예요. 고민하다가 그래도 잔치하자고 해서 바쁜 철인데도 50명 정도가 모였어요. 저는 이 석산 운동을 하면서 항상 생각해요. 누가 해서가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서 승리가 이어지고 있는 거라고요. 누구 하나라도 빠졌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라서 관련된 모든 분이 다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석산 싸움 중에 돌아가신 분들의 자리도 만들었죠. 맨날 밥 사주시면서 응원해 주시고, 석산 싸움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내주신 서남저널 대표님, 환경연대에 앞서 석산 문제에 애써주신 지금실 마을 이장님, 항상 주민분들을 봉고차에 태워주시던 삼촌. 초대 명단을 쓰다가 돌아가신 이분들도 같이 참여해 해주셨으면 해서 저희가 의자에 그분들 이름을 적고, 작지만 꽃으로 꾸며서 행사 때 그분들을 위해서 묵념했어요. 그 모든 분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여기까지 석산 싸움을 끌고 올 수 있었어요.
농촌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말이 무식한 말!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옹동면환경연대 활동을 하시면서 겪는 어려움과 바람을 자치와 연결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결정권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정보라도 제대로 공유되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자치의 기본은 정보의 투명성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 되었든 아는 게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요. 알아야 따지기도 하고, 해결해달라고 요청도 하죠. 그리고 면사무소도, 시청도, 환경청도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문제의 답을 찾아주지는 않더라고요. 우리가 답을 가지고 가서 처리해달라고 할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문제가 되는 사업장의 정보, 사업 허가에 관한 법적 요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정보가 필요한데 이 정보를 찾고 모으는 일이 일반 주민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 행정에서 각 읍면에서 추진되는 사업 중에 주민들에게 영향이나 피해를 줄 요소가 있는지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어요. 현재 정읍시에는 신규로 사업 신청 건에 대해 해당 면의 의견을 받아서 제출하는 제도가 있으나 신청 사업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문제점까지 파악해서 주민들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기에, 별도로 관심을 갖는 주민이 없는 동네는 허가가 나고 나서야 사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정보만 공유하는 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농촌 사람들은 무식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해요. 도시 사람에게 갑자기 토마토 키워봐라, 농약 뿌려보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요? 농촌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주민들에게 생소한 사업에 대해 의견을 물어오면, 누가 바로 의견을 말하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주민설명회가 의미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업체에서 와서 1, 2시간 전문용어 일색인 설명을 듣고 주민들이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예측할 수 있을까요? 결국 주민들 눈높이에 맞는 정보가 제대로 주민에게 주어져야 주민들이 석산이든 어떤 문제에든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달자가 필요할 수 있죠. 그게 환경연대가 하는 역할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요. 행정과 사업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주민에게, 주민의 언어로 전달해 주는 전달자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농촌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인구소멸로 인해 마을 중심의 문제해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과거에 비해 면과 교류가 적어진 마을은 적극적인 이장님을 두지 않은 이상 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연대의 경우 옹동의 한 마을 일이 아닌 옹동면 전체의 일임을 알리기 위해 각 마을에 대자보 붙이기, 전단지 만들어 돌리기, 트럭 방송하기, 현수막, 소식지 만들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많은 분이 옹동면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런 것처럼 마을 단위로 사고하던 습관을 면 단위로 사고하는 전환을 위해서는 보조가 필요하죠. 가령 이장단 회의가 열릴 때면 안건이 미리 공유되어 관심 있는 주민들은 이장단 회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식으로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을에서 면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분들을 위해 면마다 승합차나 작은 버스를 마련해 마을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동력을 확보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농촌 자치의 기본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농촌의 현실은 주어진 것에 자의로, 타의로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옹동면 주민 중에도 환경연대와 함께하면 정읍시의 사업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하며 꺼리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 스스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천해 볼 기회를 만들어주는 중간 역할을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석산 싸움에서 행정이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요, 석산을 비롯한 개발사업에서 행정이 저울의 추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업자와 주민 사이에 편의적인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보, 경험 등에서 앞선 사업체와 주민들 사이에 기울어진 저울의 추요. 무조건적인 중립, 중도가 아니라 기울어진 상황에서 사업체와 주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정보를 듣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행정이 역할을 할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제도를 새로 들여온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요. 지방자치, 읍면자치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죠,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이끌어갈 사람 아닐까요? 시장의 의지, 시의회의 의지, 면장의 의지, 이장의 의지, 주민의 의지. 모든 다양한 의지가 한 곳을 향했기에 옹동면환경연대가 그동안 소송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동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죠. 다만, 마을 주민과 옹동면환경연대가 잘 버티고, 전북환경운동연합, 정읍의 여러 시민단체, 공익법률센터 농본 같은 건강한 단체들이 함께 해준다면 험난한 싸움 끝에 기다리는 건 우리 스스로가 내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는 성취감과 그사이 체득한 자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_엄성자, 김형수, 문수영, 장정우, 하승수
2025년 7월 16일
'농農익는 대화'를 통해 농본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정읍시 옹동면, 평범한 작은 마을처럼 보이지만 이 마을에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단일 면 단위 중 가장 많은 석산 사업장이 있고, 전국 유일의 면 단위 환경단체인 ‘옹동면환경연대’가 있다. 석산과 환경단체, 인구 1,539명의 작은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농農익는 대화에는 시위라고는 몰랐던 평범한 도시의 직장인에서 석산 싸움 전문가가 된 엄성자 님과의 대화를 통해 옹동면의 길고 긴 투쟁을 담았다.
석산의 고장에서 시작된 전국 유일의 면 단위 환경단체
옹동면의 석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왔지만, 그전에 옹동면의 자랑부터 들어보면 좋겠어요(웃음). 사람들이 옹동면에는 석산만 있다고 오해하면 안 되잖아요. 오면서 잠깐 얘기해주셨는데 쌍화차에 들어가는 생지황을 옹동면에서 생산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생지황은 보통 공장에서 9번 찌거든요. 생지황을 찌면 숙지황이 돼요. 생지황을 찌기 시작하면 고구마 굽는 냄새가 쫙 퍼져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옹동 와서 누가 이렇게 계속 고구마를 구워 먹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게 생지황 찌는 냄새였더라고요.
지금도 많이 하나요?
옹동면사무소 옆에 공장이 있어요. 이번에 지원을 받아서 더 크게 확장했어요. 이제 앞으로 체험 공간도 만든다고 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이제 이쪽으로 올라가면 석산 가기 전에 중간 마을. 거기가 예전에는 닭베미라고 불렀대요. 거기가 지황 주산지였대요. 그런데 생지황을 키우고 나면 몇 년 동안은 그 땅을 못 써요. 인삼처럼 토양의 양분을 다 뽑아가나 봐요. 그래서 다시 같은 땅에 심으면 뿌리가 썩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오늘 인터뷰하는 장소도 와보고 깜짝 놀랐는데 여기가 옹동초 용호분교 자리죠? 카페로 만들어서 4월에 문을 열었다고 하셨는데 너무 좋네요. 이 카페가 생기면서 엄성자 실장님이 바라는 옹동면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환경연대에서 계획 중이신 일과 연계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네요.
저희가 올해 환경연대에서 세웠던 계획 중의 하나가 ‘옹동 보물지도 만들기’에요. 지금 저희가 갖고 있는 지도는 옹동 환경오염 지도에요. 석산도 그렇고, 폐기물 처리장도 있어서 악취가 심한 곳이 있거든요. 그런 시설들을 표시하는 작업을 해왔었죠. 저희가 계속 재판에서 승소하면서 많은 환경오염 시설들을 막아내고 있는데, 재판하다 보니 ‘옹동면이 이렇게 살 만한 곳인데 너희들이 자꾸 들어오면 안 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겠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이장님들이나 단체에서 환경연대가 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일일이 32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분들을 만나 설명하는 과정들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옹동면 곳곳에 숨겨진 보물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되게 많더라고요. 이런 보물들을 연결해서 옹동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옹동 주민들이 다 같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사실은 평범한 삶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중요한 건데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평범한 삶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기 전까지는 옹동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활동도 너무 힘들고, 시간 여유도 없고,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어차피 업자들은 계속 들어올 거고 반대운동만 하다 끝날 것 같은 거예요. 힘들지만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서 마을 자체에서 근본적으로 환경오염 시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보고 있어요.
엄성자 님이 기획실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옹동면환경연대는 언제,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나요?
옹동은 뱀 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모양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생활권이 형성될 수 없는 지역이거든요. 그래서 생활권이 3권역으로 나뉘어있어요. 그중에서 한 덩어리가 용호리 쪽의 상두산 지역이에요. 이 상두산에 석산이 생기면서 운반을 용호리 쪽으로 했는데 용호리 쪽 7개 마을 이외에 나머지 마을들은 석산에 대한 피해가 별로 없었어요. 가끔 산을 폭파하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그런 영향들만 있었던 거죠. 그래서 석산에 대한 싸움은 있었지만, 면 전체 싸움으로 커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면 소재지로 골재 선별 채취장이 들어온다고 하면서 문제가 커졌죠.
그래서 2021년도에 석산 반대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폐기물 처리 악취 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어요. 새로 추진되는 골재 선별 채취장은 운반 차량이 무조건 면 소재지 중심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길옆으로 축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예요. 심각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축산 농가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어요. 축산 농가 중심으로 회의가 열리고, 마을 단체장들 회의가 이어졌죠. 그러다가 옹동에 환경 문제가 많으니까 석산, 악취 등 환경에 관련된 걸 모아서 대응해 보자는 제안이 나와 2022년 환경연대가 만들어지게 된 거죠.
환경연대 구성은 운영진, 정회원, 준회원이 있어요. 거기에 추가로 공식적인 기구는 아니지만 삼촌 부대라고 있어요. 연세가 드신 분들인데 제가 그냥 삼촌이라고 다 부르거든요. 보통 육칠십 대 삼촌들이에요. 더 많으신 분도 있고요. 그분들이 큰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제 머릿속에 각자 전문 분야가 나뉘어 있어서 상황에 따라 도움을 청하는 분도 달라요. 정보를 요청할 때 전화하는 삼촌, 기동력이 있어서 지금 바로 현장으로 움직여줄 수 있는 삼촌 이런 식으로요(웃음).
엄성자 실장님은 원래부터 옹동에 계셨던 건가요?
저는 2021년도에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고등학교까지 옹동에서 살다가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 부천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곳에서 30년 살다가 부모님이 이제 시골에 땅이 있으니, 노후를 고향에서 살고 싶다 하셨는데 마침 제가 2021년도에 코로나 때문에 직장 일을 쉬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자식 대표로 고향에 내려와서 부모님 집 짓는 일을 거들게 된 거예요(웃음). 그렇게 집을 거의 다 지을 무렵에 동네에서 석산 이야기가 잠깐 있긴 했는데 그때는 정신이 없으니까 ‘엄마, 아빠 여기서 행복하게 다시 신혼부부 생활 하세요’하고 떠났죠.
그러다가 전화가 왔어요. 새로 지은 부모님 집하고 300미터 떨어진 앞산에 석산이 들어온다고요. 저희 부모님 집 거실에서 딱 정면으로 보이는 산이었어요. 당시에는 석산이 뭔지 몰랐죠. 그래서 정읍시청, 환경청, 옹동면사무소, 마을 이장님, 전화할 수 있는 데는 다 해봤어요. 제가 또 궁금하면 못 참거든요. 알아갈수록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려왔죠. 내려와서 상황을 자세히 듣게 됐죠. 그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싸움인지 몰랐어요. 알았으면 안 했을 텐데(웃음).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집-직장만 오가던 사람이었어요.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대학 때도 시위 현장 근처에도 안 가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렇지만 부모님 집 앞에 석산이 들어오면 못 살 것 같더라고요. 남편이 애들도 다 컸고 하니까 내려가서 한 1년 도와드리라고 말하더라고요.
길어야 1년을 생각하고, 일단 내려와서 동네 분들을 만나고 다녔죠. 우리 동네는 가구 수가 여섯 집밖에 안 돼요. 그 여섯 집이 어떻게 석산을 막아내겠어요. 제가 아랫동네 일을 도와줄 테니 아랫동네가 다 같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남들은 저한테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냥 몰라서 뛰어든 거예요. 몰랐으니까 결혼했다는 말이랑 똑같은 거죠. 그렇게 시작했는데, 문제는 소송이더라고요. 마을 분들이 어차피 돈 많은 사람들―업자―이 이길 건데 해도 되겠냐고 이야기했어요. 저도 세상 물정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겠죠. 세상 물정을 몰라서 하면 된다고 겁 없이 말했죠. 그런데 보기 좋게 1심에서 패소했어요.
길고 긴 재판의 연속
그 소송이 2022년에 옹동면환경연대가 만들어지고 나서 한 첫 소송이었죠?
네. 첫 소송이었어요. 그 소송은 저희가 처음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중간에 뛰어든 거죠. 제가 그 소송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환경영향평가였어요.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면 업체는 환경영향평가에서 문제없다고 나와 있으니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활동하고 있던 홍정용 선생님이 하승수 변호사님을 소개해 주셔서 찾아뵀었죠. 그때 저희에게 환경오염도 조사를 요청하라고 조언해 주셔서 정읍시에 쫓아갔죠.
그런데 정읍시에 환경오염도 조사를 해달라고 했더니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설득했어요. 주민들도 없는 돈 끌어모아서 변호사 비용 대고 있으니까 정읍시도 협조해달라고 계속 요청했죠. 다행이었던 건 그때 부시장님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부시장님이 환경 문제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분이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죠. 하 변호사님도 계속 조언해 주시고, 그때 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주민들이 현장 검증하고 하면서 2심에서 저희가 승소를 할 수 있었어요.
그 소송이 몇 년도였죠?
2022년 8월에 시작해서 2023년 3월에 승소했어요. 석산과 관련한 첫 번째 승리였죠. 저희가 폐기물 업체와도 소송을 하고 있었어요. 폐기물 관련 행정 소송은 우리가 다 이겼어요. 근데 석산은 처음부터 패배를 맛보고 시작했죠(웃음). 그때 재판 상대가 선봉이라는 업체인데 그 악연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재판 전후에 골재 채취를 하던 산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업체가 이름과 대표를 바꾸더라고요. 그러고는 소송이 끝난 후에 재산이 없다고 소송 비용을 못 준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대법원에서까지 승소했고, 돈은 못 받았지만 일단락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이상하게 산에 덤프트럭이 계속 들락날락한다고 제보가 들어온 거예요. 소송에서 패소한 이상 해당 사업장에서는 채굴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추가로 확인해 봐달라고 했더니 주변에 계신 주민 두 분이 상황을 저한테 제보해 주셨어요. 참고로 환경연대가 소송에서 이기고 나니 옹동의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뭐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사람들이 저희한테 제보를 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삼촌 부대한테 전화해서 먼저 현장을 살펴달라고 했어요. 교대로 덤프트럭을 미행했는데 산에서 자갈을 계속 퍼내고 있는 거에요. 주먹만 한 돌멩이를. 그래서 저희가 정읍시에 민원을 넣었죠. 알아보니 어떻게 된 거냐면 사업 신청을 할 당시에는, 신청만 하면 다 허가가 났기 때문에 업체가 당연히 사업 허가가 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개발하기 전에 미리 흙을 다 팔아먹고 어차피 골재 선별장 하려면 시멘트를 다 깔아야 하니 미리 거기다 자갈을 갖다가 다 부어놔 버린 거예요. 그 후 재판에 져서 사업을 이제 못 하게 되니까 새로운 땅 주인이 난리가 난 거죠. 자갈밭에 어떻게 농사를 짓겠어요. 그래서 그거를 다 불법으로 파내고 있던 거죠.
그럼 지금까지 소송은 몇 건이나 하신 거예요?
저희가 재판으로 하면 총 7번의 재판을 했어요. 세 개 업체와 7번의 재판을 진행한 거죠.
폐기물은 빼고요?
네. 폐기물까지 하면 더 많죠. 거의 10번은 되는 것 같아요. 최근까지 진행한 재판이 옥산과의 재판이었는데 마무리가 되었죠. 옥산과의 재판에서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다뤘던 게, 피해 주민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옥산을 포함한 5개 석산 업체가 1997년도부터 상두산에서 석산 개발을 시작했어요. 27년간 석산이 운영되었던 건데 2016년도에 인근 7개 마을하고 해당 업체들하고 협약서를 체결했어요. 피해가 계속되고 주민들은 계속 민원을 넣으니까, 정읍시에서 중재를 해서 협약을 체결한 거죠. 그리고 주민들은 협약대로 옥산이 2025년도까지만 사업을 하고 더 이상의 석산 개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거예요.
그런데 옥산이 사업 종료가 임박하니 사업 기간을 7년 더 연장해서 2032년까지 확장하겠다고 신청한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주민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약도 맺었으니 당연히 7개 마을 주민을 찾아가서 그분들을 대상으로 주민 설명회를 여는 게 맞잖아요. 너무 상식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어느 날 옹동면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를 했다는 거예요. 요즘은 환경영향평가서 보면 사진 자료도 다 올라오거든요. 이후에 저희가 사진을 보면서 참석한 사람을 확인해 봤어요. 7개 마을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없는 거예요. 관계없는 마을 주민 서너 명하고 업체 쪽 사람들 데려다가 그냥 설명회를 한 거예요.
그런 와중에 저희가 다른 석산 문제로 1인 시위를 107일간 했는데, 1인 시위 중인 저한테 어떤 할머님이 오셔서 상두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상두산 석산 건은 협약도 체결했고, 7개 마을 이장님이 참여하고 계시니 환경연대에서 관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그게 아니라고, 협약을 맺은 마을 주민들은 다 반대한다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마을로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마을 분들이 다들 반대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지만, 상두산 대응도 함께 해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맺은 협약이 있으니까 7개 마을 이장님을 설득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반대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며 석산에서 제일 가까운 3개 마을 이장님을 계속 설득했어요. 만약 세 마을이 저희와 함께 해준다면 저희도 끝까지 일을 진행해 보겠다고요. 그때가 아마 2022년도 겨울 그쯤일 거예요.
저희가 마을 분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옥산이 석산 개발을 2032년도까지 확장한다는 이야기를 언제 들으셨는지 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분들한테 다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대부분 모르시는 거예요. 이건 정말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옥산과의 재판 과정에도 그 문제를 주요하게 다뤘거든요.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되게 돼 있잖아요. 협의회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이 상두산 주변 마을은 계속 피해를 보는 지역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라고 하면서 마을에 직접 현수막도 걸고 마을 방송도 하고 마을 주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제대로 설명하라는 내용이 있어요. 업체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주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던 거예요. 저희가 그 지점을 문제 삼았는데 업체는 상두산 지역은 협약서대로 관리가 잘 되고, 주민들도 불만이 없는데 이웃 마을 주민들이 걸고넘어진다는 주장을 계속했죠.
그러다 산지관리위원회에서 옥산 사업장을 현장점검 하러 왔어요. 저는 정읍시에 항상 고마워하는 게 현장점검에 대해서 저희가 물어보면 참여할 기회를 주고 일정을 알려주었어요. 그때도 점검이 언제라고 알려주며 주민 대표로 저를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참여해서 이곳 주민들은 2025년도에 석산 개발이 끝나는 줄 알았고, 2032년도까지 연장하는 줄 몰랐다, 알았으면 반대했을 거라고 이야기했죠.
석산 싸움이라는게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참 힘든 것 같아요. 처음 시작부터 투명하면 좋잖아요. 어쨌든 석산 개발은 지역 주민들한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요. 석산은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로 석산이 위치한 자리가 마을과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에 따라서 소음, 진동, 분진의 문제가 발생하고요. 둘째로 골재를 채취하면 덤프트럭에 싣고 나가야 되잖아요. 운반과정의 문제가 있어요. 덤프트럭이 지나가면서 주는 피해가 엄청나거든요.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한테 피해 여부를 정확하게 알려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사실 저희 환경연대가 특별한 일을 해서 이긴 게 아니라 감춰뒀던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거예요.
7전 6승의 비결–생생한 주민들의 증언
그렇죠. 저도 옹동 이야기 알게 되고 예전 자료들을 찾아보니까 정읍시가 업체들하고 소송을 몇 번 했더라고요. 근데 정읍시가 다 진 것 같았어요. 그게 아마 말씀하신 것처럼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법원에 잘 전달이 안 돼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저희가 재판할 때도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첫째는 정읍시가 가지고 있는 석산에 관련된 정보, 그동안 운영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이런 정보들을 얻어내는 게 가장 중요했고 두 번째는 현장이죠. 저희가 현장을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소송하러 법정에 다녀올 때마다 사안별로 현장하고 연결된 게 뭔지를 먼저 생각했어요. 현장에 가면 그 지역에서 피해를 겪고 있는 분들만이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저희가 아무리 머리로 안다고 해도 현장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 가서 재판 중에 생긴 의문들을 주민들과 꼭 이야기를 나눠봐요.
예를 들면, 우리는 덤프트럭이 다닌다고 하면 돌을 싣고 나갈 때만 먼지가 나고 피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주민들이 어느 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 들어봤어?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들어보니 빈 차가 가면 덜컹덜컹하는 소음이 더 크다는 거예요. 그리고 덤프트럭이 과속을 자주 하니 주민들이 방지턱을 설치해달라고 말해서 방지턱을 많이 설치했는데 빈 차는 가벼우니까 더 빨리 달릴 수 있잖아요. 방지턱에서도 더 덜컹덜컹하는 거예요. 소리가 더 크게 나서 시끄러운 거죠. 왕복으로 다니니까 더 힘든 거예요. 또 덤프트럭에는 덮개가 있잖아요. 그런데 덮개에 틈이 있어서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돌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요. 그 돌들이 쌓이면 엄청 많은 거예요. 돌이 떨어져 있는데 차가 계속 지나다니니까 먼지도 많이 나죠. 저희가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덤프트럭이 지나가면서 돌을 떨어뜨리고 가는 사진을 촬영해서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죠.
그리고 덤프트럭 교통사고가 잦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업체에서 경찰서에 기록된 신고 건이 1, 2건밖에 없다고 해당 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한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통사고가 났어도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고 업체가 합의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삼촌 부대한테 전화해서 덤프트럭 교통사고에 대해 물어보니 여러 사례를 이야기해 주는데 증거가 없잖아요. 그러다가 재판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인데, 한 삼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지금 덤프트럭하고 차하고 부딪혀서 사고 났으니까 빨리 와보라고. 해당 제보를 받고 사무국장님이 뛰어가서 그 현장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이 외에도 주민들이 그동안 사고가 있어도 신고 안 된 건이 엄청 많다고 말을 해주셔서 도움이 되었죠.
그게 아니더라도 마을 주민이 증언해 주신 게 참 많아요. 용호리는 도로를 가운데 두고 마을이 양쪽으로 이분되어 있는데, 그 마을 어르신에게 서명받으러 가니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건넛마을에 친구가 사는데 그 집에 놀러 가지를 못한다고요.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더니, 덤프트럭이 하루에 많으면 천 대씩도 지나다니는데, 노인들이 발걸음도 느려 길을 건너는 게 위험하니 그냥 포기한다는 거예요. 환경연대가 싸우는 방식이 이런 생생한 증언을 다 기록해서 자료로 제출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주민들 증언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옥산과의 재판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2심에서 승소를 한 게 몇 월이죠?
올해 5월이에요. 사실 옥산과의 재판이 모든 재판 중에서 제일 힘든 재판이었어요. 특히 2심이 힘들었던 이유가 1심 승소 후에 업체 쪽에서 저희를 회유하려고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협상에 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만 신경 써도 되니 속 편하게요. 그런데 그러기 시작하면 끝이 없잖아요. 만약 석산 개발에 끝이 있었다면 아마 협상이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옹동 같은 경우는 석산이 남아있고 앞으로 또 어떤 업체가 들어올지 모르잖아요. 온갖 석산 업자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환경연대에서는 협상하지 말고 그냥 재판을 진행하자고 했죠.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실 잠을 못 잤어요. 저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겠어요. 재판이라는 게 마지막 1%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마지막 1%는 사실 판사님 성향인 거죠.
웃긴 이야기인데 재판에서 이기고 그러면 원래 잔치도 하고 좀 하루 쉬기도 하잖아요. 저희는 그걸 못했어요. 왜냐하면 항상 다음 재판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재판에 이겼는데 하필이면 제일 바쁜 농사철인 거예요. 고민하다가 그래도 잔치하자고 해서 바쁜 철인데도 50명 정도가 모였어요. 저는 이 석산 운동을 하면서 항상 생각해요. 누가 해서가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서 승리가 이어지고 있는 거라고요. 누구 하나라도 빠졌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라서 관련된 모든 분이 다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석산 싸움 중에 돌아가신 분들의 자리도 만들었죠. 맨날 밥 사주시면서 응원해 주시고, 석산 싸움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내주신 서남저널 대표님, 환경연대에 앞서 석산 문제에 애써주신 지금실 마을 이장님, 항상 주민분들을 봉고차에 태워주시던 삼촌. 초대 명단을 쓰다가 돌아가신 이분들도 같이 참여해 해주셨으면 해서 저희가 의자에 그분들 이름을 적고, 작지만 꽃으로 꾸며서 행사 때 그분들을 위해서 묵념했어요. 그 모든 분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여기까지 석산 싸움을 끌고 올 수 있었어요.
농촌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말이 무식한 말!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옹동면환경연대 활동을 하시면서 겪는 어려움과 바람을 자치와 연결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결정권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정보라도 제대로 공유되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자치의 기본은 정보의 투명성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 되었든 아는 게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요. 알아야 따지기도 하고, 해결해달라고 요청도 하죠. 그리고 면사무소도, 시청도, 환경청도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문제의 답을 찾아주지는 않더라고요. 우리가 답을 가지고 가서 처리해달라고 할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문제가 되는 사업장의 정보, 사업 허가에 관한 법적 요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정보가 필요한데 이 정보를 찾고 모으는 일이 일반 주민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 행정에서 각 읍면에서 추진되는 사업 중에 주민들에게 영향이나 피해를 줄 요소가 있는지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어요. 현재 정읍시에는 신규로 사업 신청 건에 대해 해당 면의 의견을 받아서 제출하는 제도가 있으나 신청 사업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문제점까지 파악해서 주민들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기에, 별도로 관심을 갖는 주민이 없는 동네는 허가가 나고 나서야 사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정보만 공유하는 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농촌 사람들은 무식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해요. 도시 사람에게 갑자기 토마토 키워봐라, 농약 뿌려보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요? 농촌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주민들에게 생소한 사업에 대해 의견을 물어오면, 누가 바로 의견을 말하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주민설명회가 의미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업체에서 와서 1, 2시간 전문용어 일색인 설명을 듣고 주민들이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예측할 수 있을까요? 결국 주민들 눈높이에 맞는 정보가 제대로 주민에게 주어져야 주민들이 석산이든 어떤 문제에든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달자가 필요할 수 있죠. 그게 환경연대가 하는 역할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요. 행정과 사업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주민에게, 주민의 언어로 전달해 주는 전달자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농촌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인구소멸로 인해 마을 중심의 문제해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과거에 비해 면과 교류가 적어진 마을은 적극적인 이장님을 두지 않은 이상 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연대의 경우 옹동의 한 마을 일이 아닌 옹동면 전체의 일임을 알리기 위해 각 마을에 대자보 붙이기, 전단지 만들어 돌리기, 트럭 방송하기, 현수막, 소식지 만들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많은 분이 옹동면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런 것처럼 마을 단위로 사고하던 습관을 면 단위로 사고하는 전환을 위해서는 보조가 필요하죠. 가령 이장단 회의가 열릴 때면 안건이 미리 공유되어 관심 있는 주민들은 이장단 회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식으로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을에서 면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분들을 위해 면마다 승합차나 작은 버스를 마련해 마을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동력을 확보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농촌 자치의 기본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농촌의 현실은 주어진 것에 자의로, 타의로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옹동면 주민 중에도 환경연대와 함께하면 정읍시의 사업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하며 꺼리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 스스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천해 볼 기회를 만들어주는 중간 역할을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석산 싸움에서 행정이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요, 석산을 비롯한 개발사업에서 행정이 저울의 추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업자와 주민 사이에 편의적인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보, 경험 등에서 앞선 사업체와 주민들 사이에 기울어진 저울의 추요. 무조건적인 중립, 중도가 아니라 기울어진 상황에서 사업체와 주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정보를 듣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행정이 역할을 할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제도를 새로 들여온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요. 지방자치, 읍면자치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죠,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이끌어갈 사람 아닐까요? 시장의 의지, 시의회의 의지, 면장의 의지, 이장의 의지, 주민의 의지. 모든 다양한 의지가 한 곳을 향했기에 옹동면환경연대가 그동안 소송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동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죠. 다만, 마을 주민과 옹동면환경연대가 잘 버티고, 전북환경운동연합, 정읍의 여러 시민단체, 공익법률센터 농본 같은 건강한 단체들이 함께 해준다면 험난한 싸움 끝에 기다리는 건 우리 스스로가 내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는 성취감과 그사이 체득한 자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_엄성자, 김형수, 문수영, 장정우, 하승수
2025년 7월 16일